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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Jul 31. 2015

#16 일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직장인이란 그런 존재다

이른 주말 아침 대학 동기들과 청계산에 갔었다. 


"운동도 하고 얼굴들도 보고 좋잖아" 라고 껄껄대며, 우리가 영락없는 아저씨라는 생각을 했다. 평소에 시간들이 없으니까 이런 식으로라도 만날 수 밖에. 이제 좋든 싫든 그런 나이가 된 게다.


다들 직장인이다. 보드라운 흙을 밟고 새파란 하늘을 우러르면서도 결국 돌아가느니 회사 이야기요, 요약하자니 죽겠다는 내용이다. 사람이 어떻고, 일이 어떻고. 잡무가 어쩌니, 휴일근무가 어쩌니. 그런 불만 중에서 가장 큰 덩어리들을 꼽자면 두 개였다.


첫째, 일은 줄어드는 법 없이 무한히 늘어나기만 한다. 
둘째, 불필요한 일이 너무 많아 핵심에 집중할 수 없다.


청계산의 1400 계단을 헉헉거리고 오르는 동안 나는 '다들 똑같구나' 라고 생각했다. 두번째 이유는 우리를 힘빠지게 만들지만, 첫번째 이유는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응? 그렇다. 일은 줄어들지 않는다. "그거 필요없으니까 이제부터는 하지마." 라는 지시는 들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대신 새로운 프로젝트니, 새로 작성해야할 일지니, 무언가 계속 늘어날 뿐이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 일은 마치 자가증식하는 단세포생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의 직장인들이 그 많은 일을 꾸역꾸역 해내는 것은 분명 미스테리. 빈 통에 조약돌을 채우고, 조약돌 사이에 모래를 부으며, 그것도 모자라 보이지 않는 틈새에 물까지 흘려넣어야 하는 것. 


직장인이란 그런 존재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말했다. 
"재미있는게 뭔지 알아? 환경이 점점 열악해지니까 사람의 마음이란게 기대치가 점점 낮아지더라고."


그의 일터는 금융기관과 행정부의 경계선 위였다. 학창시절부터 아이언맨처럼 훤한 얼굴과 돌고래마냥 미끈한 몸으로 늘 인기가 많은 친구였다.


"처음에 매일같이 야근을 할 때는, '아 제발 야근 좀 안했으면' 하고 생각을 했어. 그러다 도대체 감당이 되지 않는 크기의 일이 떨어지니까, '야근을 해도 좋으니 그 끝이 보이는 일을 했으면' 하고 마음이 바뀌더라고.


그런데 더 바빠졌지. 너무 바쁘다 보니까 아예 회사에서 식사 시간에 못나가게 하는 거야. 책상 앞에서 계속 일하라고 도시락이 단체로 나와. 점심 저녁 둘 다. 그러니까 '일을 해도 좋으니 제발 밥만 나가서 먹게 해줬으면' 하게 되었다구.


여기가 끝이 아니야. 누군가 도시락을 주문할 시간조차 없어서 저녁마저 늦어졌어. 아홉시가 넘어야 도시락이 올까 말까야. 그러자 사람 마음이 어떤지 알아? '도시락을 줘도 좋으니까 제 시간에만 나왔으면' 하게 되더라니까."


곯은 사과처럼 푸석거리는 표정으로 그 친구는 지지난주 내내 새벽 두시에 퇴근을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뭐라고 할 수가 없는게 팀장님하고 다른 상사들은 네시가 넘어서 집에 가더란다. 물론 출근은 다른 회사와 똑같다. 아홉시까지. "사는 낙이 없어. 이젠 탈모도 와."



회사에서 제공하는 인터넷 의무 교육을 수강하며 나는 그 친구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내가 택한 과정은 '업무 혁신'이었다. 그런데 기운 빠지게도 혁신의 과정 자체는 혁신이란 말만큼 매력적이진 않았다. 낭비 절감, 생산성 향상, 프로세스 개선 등등등. 다 좋은 말인데 구체적인 지침은 결국 똑같기 때문이다. 


더 많이 할 것. 더 빨리 할 것. 

더 많이하고 더 빨리하는 자들을 쫓아서 더욱 많이하고 더욱 빨리할 것.


내가 남들보다 빨라져야 살아남고, 남들 역시 나보다 빨라져야 살아남는데, 우리 모두 점점 더 빨라지게 되면, 나중에는 다같이 사이좋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교육을 서비스하는 사이트에서 이메일이 왔다. 학습 진도율이 느리다며, '권장 진도율'을 맞추려면 분발하셔야 된단다. 
"내년에는 부서를 옮겨달라고 할거야. 이렇게 살다간 결혼도 못할 거 같아."
아이언맨 돌고래 친구의 푸석한 한숨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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