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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Mar 16. 2016

#167 장애물이 있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가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지루하게 생각될 때는 이따금 이런 시도를 해보면 좋다.


스스로에게 제한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자극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보통 '제한'이란 말은 창의성을 '제약'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그와 반대다. 많은 창의력 컨설턴트들은 제한의 존재가 혁신으로 이어지는 출입문이라고 조언한다. 


트레버 베일리스는 원래 스턴트맨이었지만 발명에도 관심이 많았다. 1991년, 그는 아프리카에서 에이즈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다. 다수의 의료 전문가, 국제기구, 활동가들이 에이즈 퇴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프리카에서 그 확산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커다란 제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에이즈 확산을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 전달이었다. 경각심을 일깨우고 예방책을 널리 알리는 일이 꼭 필요했다. 그런데 아프리카에서 정보의 전달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수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라디오나 텔레비전이 필수적인데 아프리카에는 라디오를 듣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기기들이 비싸서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전기 코드를 꽂을 구멍이 없었던 것이다. 아프리카에는 전력망이 공급되지 않은 지역이 아주 많았다.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 라디오'라는 제한 앞에서 트레버 베일리스는 기막힌 생각을 했다. 바로 '수동 발전 라디오'를 떠올린 것이다. 그는 창고에서 오래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꺼냈다. 그리고 태엽장치를 돌돌돌 손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조그만 발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둘을 합치자 라디오에서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수동 발전 라디오는 1995년 시장에 나왔고 월 평균 12만개가 팔렸다. '세상을 바꾼 101가지 발명품' 리스트에서 아스피린, 콘돔과 함께 20위권에 선정되기도 했다. 


제한이 창의성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제한이 있을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생각'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아주 효율적으로 움직이게끔 진화되어 온 것이 우리의 뇌다. 그래서 뇌는 안정된 상태를 벗어나기를 꺼린다. 위험을 감수하기 보다는 안전을 선호한다는 이야기다. 모르는 천사보다 잘 아는 악마가 낫다,는 식이다. 그래서 자원이 풍족한 경우 우리는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하던대로 사고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제한이 생겨 같은 방식으로는 더 이상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게 되면 뇌는 그제서야 다른 경로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창의성의 문이 열리는 이유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발 앞에 새로운 장애물이 툭 하니 떨어졌을 때 지레 겁부터 먹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일의 진척이 지지부진할 때는 스스로 제한을 만들어보는 것도 흥미로운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트레버 베이리스처럼 어마어마한 성취가 아니라도 좋다. 작은 제한은 때때로 우리의 일과 삶을 보다 흥미로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이런 일이 있었다. 


헤밍웨이가 친구들과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였다. 헤밍웨이는 그가 고작 여섯 단어만 가지고도(엄청난 제한!)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다고 했다. 정말 그것이 가능한가를 놓고 내기가 벌어졌다. 판돈이 모이자 헤밍웨이는 냅킨 위에 다음과 같이 써서 테이블 위로 빙 돌리고는, 돈을 집어들었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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