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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Oct 06. 2015

#132 잔치국수 황금 레시피

잔치국수가 있다면 꼭 밥을 말아보시라

나는 잔치국수를 원 없이 삶아 봤다. 


군복무를 할 때 이야기다. 군법당에 있다 보니 한 달에 적어도 두 번, 국수를 삶을 일이 생겼다. 군법당이란 군대 안에 있는 절이다. 원래 절이 국수하고 잘 어울리는 곳인지라, 간식으로 국수를 준비하시는 보살님들도 많았고, "국수는 안  나와요?"라고 묻는 병사들도 더러 있었다. 내가 "보살님, 이번에 몇 인분이나 물 맞출까요?" 하고 물으면 대개 "그래도 100명은 잡아야겠지?" 소리가 늘 듣던 대답이었다. 


그렇다. 나는 보름에 한 번 꼴로 100인 분의 국수를 삶았다. 


100인 분을 끓이자면 여간한 크기의 솥으로는 되지 않는다. 드럼통처럼 생긴 커다란 솥이 부엌에는 있었다. 무거워서 들기도 쩔쩔매는 그런 솥이다. 나는 갈빗집에서 불 붙여줄 때 쓰는 길쭉한 점화 라이터로 식당용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이고, 그 위에 올려둔 솥으로 국물을 끓였다.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몇 번 해보니 국물 우리는 일이 손에 붙었는지도 모르겠다. 


우선 솥에 수돗물을 채운다. 바가지로  몇십 번이나 길어나른 물이었다. 로켓의 엉덩이처럼 시퍼런 불을 마구 쏟아내는 가스레인지 위에서  한두 시간쯤 지나면 물이 슬슬 끓기 시작했다. 솥의 안쪽 벽에 기포들이 따닥따닥 따개비처럼 생기는 것이 신호였다. 그러면 나는 준비된 국물내기용 재료들을 넣었다. 큼직하게 토막 친 무, 망태기에 들어있는 멸치와 뒤포리, 통째로 쏟아 넣은 양파, 나의 허리 높이까지 오는 넓고 길쭉한 다시마 등이었다. 가끔씩 말린 표고 버섯이 추가되기도 했다. 


재료들이 들어가면 국물이 아주 약간 누런 빛을 띠면서 표면에 거품이 생겼다.  그때부터는 국자를 들고 주기적으로 거품을 걷어내는 것이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구수한 내음이 부엌을 가득 채웠다. 그때쯤 되면 나의 뱃속도 꾸르륵 꾸르륵 소리를 내며 부글거리는 솥의 춤사위에 장단을 맞추곤 했다. 


한 달에 두 번, 그렇게 잔치국수를 삶아봤다. 내가 국수가게를 차릴 운명이 아니라면, 아마 평생 삶을 국수를  그때 다 삶아보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만든 국수가 맛있었냐 하면, 뭐 꼭 그렇지는 않았다. 입에 똑 떨어지게 감칠맛이 있으려면 차라리  1kg짜리 쇠고기 다시다를 털어 넣는 것이 나을게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조미료를 넣지 않은 육수를 만들었고, 양념장을 끼얹어 먹으면 그럭저럭 잔치국수 비슷한 모양새가 났다. 


은색 식판에 떡지고 김 빠진 밥을 주로 먹는 군대 짬밥을 생각하면, 그만하면 괜찮은 요리였다. 



100명 분의 국수를 끓이다 보니 종종 육수가 남았다. 부대 상황에 따라 그만한 병력이 다 내려오지 못한 날이었다. 그러면 나는 남은 육수를 페트병에 한약처럼 차곡차곡 모셔놓았다. 며칠 간 먹을 수 있는 나의 식량이었다. 소면은 원 없이 쌓여있고, 김치는 얼마든지 얻을 수 있고, 양념장이야 언제든지 만들 수 있으니, 생수병 속의 그 육수는 고스란히 나만의 잔치국수 베이스였다. 요즘 마트의 매대에 진열되어있는 '멸치 국수 장국' 8인분 병이 3~4천 원씩 하니까, 값으로만 따져도 꽤 나가는 음식인 셈이었다. 


그 육수를 가지고 나는, 나만의 요리를 만들어 먹었다. 나는 그 요리를 일러  '잔치국수밥'이라고 불렀다. 물론 대단한 음식은 아니다. 군대 안에서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것은 대학가 자취생이 시전 할 수 있는 레시피의 발끝도 쫓아가지 못한다. 단지 잔치국수에, 양념장에, 김치가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사실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하얀 쌀밥이 있었다. 


잔치국수밥이 왜 잔치국수밥이냐 하면, 말 그대로 잔치국수에 밥을 말아먹기 때문에 잔치국수밥이다. 간단하다. 흰수염고래가 흰수염이 달린 고래라 흰수염 고래듯, 잔치국수밥은 잔치국수에 밥을 말아먹기 때문에 잔치국수밥이다. 


그러나, 우리는 페니실린이 우연히 발견되었다는 사실과, 뢴트겐이 실수로 X-선을 찾아냈다는 사실과, 콜럼버스가 '다들 알지만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다'고 우기면서 깨 드린 계란을 세운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조금 과장을 섞자면, 잔치국수밥도 그렇다. 간단한 거지만, 잔치국수에 밥을 말아먹는 사람을 나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적어도 내 주변에는 없었다. 



우연한 실수로 내가 밥을 말은 것인지, '국수는 국수로, 밥은 밥으로' 구분해서 먹는 것이 우리 사회의 미풍양속인지, 아니면 단지 내가 식탐이 많은  것뿐인지, 그 답은 잘 모르겠다. 라면 면발이 사라진 국물에는 밥을 말아 먹는 것이, 볶음밥을 시킬 때는 짬뽕 국물을 달라하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거늘, 잔치국수에는 왜 밥을 말아먹는 사람이 드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다만 나는 이 맛있는 잔치국수밥을 혼자만 먹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며, 국수를 삶는 집에서 공깃밥을 같이 주지 않는 것이 아쉬울 뿐이며, 국수에 밥까지 비운 뒤에 화악 늘어난 체중계의 숫자를 보면서 늘 후회할 뿐인 것이다. 


요컨대 이런 이야기다. 잔치국수가 있으면 꼭 밥을 말아서 드셔 보시라. 우선 젓가락으로 후룩후룩 사리를 건져먹다가, 탈모가 한창 진행 중인 40대 아저씨처럼 국수가락이 슬슬 휑하니 비기 시작하면,  그때 밥을 말면 된다. 그리고 젓가락 대신 숟가락을 드는 거다. 잘게 썰은 풋고추가 듬성듬성 섞인 양념장을 척척 얹어가며, 잔치국수밥을 즐기면 된다. 한 번만 그렇게 드셔 보시면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한다. 


물론, 체중이 늘어날 각오는 해야 한다. 



군대에 있을 때 실컷 만났던 잔치국수인데, 이 녀석을 요즘 회사 구내식당에서 본다. 식당이 5000원으로 오르면서 늘 한 켠에 잔치국수를 제공하게 되었다. 똘똘 말은 양말처럼 자그마한 국수 사리, 잘게 다진 배추김치, 가늘게 썰은 김가루, 그리고 멸치 국물이 전부인 단출한 국수다. 하지만 맛은 제법 나쁘지 않아서, 나는 구내식당을 갈 때마다 항상 한 대접씩 잔치국수를 말곤 했다. 


게다가 나는, 나만의 레시피가 있지 않은가. 국수에 밥을 넣은, 잔치국수밥 말이다. 구내식당 메뉴가 어떻게 되건, 덤으로 매일 잔치국수밥을 먹을 수 있어 꽤 좋았다. 내가 구내식당을 주로 이용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런데  지난달,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나서, 나는 한 번도 잔치국수를 집지 않았다. 몸무게라는 녀석이 참으로 정직해서 국수 한 대접을 말면, 그게 고스란히 200g 어금 지금이었다. 하루치 감량 목표가 2~300g인 내가, 그걸 줄이자고 한 시간씩 뜀박질을 하는 내가, 잔치국수밥의 유혹에 무릎 꿇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잔치국수밥과 다이어트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오월동주 원수지간과 같았다. 



어제였다. 구내식당  주인아주머니를 오랜만에 보았다.

요즘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달리기를 하다 보니, 삼각김밥으로 대신하는 날이 많은 까닭이었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니 "아이고, 오랜만이네요." 하고 반겨주셨다.


거스름돈을 받아 식판 쪽으로 가려는데, 아주머니가 한 말씀 더 붙였다. 
"못 본 사이, 살이 많이 빠지셨네요. 옷이 헐럭해졌어요." 


나는 멋쩍게 웃었다. 
"네에, 뭐 달리기 좀 하고 그러다 보니."


다이어트한다는 말을 한 적은 없는데, 알아보시는 걸 보니 정말로 제법 빠졌나? 

기분이 좋아졌다. 


한 달 넘게 잔치국수밥을 멀리한 덕분이다. 
이제 한 번쯤 스스로에게 상을 주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식판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잔치국수 코너로 가서 한 대접을 말았다.

한 숟갈 뜬 밥을 국수 그릇에 넣었다.


한 달만에 먹는 잔치국수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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