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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Jun 29. 2016

#178 그들이 나무 아래에서 잠을 자지 않는 이유

재래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뉴기니에서 배운 교훈

전 지구적인 베스트셀러 <총, 균, 쇠>의 저자 재래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오랜 시간을 원시적인 수렵채집인들과 함께 지내왔다.


그는 <나와 세계>의 한 대목에서 뉴기니의 어느 인상깊은 밤에 대해 이야기 한다. 흥미롭게도 그의 전공이 조류학이라는 사실은 그다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워낙 거시사(macro history) 분야의 석학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그가 아직 신출내기 학자일 무렵, 그러니까 앞날은 창창하고 큰 사고나 위험따위는 자신과 관계 없다고 생각하는 28살에 있었던 에피소드다.


새를 관찰하려다 숲 속 깊이 들어간 재래드 교수는 해가 저물어 어쩔 수 없이 캠프를 차려야 했다. 이윽고 그는 하룻밤을 보낼 아주 멋진 장소를 찾아냈다. 굵은 줄기가 곧게 뻗은 크고 아름다운 나무 아래 평평한 땅이 있었다. 그곳에 자리를 잡으면 태고의 신비가 얽혀있는 나뭇가지 사이로 밤하늘과 별빛이 돌아가며 얼굴을 드러낼 테고, 풍성한 가지에 앉아 자고 있는 새들을 관찰하기도 쉬웠다. 재래드 교수는 그 자리에 천막을 치자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함께 따라온 뉴기니 현지 원주민들은 기겁을 했다. 절대 안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큰 나무 아래에서 잠을 자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행동이라고 했다. 대신 100미터쯤 저만치 떨어진 공터에서 자겠노라고 버텼다. 재래드 교수가 보기에 그 나무는 정말 안전했다. 원주민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 나무 아래에서 잠을 자고 싶지 않은 이유가 뭐냐고 묻자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봐요. 죽은 나무잖아요. 우리를 덮쳐 죽일 수도 있다구요!"


그 후로 실랑이가 이어졌지만 원주민들은 끝내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나무는 아주 오랜 세월 그 자리에 서 있었다고 설득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들은 결국 원하는대로 멋없는 공터에 천막을 쳤다. 재래드 교수는 원주민들이 '지나치게 부풀려진 두려움에 사로잡힌 상태' 즉, 편집증에 걸려 있다고 생각했다. 


여러 해가 지났다. 연구는 깊어졌고 경험도 축적되었다. 많은 밤을 천막으로 된 캠프에서 보낸 재래드 교수는 그동안 숲 속 어딘가에서 죽은 나무가 쓰러지며 땅을 때리는 소리 역시 꽤 많이 들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재래드 교수는 죽은 나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령 여러분이 죽은 나무 아래에서 잠을 자는 나쁜 습관이 몸에 뱄다고 해봅시다. 또 여러분이 죽은 나무 아래에서 잠을 청한 특정한 날에 그 죽은 나무가 쓰러질 가능성이 1000분의 1이라고 해봅시다. 그럼 여러분이 매일 밤 죽은 나무 아래에서 잠을 잔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게 3년이 지나면 1095번의 밤을 죽은 나무 아래에서 보낸 셈이 됩니다. 매일 밤, 나무가 쓰러질 확률이 1000분의 1이라고 한다면, 3년 후에 여러분은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이 에피소드를 떠올린 것은 지하철 2호선 영등포구청역 2번 출구의 좁디 좁은 에스컬레이터에서 였다. 출근시간, 지렁이처럼 한 줄로 서서 지상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미세하게 몸이 부웅 뜨는 느낌이 나더니 순간  '철컥'하고 멈춰버렸다. 나는 재빠르게 손잡이를 잡았다. 대부분 젊은 직장인들이라 그런지 내 앞에 선 사람들도 반응이 빨랐다. 나즈막히 '어이쿠' 소리를 읊조리고는 다들 별 일 아닌 듯 타박타박 에스컬레이터를 걸어올라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다. 고장난 에스컬레이터는 자주 보았지만, 내가 타고 있는 에스컬레이터가 고장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온몸으로 전해진 '철컥' 소리 때문이었을까. 그 이상한 느낌이 옷에 밴 찌개 냄새처럼 가시질 않았다. 나는 처음으로 에스컬레이터마다 빠짐없이 써 있는 저 흔한 안내 문구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는 손잡이를 잡고, 안전선 안으로 들어오세요.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였기에 망정이지, 내려가는 도중이었다면 좀 더 위험했을 것이다. 두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아서 다행이지, 우산이나 짐으로 손이 없었더라면 좀 더 위험했을 것이다. 마침 한눈팔지 않던 참이어서 괜찮았지, 스마트폰으로 게임이라도 하고 있었다면 좀 더 위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 모두 중심을 잘 잡았기에 무사했지, 한 명이라도 넘어졌더라면 경사가 급한 에스컬레이터이기에 사실 무척 위험했을 것이다. 


그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니 정수리가 찌릿했다. 자칫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었던 거다.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진다면 내가 말짱하게 버티거나 피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 때, 재래드 교수의 죽은 나무가 생각났다. 에스컬레이터가 갑자기 멈출 확률은 극히 적지만, 손잡이를 잡지 않는 나쁜 습관의 소유자인 나는 1095번의 밤을 죽은 나무 아래에서 보내는 헛똑똑이였다. 재래드 교수는 자신이 배운 교훈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처음에 뉴기니인들이 편집증이라 생각했던 행동들이 지금은 완전히 이해됩니다. 지금은 그런 행동을 편집증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만든 명칭이지만 '건설적 편집증(constructive paranoia)'이라 생각합니다. 건설적 편집증은 터무니없는 과민 반응이 아니라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 조심스런 자세를 뜻합니다. 예컨대 한 번 행할 때는 위험 수준이 무척 낮지만 그 행동을 반복하면 위험의 가능성이 누적되므로 결국에는 그 행위로 인해 여러분이 죽음을 맞을 가능성이 커지지 않겠습니까. 이 마음가짐은 내가 뉴기니에서 연구하며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입니다."


한 번 행할 때는 위험 수준이 무척 낮지만, 그 행동을 반복하면 위험의 가능성이 누적되는 상태라... 지금 우리는 얼마나 많이 이런 상태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지. 대형 사고만 터지면, 인재(人災)다, 안전 불감증이다, 하고 떠드는 언론 보도의 데시벨 높은 목소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에스컬레이터의 손잡이, 택시 조수석의 안전 벨트, 고속도로의 제한 속도가 그러하다.


아니, 그렇게 전형적인 위험들만 떠올리지 말자. 먹고 마시는 일상의 모든 일들이, 균형과 조화를 벗어나는 순간 언젠가는 땅을 내려칠 죽은 나무가 된다. 맛있는 음식으로 몇 번 야식을 한다고 병에 걸릴 확률은 별로 없지만, 매일 야식하는 나쁜 습관을 가진 사람은 언젠가 죽은 나무에 깔릴 지도 모른다. 남들 다 하는 회식 술자리 몇 번에 쓰러질 가능성은 흔치 않지만, 사흘이 멀다하고 술에 취하는 나쁜 습관을 가진 사람은 언젠가 죽은 나무에 깔릴지도 모른다. 화가 치밀 때 몇 번 욱한다고 해서 인간관계가 완전히 파탄나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지만, 늘 참지 못하고 상대방에서 쏟아붓는 사람은 언젠가 죽은 나무에 깔릴지도 모른다. 그것이 이혼이든, 퇴직이든, 평생 친구를 잃는 것이든 말이다. 


아무리 위험 수준이 낮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습관으로 매번 행하는 사람에게 확률이라는 주사위 놀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신의 습관을 고치지 않는 이상, 그래서 무수히 반복되는 시도 속에서, 가능성은 현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미끄러운 욕실에 들어갈 때, 사다리에 발을 올릴 때, 식탁에서 습관처럼 소금병을 찾을 때, 우리는 숲 속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죽은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 


나는 그날 이후 항상,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는 손잡이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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