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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Jun 15. 2016

#177 누군가 내게 사랑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는다면

사랑하는 사람은 불행하지 않다

누군가 내게 사랑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수 없을게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사랑의 힘을 믿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말할게다. 
알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우리를 바꿀 수 있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그렇게 이야기할게다. 



그녀는 전설적인 존재였다. 다만 그녀가 존재감을 드러내기에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적합한 무대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다이앤 포시. 전설적인 영장류 학자. 


그녀는 학창시절 몸집이 크고 사교성이 없는 여성이었다. 그 시절부터 다소 까다롭고 내성적이었기에, 앨범 속 열 일곱살의 다이앤 포시는 음울하고 불행한 괴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갑작스레 아프리카, 그리고 거대한 마운틴 고릴라와 사랑에 빠진 것은 꽤 늦은 나이였다. 그때까지 마운틴 고릴라는 한 번도 연구된 적이 없는 동물로서 거친 털 만큼이나 많은 전설과 오해를 사고 있었다. 


그녀는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은 적이 없었다. 영장류 학자를 후원하는 인물에게 찾아가, 자신을 무조건 고릴라들이 있는 '달의 산'에 보내달라고 졸랐다. 그리고 그녀는 그곳에서 수십년을 머물렀다. 고릴라가 되어. 고릴라들과 함께. 


학계의 전통적인 연구 방식을 무시하고, 영장류들과 접촉하는 일반적인 규칙들을 신경쓰지 않고 그녀는 그냥 자신이 고릴라가 되었다. 그럴수록 그녀는 학계와 멀어졌는데, 그것은 비단 학계 뿐만이 아니라 아예 인간 세상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협조자들, 동료들, 현지 연구를 원하는 무수한 과학자들로부터 그녀는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그녀는 은둔했다. 


그녀는 '과학적인' 연구 방식을 거부했음에도, 세상의 그 누구보다 고릴라에 대해 많이 알았다. 바로 그 점이 세상을 매혹시켰다. 다른 학자들이 그녀에게 관심을 보냈고, 그녀의 아래에서 조수로 일하기를 원하는 열정적인 대학원생들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했던 공개 강연에서조차 그녀는 늘 그녀를 둘러싼 관중들을 보며 역겨움과 죄의식, 관음증을 느꼈다. 그래서 늘 독백하다시피 횡설수설 중얼거렸고, 질문에 대답할 때는 고함을 치기도 했다. 그리고 강의를 마친 후 연단 아래로 찾아와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매달리는 젊은이들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간단히 물리쳤다. 즉시 '좋아요. 제안서를 글로 적어 보내요.' 라고 대답하고는 아예 답장을 하지 않는 식이었다. 


사람과 함께하기를 꺼려했던 그녀는 차라리 숲 속에서 뛰쳐 나온 한 마리 고릴라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중이었다. 우연한 사고가, 달의 산에서 발생했다. 아마 열대 우림에서는 수렵 채집을 해온 길고 긴 시간 속에서 드물지 않게 벌어진 일이었을 것이다. 부족민들이 놓은 사슴 올가미에 고릴라 한 마리가 걸렸고, 그는 결국 괴저로 죽었다. 포시는 광분했다. 그녀는 올가미를 망가뜨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올가미 사냥으로 생계를 이어온 부족민들도 그녀에게 맞섰다. 분노가 증폭됐다. 수위가 높아졌다. 부족민들은 일부러 고릴라를 죽여 시체를 그녀의 오두막 앞에 던졌다.


그녀에게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고릴라들이었다. 하지만 고릴라들은 함께 싸워줄 수 없었다. 비이성적인 보복 사이에서 하나 둘씩 죽어나갔을 뿐이다. 포시 혼자 부족민 전체를 상대로 싸우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거기에 밀렵꾼들이 가세했다. 고릴라를 잡아 이런 저런 부분을 도려내어 기념품으로 파는 무리들이었다. 그리고 마운틴 고릴라는, 채 몇 백 마리가 개체의 전부인 지구에서 가장 희귀한 동물이었다. 


그녀는 성격이 바뀌었다. 아니 바꾸었다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것도 180도 정반대로 말이다. 그토록 내성적이고 사람을 멀리했던 그녀가, 연구 자금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발표에서도 제멋대로 행동했던 그녀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고릴라에 대해 강의하고 절실하게 도움을 구했다. 학생과 협조자들을 현지로 초대해서 실태를 설명했다. 고릴라들을 지킬 수만 있다면 그녀는 그 누구에게든 손을 뻗었고 그 어떤 일이라도 했다. 평생을 내성적이고 까다로우며 사람을 멀리하며 살았던 그녀가, 고릴라들을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결말은 슬프게도 해피엔딩은 아니다. 그녀는 계속 싸워야 했다. 밀렵꾼들과 싸웠고, 부족민들과 싸웠고, 화전을 일구기 위해 열대 우림에 불을 지르는 농경 부족과 싸웠고, 심지어 르완다 정부와도 싸웠다. 지독하게 이어지는 싸움 속에서 그녀의 건강은 점차 나빠졌다. 버텨내기 위해 술과 줄담배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숲 속에 머물며 제대로 된 의료 진료를 받지 못한 탓에 그녀는 걷기 힘들 정도로 몸이 망가졌다. 그렇다고 몇 백 마리의 고릴라들이 있는 그녀의 숲을 버리고 미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항복하지 않고, 결코 떠나지 않고 끈질기게 싸웠던 그녀는 어느 날 밤 그곳에서 살해 당했다. 사람들은 밀렵꾼들의 짓이라고 확신했지만, 증거는 없었다. 


그녀는 불행했을까. 그녀는 회복하기 힘든 자신의 몸과, 쉴새 없이 위협당하는 고릴라와, 그 둘을 모두 없애버리고 싶어하는 현지인들에 둘러싸여 살면서, 그녀는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거의 바뀌지 않는다. 그건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 한참을 버둥거린다고 해도, 대부분은 어쩌면 핀에 꽂힌 풍뎅이처럼 제자리에서 다리를 허우적거리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일찍 일어나겠다고 늘 다짐하면서도 알람이 몇 번씩 울리도록 집어 던지는 나와, 책을 읽다가 자겠다고 계획하면서도 저녁마다 캔 맥주 하나를 들고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밍기적거리는 나와, 해마다 1월의 겨우 몇 장만 빼곡히 채운 채 또 다시 다이어리를 내팽겨치는 나를 알기에, 나는 그녀가 180도 자신을 바꾸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리 힘겹더라도, 불행하지 않다. 


얼마전에 법륜스님의 강의를 듣던 중이었다. 젊은 남자가 고민을 털어놓고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그녀가 자신에게 오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법륜스님은 이런저런 이야기로 그 남자의 마음을 달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아 보였다.  내가 사랑하니 너도 나를 사랑해야 하는 것 아니냐, 라고 고집을 부렸다. 조금도 물러서지 않던 그에게 법륜스님은 이렇게 일갈했다. 


"지금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도대체 그게 무슨 사랑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어."


그 목소리가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준 만큼 받아야 사랑인가. 받을 수 있는 곳에 주는 것이 사랑인가. 받을 수 없는 곳에 주더라도 사랑인가. 내가 사랑할 사랑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나는 아직 모른다. 그래도, 


누군가 내게 사랑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는다면, 아직 나는 대답할 수 없을게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사랑의 힘을 믿느냐고 묻는다면,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말할게다. 
알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우리를 바꿀 수 있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그렇게 이야기할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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