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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Apr 19. 2016

#174 건강을 위해 찬물을 끊겠습니다

잊고 살았던 양생(養生)의 기본

중국에서 배워 온 것이 하나 있다. 



중국 음식은 정말로 기름졌다. 밥과 국을 제외한 모든 요리가 들들들 볶아서 나왔다. 오이, 상추, 콩나물, 배추까지 볶지 않는 것이 없었다. 또 중국 음식은 고기가 많았다. 대부분의 음식에 고기가 들어있었다. 우리네 밑반찬처럼 풀로만 구성된 요리를 만나기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결국 요리는 둘 중의 하나인 셈이었다. 풀 속의 고기거나 고기 속의 풀. 물론 둘 다 기름에 들들들 볶았고 말이다. 


이렇게 기름진 고기 요리를 하루 세끼 먹으면서 어떻게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까. 북경에서 나는 신기하게도 뚱뚱한 사람들을 별로 보지 못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거구의 고도 비만 환자를 택시처럼 흔하게 만날 수 있었던 LA와는 확연히 달랐다. 뉴스에서는 중국의 비만 인구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던데, 적어도 내가 본 자금성의 바글바글한 중국인 중에서는 뱃살이 늘어진 이가 거의 없었다. 


보통 사람들은 그 이유를 차(茶)에서 찾는다. 차가 기름기를 녹여 배출시키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차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장수 식품이다. 그런데 이번에 중국에서 들은 설명은 조금 달랐다. 미묘한 차이가 있다. 그들의 설명은 '차'가 중심이 아니라 '따뜻한 물'이 중심이다. 가이드도 그랬고, 차를 판매하는 세일즈맨도 그랬고, 동인당 병원에서 우리를 맞이한 의료인도 그랬다. 그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중국 사람들은 찬물을 마시지 않아요. 


가만보니 정말이었다. 식당에서는 따뜻한 자스민 차가 기본이다. 우리가 방문한 쇼핑센터에서도 가는 곳마다 이름 모를 차를 내왔다. 뜨거워서 종이컵을 손에 들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공항 자판기에서 판매하는 캔 음료수 역시 '씨원'하지 않았다. 얼굴에 대고 다닐 정도로 시원한 우리네 자판기 캔을 생각하면 천양지차. 냉장고에 들어있던 음료수를 식탁에 한 시간쯤 꺼내놓은 맛이었다.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다. 놀라지 마시라. 호텔 1층에 있는 마트에서 맥주를 사러 갔더니 맥주를 진열대에 놓고 팔고 있었다. 과자 옆 자리 말이다. 나는 상온의 칭따오 맥주를 사다가 침대에 기대앉아 홀짝 홀짝 마셨다. 


내가 아는 한의학 지식으로는 이렇다. 우리 몸은 찬 음식을 싫어한다. 이것은 체질을 떠나서, 무슨 음식이 몸에 맞느냐를 떠나서 누구에게나 기본적으로 적용되는 원리이다. 찬 음식은 몸을 망친다. 한의학에서 때에 따라 권하기도 하는 차가운 성질의 음식이란, 그 음양의 성질이 차가운 것이지, 냉동실에서 꺼낸 음식이 아니다. 일례로 파인애플, 바나나 같은 열대 과일은 차가운 음식에 속한다. 상온에 두고 미지근하게 먹더라도 '찬 음식'이다. 냉동실 출신의 음식은 아예 논외라는 이야기다. 


자주 가는 한의원의 선생님은 늘 한 가지를 제일 먼저 강조하신다. 찬 것을 끊고 따뜻한 것을 드세요. 내가 심장에 기운이 떨어져도, 혈액 순환이 안되어도, 아토피와 피부 트러블로 고생해도, 이유없이 허리가 아파도, 무조건 첫번째 원칙으로 듣는 이야기는 '따뜻한 음식'이다.


예전에 주의깊게 읽었던 '밥따로 물따로' 음양 식사법에서도 강조하는 사항 중에 '찬물을 마시지 말라'가 있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서 정신차린다고 마시는 냉수는 오장 육부를 상하게 하는 지름길이라 했다. 왜 우리들도 그렇지 않은가.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아이스크림처럼 찬 것만 몇 숟가락 드셔도 금세 기침, 재채기를 하신다. 어르신들이 찬 음식을 싫어하는 이유는 단지 이가 시려서가 아니다. 


요즘은 서양의학에서도 체온에 대한 말을 종종 한다. 체온이 1도만 올라가도 면역력이 5배 좋아진다던가, 체온이 높아야 소화가 잘된다던가, 암을 치료하기 위해 체온을 높이는 방법을 쓴다던가(<체온 1도가 내 몸을 살린다> 사이토 마사시, <체온 1도 올리면 면역력이 5배 높아진다>, 이시하라 유우미) 하는 이야기다. 여러 분야마다 '체온이 중요하다'는 결과가 속속들이 나오고 있는데 결론은 같다. 몸을 따뜻하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체온을 높이는 기본 원칙은 찬물 금지, 따뜻한 물 섭취다.


한의학에서는 예로부터 수승화강(水昇火降)이라 했다. 발과 배를 따뜻하게 하는 것이 건강의 핵심이다. 히포크라테스도 따뜻함을 강조했다. '온열요법으로 치료되지 않는 질병은 불치의 병'이라고 단언했을 정도다. 


몸에 좋다고 하면 생선 기름이라도 먹거나(오메가 3), 아마존 열대 우림까지 뒤지는 것(아사히베리)이 우리들이다. 먹자 골목에 있는 순대곱창 집에도 곱창의 효능이 써있는 이유일게다. 하지만 TV에서 언급한 몸에 좋은 음식, 연예인이 챙겨먹는다는 건강 보조제의 소음들 사이에서 오랜 세월 내려 온 정말 굵직굵직한 양생(養生)의 기본은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지. 


나는 집에 오자마자 진열장 안에서 자고 있던 찻주전자를 꺼냈다. 커피포트에서 보글보글 물이 끓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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