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전쟁의 시작과 끝
<일리아스>는 호메로스가 지은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입니다. 서양 문명이 <일리아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의미에서 서양 문명의 시원(始原)이라고도 부르지요. 이 서사시는 기원전 12세기에 있었던 트로이 전쟁이 그 배경입니다. 호메로스는 기원전 8세기에 살았던 인물이라고 하니까 지금은 <일리아스>가 지어진 지 무려 3000년 가까이 지난 셈인데요, 긴 세월 동안 읽혀 온 그야말로 '불멸의 고전'이라고 이야기할 만 합니다.
<일리아스>가 불멸의 고전으로서 사랑받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장대한 서사시 <일리아스>의 줄거리를 소개하고, 그 의의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일리아스>는 사실 10년 간에 걸친 트로이 전쟁의 마지막 1년, 그 중에서도 끄트머리의 51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비록 <일리아스> 자체는 아킬레우스가 싸움을 거부하는 데서 시작해 그가 헥토르를 죽이는 장면까지로 이루어져 있기는 하나, 여기서 우리는 한 발짝 더 나아가 트로이 전쟁 전체를 살펴보아요.
어느 성대한 결혼식에 불화의 신 에리스가 초대받지 못하는 데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화가 난 에리스는 결혼식장에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쓰여있는 황금 사과를 떨어뜨려요. 이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만큼 자존심이 세던 세 여신 헤라, 아테네, 아프로티테가 그 사과가 자신의 것이라 다투기 시작합니다. 신들의 왕 제우스는 골치가 아파졌어요.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 대한 판단을 인간들 중 가장 잘 생긴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맡깁니다.
선택권을 쥔 파리스 앞에 세 여신은 뇌물 공세를 펼칩니다. 헤라는 부귀 영화와 권세를, 아테네는 승리와 명예를, 아프로티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노라고 파리스를 꼬드기지요. 파리스가 잘 생긴 인물값을 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생각이 짧아서 였을까요. 그는 고민없이 아프로티테를 선택하고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녀 헬레네가 있는 스파르타로 떠납니다. 그리고 이미 스파르타의 왕비였던 헬레네를 유혹해 트로이로 데리고 와요. 이에 스파르타를 비롯한 전 그리스 군이 연합하여 트로이로 향하니 이것이 트로이 전쟁입니다.
트로이 전쟁은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 동맹군이 대규모로 맞붙은 세계 대전이었답니다. 그러니 연합군 내부에서도 이해관계에 따라 갈등이 있을 수 있었지요. 그리고 바로 그리스군 총 사령관 아가멤논과 영웅 아킬레우스 사이에서 심각한 갈등이 일어납니다. 권력자 아가멤논이 아킬레우스의 여자를 빼앗아갔기 때문인데요, 이런 처사에 분노한 아킬레우스는 더 이상 싸움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최고의 전사를 잃은 그리스로서는 상당한 타격이었지요.
이때를 놓칠세라 트로이는 헥토르 왕자를 선봉으로 해서 그리스를 강력히 압박합니다. 며칠째 수세에 몰린 그리스군은 트로이군의 공격을 막아내기 급급하지요. 절체절명의 위기입니다. 하지만 아킬레우스는 여전히 참전을 거부하고 있었어요. 보다 못한 그리스군은 아킬레우스의 단짝 친구였던 파트로클로스에게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대신 싸움터에 나와달라고 요청합니다. 아킬레우스의 존재만으로도 그리스군은 사기가 치솟을테니까요.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은 파트로클로스를 보고 그리스군은 반짝 힘을 내어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성공하지만, 이것은 모두 제우스 신이 짜놓은 각본이었답니다. 결국 파트로클로스는 헥토르 왕자의 창에 찔려 전사하고 말지요. 싸움을 외면하다가 단짝 친구를 죽음으로 내몬 아킬레우스. 그제서야 트로이를 향한 그의 분노는 폭발합니다. 그는 성난 사자처럼 전장으로 달려가 헥토르를 비롯한 트로이 군을 도륙합니다. 아킬레우스를 막을 길 없었던 트로이는 성 안으로 후퇴해 문을 걸어잠갔습니다.
긴 전쟁을 마무리한 것은 저 유명한 트로이 목마입니다. 그리스 군은 정예병사들을 숨긴 거대한 목마를 해변가에 놓아둔 채 후퇴한 것처럼 위장해요. 승리감에 도취된 트로이는 그 목마를 기념 삼아 성 안으로 가져오는데, 밤이 되어 목마에서 기어나온 정예 병사들이 트로이 성문의 빗장을 엽니다. 그날 밤, 그리스 군의 기습으로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은 막을 내려요.
<일리아스>가 무려 3000년 동안 생명력을 가지고 읽혀 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서사시의 장대함 때문입니다. <일리아스>는 총 24편 1만 5693행이라는 어마어마한 분량 안에 수많은 인물과 사건, 대화를 담고 있습니다. 도저히 호메로스 한 사람이 쓴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의견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실제로 읽어보면 스토리를 끌고가는 방대한 묘사 앞에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둘째, 거대한 상상력 때문입니다. 호메로스는 트로이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뼈대로 <일리아스>라는 신화적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인물들의 행동, 상황의 전개 하나 하나에도 신들의 움직임이 개입되어 있어요.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 보이지 않는 신들이 함께 하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영웅들이 보여주는 불멸의 길 때문입니다.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모든 영웅들은 신이 아닌 사람이에요. 반드시 죽을 수 밖에 없는 필멸(必滅)의 존재라는 점에서 신들과 뚜렷이 대비되지요. 또한 신화적 세계의 인간은 신이 짜놓은 각본에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제한적 존재로 그려지기도 해요. 하지만 아킬레우스를 비롯한 영웅들은 죽음이라는 결과를 알고 있더라도, 즉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그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합니다. 바로 그것이 필멸의 존재인 우리들을 불멸의 영웅으로 만들어주는 길이 아닐까요.
"저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헥토르와 맞서고자 싸움터로 나갑니다. 제우스나 다른 신들이 원하신다면 저는 언제든지 죽음의 운명을 받아들이겠어요."
불멸의 고전이 된 <일리아스>를 통해 불멸의 영웅이 되는 길을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호메로스는 고대 그리스의 전설적인 시인입니다. 정확한 출생시기는 알려져있지 않지만 학자들은 기원전 8세기 경으로 추정하고 있어요. 사실 호메로스가 한 명의 인물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부터 시작해서 그가 맹인이었다는 설에 이르기까지 호메로스의 거의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 입니다. 무려 3000년 전에 쓰여진 작품인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방대하고 위대한 까닭이에요.
※ 조선일보 '고전 이야기' 코너에 4월 중 실릴 초고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