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죽게 된다는 생각은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마다 큰 도움이 된다. 사람들의 기대, 자존심,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거의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 무의미해지고 정말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이다." -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는 스탠포드대의 졸업식 연설에서 죽음은 삶이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말을 했다. 그가 그런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이 한 때 췌장암으로 죽음의 언저리에 닿은 적이 있었기 때문일게다. 그러므로 다행스럽게도 아직 그런 경험을 하지 않은 나로서는 잡스와 같은 말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말을 온전히 이해하는데도 한계가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저 죽음의 언저리의 언저리에서 '아마 이런 거겠지' 하고 이리저리 둘러보는 정도에 불과하다.
1950년대, 소아마비는 치료가 불가능한 질병이었다. 미국에서만 연간 5만 명이 이 병을 얻었고 우리나라에서도 2천 명 이상이 발병했다. 환자 자신과 그 가족에게 영원한 고통을 안겨주는 소아마비를 사람들은 하늘의 벌, 천형(天刑)이라 불렀다.
이 병의 백신을 연구하는데 인생을 바친 이는 조너스 솔크 박사(Dr. Jonas Edward Salk)였다. 그는 평생 동안 원숭이의 콩팥을 갈고, 자신이 개발한 약을 스스로에게 주사놓아가며 백신을 완성시켰다. 하늘이 내린 벌을 사람의 힘으로 풀어냈으니 솔크 박사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부가 보장되어 있었음은 당연하다. 백신 특허의 가치는 어마어마했으며 그는 그 가치를 누릴 자격이 충분했다. 전 세계의 제약회사들은 특허를 사고자 안달난 상태였다.
하지만 솔크 박사는 그 백신을 세상에 무료로 공개하기로 결정한다. 특허를 주장한다면 백신은 몇몇 제약회사를 통해서만 공급될 것이고, 당연히 약값은 환자와 그 가족들이 주사를 맞을지 말지를 고민해야 할 정도로 비싸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회자 :
이 백신의 특허권자는 누구입니까
-솔크 박사 :
글쎄요. 사람들이죠.
특허랄 게 없어요. 태양에도 특허를 낼 건가요.
지금 현재 유니세프에 공급되는 1회 투여용 소아마비 백신의 납품 단가는 채 100원이 되지 않는다.
솔크 박사는 어떻게 그런 선택을 했을까. 세계적인 부를 얻을 수도 있었다. 아니, 적당한 부와 적당한 공익을 고르게 만족시킬 방법을 찾을 수도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가 백신을 완성시킨 것 만으로도 이미 세상은 박수를 보내기에 충분했다.
나는 솔크 박사의 이야기를 읽으며 스티브 잡스가 말한 죽음을 생각했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죽는다. 우리가 손에 쥔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 무의미하고, 역시 마찬가지로 우리가 안락한 삶을 위해 구축해놓은 모든 것들도 죽음 앞에서 무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지금 두려워하는 모든 것들도 죽음 앞에서 무의미하겠지. 움켜쥔 손과 막연한 두려움은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이다. 내가 테이블 하나를 가운데 두고 사신(死神)과 마주 앉아서, 그를 따라 길을 나서기 전 마지막 커피 한 잔을 마실 순간을 생각하면 이 세상 만큼의 부도, 이 세상 만큼의 두려움도 똑같이 Nothing. 아무 것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선택의 순간에서 불순물처럼 뿌연 흙먼지들은 얌전하게 가라앉고, 두려움없이 보다 의미있는 일을 택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자그마하게나마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My son. Don't be afraid.
My lady. Don't be afra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