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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May 13. 2016

#176 서른의 일을 쉰으로 미루지 말기를

꿈은 두 번 꿀 수 없고 지금은 다시 오지 않으므로

스테디 셀러 <미학 오디세이>는 진중권이 대학원을 마치고 독일로 유학을 떠나기 전 '비행기 값이라도 벌어볼까' 하는 생각으로 쓴 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석사를 마친 상태였으니 아마 서른 초반쯤 되었으려나. '상가 건물 2층에 게딱지 만한 방에서 자판기 커피로 밤을 달래가며 286 컴퓨터로' 써낸 글이 3권 짜리 <미학 오디세이>로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아마 그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그 뒤로 이 책은 비행기 값을 넘어 미학 대중서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내 손에 들려있는 판본은 '20주년 기념판' 이다. 


독일에서 열심히 미학을 공부한 진중권은 철학과 예술에 대한 글을 수두룩하게 쏟아냈다. 원고들을 탁탁 쌓아서 노끈으로 척척 묶으면 자동차 트렁크에 한 짐 가득 들어갈 것이다. 공부하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동안 분명 그의 지식은 깊어지고, 사고는 넓어지고, 필력은 강해졌을텐데, 그는 <미학 오디세이>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런 책을 다시 쓸 수는 없을 것 같다'고. 


"이런 책을 다시 쓸 수는 없을 것 같다. 몇 차례 이 책만큼 대중적인 책을 써보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물론 이 책을 쓰던 시절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미학에 대해 더 많이, 그리고 더 잘 알고 있을테고, 쓰려고만 한다면 이보다 낫게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 책만큼 대중적인 사랑을 받을 수는 없으리라. 그 시절의 왕성한 지적 호기심과 새로운 것을 알게 됐을 때의 황홀한 기쁨은 다시 반복될 수 없기 때문이다. 

미학이라는 학문에 갓 입문한 그때는 나 역시 대중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독자가 어느 부분을 어려워하고 어느 부분을 재밌어하는지 굳이 따로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어렵게 이해한 부분을 설명하고, 내가 재밌게 여긴 부분을 얘기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미학에 더 깊이 들어갈수록 천진난만함은 사라지고 독자와 소통의 접점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지금은 내가 재밌어하는 부분을 독자는 어려워한다."


아는 것이 더 많아진다고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글'의 의미에 읽는 사람들과의 '공감'이 포함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계속 살아가는 한 나의 경험은 끊어지지 않는 황금실처럼 무한히 늘어나지만, 그 실이 아득히 길어지다보면 실의 머리가 묶여있던 곳이 어디인지 보이지 않게 된다. 시간이라는 안개에 가려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안개가 경험을 뒤덮을 때에 제일 먼저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은 벚꽃잎처럼 색이 옅은 '설렘'이리라. 


내가 카페(라고 쓰고 '구멍가게'라고 읽어야 맞지만)를 운영하고 있을 때,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묶어보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흔한 대박 창업 스토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메리카노와 라떼도 구분할 줄 모르던 서른 살 남자가 여대 앞에 커피집을 열면서 겪는 일들. 오고 가는 손님들의 이야기 하며, 옆집 꽃가게 아주머니와 앞집 떡볶이 집의 주인 청년과 작은 바퀴가 달린 손수레를 끌고 폐지를 얻기 위해 다니는 할머니에 대해 써보라고들 했다. 사실 에피소드는 고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았다. 하루가 멀다하고 당황스러운 일과 감사한 일이 벌어졌으니까. 


그런데 그 때 그 글을 쓰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아직은 보여줄 것이 없지 않느냐, 였다. 유명세를 탄 맛집을 만든 것도 아니고 커피 마스터가 된 것도 아니었다. 라떼 위에 그리는 하트는 매번 차고 기울기를 반복하여 고객에 대한 주인장의 진심어린 애정을 의심케 했고, 포스기에 찍힌 매출액은 매일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여 월세에 대한 주인장의 근심어린 부담을 덜어주지 못했다. 나는 더 배우고 나면, 더 성공하고 나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이지, 그건 갓 뽑아낸 에스프레소처럼 진한 착오였다. 


시간이 흘렀고 가게는 문을 닫았다. 열쇠를 넘겨주기 전날, 가게 문 앞에서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이 기억난다. 주말과 평일을 가리지 않고 비좁은 공간에 나와 커피를 내리던 엄마도 불 꺼진 가게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창문틀에 우리가 가게를 함께한 날짜와 그동안 기부했던 금액이 분필로 적힌 작은 칠판을 놓아두고 자리를 떴다. 나는 나중에 이 가게에서 있었던 서툰 기억들을 모아 글을 써보리라 생각했었다. 


그것이 벌써 4년 전이다. 시간은 흘렀고, 추억은 묵은지처럼 푹 익었고, 사회 경험은 적금처럼 차곡차곡 쌓였다. 나는 그 때의 경험이나 시도를 좀 더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성숙함도 얻었다. 그 사이 글 솜씨도 좋아졌고 읽은 책도 늘어났으니 주절주절 쓰고자 한다면 더 나은 글을 쓸 수는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나 역시 그런 실감을 어렴풋하게 갖고 있다. 결국 그 때의 일을 쓰지 못할 것이라고.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지 알 수 없는 월세 지급일과 '이 집 커피 맛있어' 라고 까르르대던 학생들의 목소리와 비내리는 창가에 기대어 온 몸으로 맡던 따뜻한 아메리카노의 향이 이제는 흐려졌다. 그것은 곧 감을 의미한다. 이른 봄의 연녹색 어린 풀처럼 섬세했던 감이 시간의 흐름에 혹은 지식의 축적에 진흙처럼 파묻혀 굳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언가를 시도하기에 가장 좋은 때는, 그것에 대해 많이 알게 될 내일이 아니라, 부족함을 여실히 느끼는 오늘이 아닐까. 나는 4년 전, 그 작은 탁자에 체중을 싣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그 날의 일들을 써 보았어야 했다. 비록 그것이 20주년 기념판은 커녕 비행기 값조차 벌지 못하는 자그마한 결과로 남을지언정 말이다. 완벽한 내일이 아닌 초라한 오늘로부터 시작하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므로, 우리는 그것을 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늘대로 가늘어진 황금실의 끄트머리를 잡은 채 후회하지 않으려면.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서문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해도 나만은 영원한 소년일 거라 생각했는데, 시간은 아무도 비껴가지 않는 모양이다. 막 서른을 넘은 청년의 몸속에 지금은 쉰을 넘긴 중년의 사내가 들어앉아 있다. 지난 20년의 세월이 버스에서 잠깐 졸면서 꾼 꿈만 같다."


서른의 일을 쉰으로 미루지 말기를. 그리고 마찬가지로, 부족한 오늘을 더 나은 내일을 핑계삼아 미루지 말기를. 꿈은 두 번 꿀 수 없고, 지금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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