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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Feb 23. 2016

#161 하면 반드시 좋아지기에 수행이다

아우가 노르웨이에서 1년 만에 돌아왔다

아우가 노르웨이로 돌아갔다.


공항 문으로 들어온 지 열이틀 만이다. 똑같이 공부하는 학생일지라도 학부생과 대학원생은 월급을 받는 직장인과 자기 가게를 꾸린 사업가처럼 다르다. 어차피 자기 공부기 때문에 쉬려고 해도 마음놓고 쉴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아우는 입국 하자마자 서점과 인터넷부터 뒤지더니 결국 자료를 꾹꾹 눌러담은 외장 하드 하나와 <돌궐어 문법> 같은 참고 서적들을 한 짐 가득 들쳐메고 갔다. 


열이틀 전, 회사에서 퇴근 하는 대로 아우를 향해 달려 갔더니 이 녀석은 방바닥에 누워 쿨쿨 자는 중이었다. 걷어찬 이불 위로, 항아리만한 엉덩이가 보름달처럼 둥둥 떠 있었다. 꼬박 1년 만에 보는 모습인데 마치 어제 이 시간에도 그 자리에 누워 자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원래 세상의 모든 아우란 그런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1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공항에 아우를 내려놓고 돌아온 것이 작년 이 맘 즈음인데, 그 사이에 많은 것이 변했다. 지하철 노선도와 호텔 안내가 실린 북유럽 여행 책자를 보물지도처럼 챙기던 아우가 렌트카를 몰고 아이슬란드를 돌아다니는 아우가 되었고, 튜브에 든 고추장과 도시락 김으로 끼니를 때우던 아우에서 김치를 담그고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를 만드는 아우로 바뀌었다. 오징어젓갈 병을 비닐로 감싸며 연신 걱정을 떨치지 않는 엄마에게 아우는 이렇게 말했다. 


"없어도 돼요. 이제는 노르웨이가 더 편해."


자리를 잡는 일이니, 수업을 따라가는 일이니, 박사과정 입학이니. 굵직굵직한 것들을 뜯어보면 지금은 모든 면에서 1년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그 때는 수업 내용을 과연 알아들을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더랬다. 당장 도착해서 밥을 지을 냄비가 없는데, 가게에서 무사히 냄비를 살 수 있을지도 장담하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우는 이런 걱정도 했었다. '우선 냄비를 파는 가게를 찾아야 할텐데...' 


아우는 영어를 정말 못했고, 아우가 공부하러 간 곳에는 한국 학생이 없었다. 이번에 장학금 연장을 위한 심사장에서 면접관 한 분이 2년 전의 아우를 기억하셨더란다. 그리고 다른 면접관에게 이런 식으로 아우를 소개했다고. 


"저 학생이 영어를 못하는데 아이템이 좋아서 선발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래서 다들 '영어를 못했는데 어떻게 수업을 따라갔느냐' 라고 물었다. 


살 곳을 찾아 산 속으로 처음 들어간 화전민처럼, 아우의 첫번째 1년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사실상 바라볼 수 있는 최선의 목표는 '버텨 내자' 정도였으니까. 잠이 나보다 많던 아우였는데 일주일에 사흘은 밤을 샜다. 다섯 시간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일주일을 꼬박 공부했지만, 준비해 온 분량이 세 시간만에 바닥나는 일이 허다했다. 


돌아보면 하루 하루는 좌절과 문제와 괴로움으로 가득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지점이다. 하루 하루는 절망이었는데, 그 절망스런 하루가 쌓인 1년은 훌륭하다. 훌륭하다 못해 번쩍번쩍 빛이 났다. 확실히 나아졌노라고,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법륜 스님은 수행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하면 반드시 좋아지기에 수행입니다. 수행을 하면 100일 뒤, 1000일 뒤에는 반드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행을 하는 하루 하루를 보면 꼭 그렇게 좋지만은 않습니다. 좋았다가, 나빴다가, 그래서 못해먹겠다 싶었다가, 우리 마음이 요동을 치지요. 


하지만 100일이고 1000일이고 수행을 하기로 마음 먹었으면 나쁜 일이 있더라도 멈추지 말고 쭈욱 해야 합니다. 좋은 날에 좋아서 하는 것은 수행이 아니에요. 더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욕망입니다. 나쁜 날에도 변함없이 해야 수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쭈욱 하면, 하루 하루는 좋지 않더라도 100일 뒤, 1000일 뒤에는 반드시 좋아집니다."


가야할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면 하루 하루의 괴로움에 좌절하지 않을 일이다. 발 밑의 가까운 바다는 늘 파도가 치지만, 고개를 들어 보는 먼 바다는 늘 잔잔하다. 


오늘 아침 아우는 무사히 오슬로에 도착했다고 문자를 보냈다. 내일부터 수업이라 바로 도서관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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