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재우 Apr 27. 2016

#175 밥 먹을 때 생각해야 할 다섯 가지

조선시대 밥상머리 교육 : 식시오관(食時五觀)

생활을 영위하는데 기본이 되는 바는 의식주요,
그 중에서 제일로 시급한 것은 먹는 일이다.


먹어야 산다는 당위 앞에서 빈부의 차이가 없고, 사는 동안은 계속 먹어야 한다는 명제 앞에서 귀천의 구분이 없다. 소설가 김훈의 표현대로 '있건 없건 간에 누구나 먹어야 하고, 한 번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때가 되면 또다시, 기어이 먹어야' 하는 것이 먹는 일의 본질인 셈이다. 


그러므로 생활을 영위하는 일에 있어 스스로 법도를 세운다면, 그 중에서 가장 가깝고 급한 것은 먹는 일의 법도가 아닐까. '식사 예절'과 'Table Manners'가 그 겉모양에 있어서는 다름이 있으되 양의 동서와 시대의 고금에 관계 없이 마음이 지향하는 바는 비슷하리라고 짐작한다.


하릴없이 책장 여기저기를 산보하다가 재미있는 글귀를 만났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밥상머리 교육으로 쓰인 지침이다. <규합총서閨閤叢書>에 실려있는 "식시오관(食時五觀)". 


식시오관이라는 말을 직역하자면 '밥 먹을 때 생각해야 할 다섯 가지' 쯤 된다.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그 분들은 식사를 하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니, 적어도 무슨 생각을 하도록 권장되었을까. 끼니의 총 칼로리가 다이어트 계획을 준수하도록 구성되었는지를 헤아리는 요즘 사람들의 '밥상머리 생각'과는 분명 엄청나게 다를텐데 말이다.


눈에 띈 김에 여기서 식시오관(食時五觀)을 하나씩 관(觀)해 볼까 한다. 


첫째, 상을 차린 정성을 헤아리고 그것이 어디서 왔는가를 생각한다(計功多少 量彼來處).


내가 삼시 세끼 아무런 의식없이 입으로 밀어넣던 쌀밥을 다시 헤아리게 된 것은 군대에서였다. 명절 연휴에는 취사병이 아닌 사람도 며칠씩 취사 지원을 나가곤 했다. 빨간 날에는 훈련이나 작업이 없는 일반 병사와 달리 취사병들은 1년 365일 밥을 지어야 했기에 일의 형평성 차원에서 그리 된 것이다. 


수백 명 분의 밥과 수백 명 분의 국과 수백 명 분의 돼지고기 볶음을 만드는 작업이 그렇게 힘든 일일 줄은, 그 전에는 꿈에도 몰랐다. 용광로처럼 뜨거운 솥을 들고, 철퇴처럼 무거운 주걱으로 밥을 뒤집는데, 더하고 덜할 것도 없이 문자 그대로 '진짜' 힘들었다. 아마 그때가 한여름이었기에 더했을 것이다. 땀이 흐르는 정도가 아니라 숫제 비를 맞은 사람처럼 옷이 젖었다.


철없던 나는 그제서야 태어난 뒤 처음으로 '밥을 만드는 이의 노고'를 몸으로 느꼈다. 하루 세끼 먹는 군대 짬밥과, 천 원짜리 몇 장을 건네고 쉽게 먹은 고시 식당 밥과, 메뉴가 별로라고 툴툴거리며 욱여넣었던 학생회관 밥과, 따신 밥이든 찬 밥이든 평생 '밥 줘' 라는 한 마디에 말없이 식탁을 차렸던 엄마의 밥을 생각했다. 


상을 차린 정성을 헤아리고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떠올리면 절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 밥을 짓고, 이 반찬을 볶고, 이 배추를 소금물에 절일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 수고로움이 살과 뼈에 사무쳐서 거친 끼니와 휑한 밥상도 하나 하나가 귀하게 보인다. 


둘째, 자신의 덕행을 살펴보아 밥을 먹을 자격이 있는지를 생각한다(忖己德行 全缺應供).


백장선사(百丈禪師)는 중국 당나라의 고승이었다. 아흔 살이 넘도록 손에서 괭이를 놓지 않고 직접 일을 했는데, 하루는 스승의 몸을 염려한 제자들이 선사의 괭이를 감추고 내놓지 아니하였다. 밭일을 하지 못한 백장선사는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 라고 말하고는 종일 공양을 받지 않고 참선만 했다. 


우리는 매일 밥값을 하고 있을까. 은행 계좌와 가죽 지갑 안에 끼니를 때울 현금이 들어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식재료비를 감당할만 연봉을 받고 있느냐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경제 성장이 해를 거듭하며 적어도 지금은 신문에서 '금일 쌀 시세'를 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5천 년 전 우리와 같은 DNA를 지녔던 사피엔스가 매머드를 찾기 위해 얼음이 덮인 평원을 며칠씩 걸어가며 귀하게 획득한 '먹을 자격'과, 100년 전 우리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이 땅의 춘궁기에 흙을 캐고 나무 껍질을 벗기며 귀하게 획득한 '먹을 자격'과, 40년 전 우리의 어르신들이 평화시장의 좁아터진 작업 공간에서 하루 15시간씩 미싱을 돌려가며 귀하게 획득한 '먹을 자격' 앞에, 우리 역시 부끄럽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조금 나은 시대에 태어나 끼니 굶을 걱정은 덜었지만 그래도 늘 밥값은 하며 먹고 있노라고 말이다. 


셋째, 과하게 먹고 싶고 맛난 것을 탐하고 싶은 마음을 절제하는 법도를 생각한다(防心離過 貪等爲宗).


배불리 먹고 싶고, 맛나게 먹고 싶은 것은 사람의 본성이다. 입에 단 음식을 대접했을 때 싫다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은 이빨로 자기 무덤을 판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과식과 탐식을 경계하는 목소리는 아득히 오래되었지만, 우리를 유혹하는 미식의 물결이 거리를 홍수처럼 뒤덮은 요즘에는 특히 그 무거움이 더하게 느껴진다. 


일본의 전설적인 관상가 미즈노 남보쿠는 탁월한 실력으로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렸다. 그의 저택에는 큰 창고만 일곱 동이 있었고, 일본 조정으로 부터 대일본(大日本)이라는 파격적인 칭호도 받았다. 그런 그가 운명을 바꾸는 방법으로 가장 강조한 것은 딱 한 가지. 올바른 식사였다. 거칠게 먹고 적게 먹을 것. 


과식이나 탐식에 빠지는 순간 성공은 물 건너간 것이며, 식사만 절제할 수 있다면 사람은 못할 일이 없다고 보았다. 미즈노 남보쿠 스스로가 보리와 콩 만으로 스스로를 수행하며 자신의 운명을 바꾼 사람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다 가진 말년에도 음식은 밥과 간장, 한두 가지 반찬이 전부였다. 


퇴계 이황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자로 성장한 김성일을 비롯해 제자들이 스승의 집을 찾았다. 이야기가 길어 식사 시간이 되자 그들은 밥상을 받았다. 그런데 퇴계가 평소 먹던 밥상을 그대로 본 제자들은 깜짝 놀랐다. 반찬은 단 세 가지, 무와 미역, 가지 뿐이었던 것이다. 거친 밥상에 대한 불만스런 내색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스승인 퇴계는 만족한 듯 맛있게 수저를 들었다. 기이한 경험에 놀란 김성일은 이를 기록으로 남겨 증언했다. 그에 의하면 퇴계는 평생 1일 2식에 세 가지 반찬을 넘지 않았다.


'있건 없건 간에 누구나 먹어야 하고, 한 번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때가 되면 또다시, 기어이 먹어야' 하는 것이 먹는 일이므로, 배불리 먹고 싶고 맛나게 먹고 싶은 마음 역시 '있건 없건 간에 누구나 먹고 싶고, 한 번 먹었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 때가 되면 또다시' 찾아드는 욕심이다. 모든 욕구들 중에서 일상과 가장 가깝고 잦은 것이 식욕인 바, '식사만 절제할 수 있다면' 못할 일이 없다는 미즈노 남보쿠의 말은 그런 뜻이 아닐지.


넷째, 음식을 좋은 약으로 여기고 형상의 괴로운 것을 고침을 생각한다(正思良藥 爲療形枯).


약식동원(藥食同源). 예로부터 음식은 약과 같다고 했다. 무릇 세상에 사람이 입으로 먹을 수 있는 것들 중에 그 성질이 강하고 치우친 것은 특별한 경우에 쓰이므로 그것을 일러 약이라고 했고, 그 성질이 무난하고 편벽되지 않은 것은 늘 목구멍으로 밀어넣을 수 있으므로 그것을 일러 음식이라 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식재료마다 그 효능이 있기에, 사흘이 멀다하고 매스컴에는 '무슨 무슨 증상에는 무엇 무엇이 특효약이다' 라는 새 소식이 퍼지고, 병이 있는 사람들은 그 병에 효험이 있는 음식을 구해다가 세끼 밥상에 빠짐없이 챙긴다. 고혈압에는 양파가 좋고, 통풍에는 맥주가 상극임은 너나없이 아는 것일진대, 어찌 약처럼 무거운 음식이 고작 양파나 맥주 뿐이랴. 일일이 헤아리는 수고를 들이지 않았을 뿐, 약식동원, 밥상 위의 모든 음식은 이미 약이다. 


그러므로 매끼 식사를 할 때 우리는, 스스로가 알건 모르건 간에 밥이 아니라 약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입에 달고 습에 맞는 음식만 찾는 사람은 그 빚을 갚게 되어 있다. 청구서는 대개 성인병 따위의 병명을 달고 찾아온다. 반대로 하루 세끼 양약(良藥)을 꼼꼼하게 챙겨먹은 사람은 일 년에 한 번 값비싼 보약을 짓거나, 평생에 한 번 산삼을 뿌리채 씹어먹은 사람보다 건강한 몸을 보상받을 것이다. 


다섯째, 일을 이루기 위해 음식을 받아야 함을 생각한다(爲成道業 應受此食).


고등학교 때 수학 선생님이 수업 중에 이런 질문을 던지셨다.
"사람은 살기 위해 먹는 걸까, 아니면 먹기 위해 사는 걸까."


그때는 고민없이 '당연히 살기 위해 먹는 것 아냐?' 라고 생각했는데, 세월이 지나 이제 밥벌이를 하다보니 무게추는 반대 쪽으로 기우는 것 같다. "우리는 (잘) 살기 위해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보다 잘) 먹기 위해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수험가에서 경험한 일이다.


수험생들은 독서실과 학원을 오가는 일상이 풍성하진 않은 탓에 결여된 풍성함을 누리고자 식사의 풍성함에 민감하다. 17시에 식사를 오픈하는 학생 식당 앞에 16시 50분 부터 기다리는가 하면, 삼겹살 데이니 반계탕 특식이니 귀한 메뉴가 제공되는 식당은 텔레비전에 갓 방영된 맛집처럼 수험생들이 줄을 서 있다. 가격대비 최고의 식사를 보고 싶으면 노량진의 고시 식당에 가보라. 5000원짜리 진수성찬의 가능성을 극한까지 구경할 수 있다. 스스로 끓여먹는 무한 리필 라면과 토스트는 보너스다. 


하지만 그렇게 양껏 풍요로움을 누린 후에 책상으로 돌아와 꾸벅꾸벅 졸고 있노라면 '살기 위해 먹은 것'은 아니라는 자책감에 휩싸인다. 먹는 낙마저 없으면 어떻게 공부를 버티겠냐고 하지만, 먹는 낙을 찾아 긴 줄 끝에 서는 동안은 분명 '일을 이루기 위해 음식을 받는' 사람에서 멀어진 것이다. 


아우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대학원 연구실에 처음 들어갔을 때 놀랐단다. 아침 나절에 지도 교수님이 자리에 앉으면 저녁 무렵 퇴근시까지 자리를 뜨지 않으셨다. 한 번에 서너 시간을 쭉쭉 앉아서 연구를 하고,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후에 또 서너 시간을 쭉쭉 앉아서 연구를 하셨단다. 그러면 식사는 어떻게 하느냐. 집에서 과일이나 샌드위치, 혹은 비스킷 몇 조각을 싸와 공부하는 틈틈이 해결했다. 


대단하고 신기하게 생각했는데 외국으로 교환학생을 나갔더니 이해가 되었단다. 그곳의 대학원생들은 그렇게 간단한 요깃거리를 가지고 도서관에 들어와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공부를 했다. 교수님도 아마 유학 시절 그런 습관을 들이셨구나 싶었다. 


얼마나 또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하고 있는 일이나 육체 활동의 강도 따라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얼마나 또 어떻게 먹는 것이 적절한 것인가는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나는 '(잘) 살기 위해 음식을 먹는 것'을 생각할 때 어느 유명한 연예인 부부의 일화가 떠오른다. 


그들은 탑 배우 부부였다. 장거리 비행기를 탔다. 8시간이 넘는 비행인 경우 대개 식사가 두 번 나온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의 가장 큰 낙은 기내식이다. 아마 그 부부 근처 자리에 앉았던 승객이 전한 목격담일 것이다. 비행하는 동안 그 부부는 기내식을 먹지 않았다. 여자 쪽은 아무 것도 먹지 않았고, 남자 쪽은 아내가 준 방울토마토를 약간 먹었다 한다. 12시간의 비행 동안 말이다. 그들 부부가 먹은 방울 토마토와 먹지 않은 기내식이야 말로 '(잘) 살기 위해 음식을 먹는' 행동이 아닐까. 


이상으로 밥 먹을 때 생각해 야할 다섯 가지, 식시오관(食時五觀)을 살펴보았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이렇다. 


첫째, 음식을 만든 사람과 음식이 온 곳을 생각하라. 
둘째, 밥 먹을 자격이 있는지 생각하라. 
셋째, 맛난 음식, 배부르게 먹고픈 마음을 절제하라. 
넷째, 음식을 약으로 알고 먹어라. 
다섯째, 일하기 위해 먹는다는 것을 잊지 말라. 


생활을 영위하는데 기본이 되는 바는 의식주요, 그 중에서 제일로 시급한 것은 먹는 일이다. 그러므로 생활에 시급한 법도를 세우고자 하면 먹는 일이 우선일게다. 식시오관을 읽고 깨닫는 바가 있는 이들은 먹는 일의 법도를 근본으로 삼아 거친 밥상이라도 귀한 약으로 알고 옷깃을 여미며 감사히 받을지니. 


나는 촛농처럼 늘어진 아랫배를 보며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174 건강을 위해 찬물을 끊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