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재우 Jul 05. 2016

#179 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린다

나는 이렇게 단단해지려 애쓰는 것이다

밤이다. 


아니 밤은 아닐진대 밤처럼 캄캄한 아침이다. 어제부터 작심한 듯 쏟아붓고 있는 저 세찬 빗줄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 나는 개천의 범람을 알리는 부지런한 경보음에 비몽과 사몽 사이에서 죽처럼 헤엄치다 문득 얼굴까지 때리는 빗방울에 화들짝 놀라 잠이 깨었다.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비가 들이쳐 책이 젖었을지도 모르겠다, 싶어서였다. 


다행히, 책은 무사했다. 

단단한 녀석들. 


밤이다. 


아니 밤은 아닐진대 밤인지 아침인지 분간할 수 없는 아침이다. 어젯밤, 딱 저렇게 생긴 창문 밖을 내다보며 퇴근을 했는데, 꼭 저렇게 비바람 사이로 발이 젖을 걱정을 하며 집으로 향했는데. 어젯밤 같은 아침인 지금, 창 밖은 어제와 같고, 발은 웅덩이에 빠진 구두마냥 젖었고, 퇴근했던 내 몸은 이렇게 다시 자리에 앉아있다. 드문드문 들리는 인사가 뿌리뽑힌 풀처럼 허공을 너울거린다. 


안녕하세요,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단단하려 애쓰는 얼굴들. 


때로 나는 단단함과 단단하려 애씀 사이에서 고인 물 위에 떠 있는 나뭇잎마냥 빙빙 돈다. 그것은 방향의 상실 때문도 아니요, 걸어갈 두 다리가 없기 때문도 아니며, 오늘 채워야 할 TO-DO 리스트가 비어있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단지 한계 때문이다. 물리적인 시간의 한계, 정신적인 에너지의 한계, 마치 말뚝에 밧줄로 비틀어 맨 코끼리처럼 우걱우걱 먹기 위해 어느 정도는 붙들려 있어야 하는 일상의 한계들. 우리 삶에는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하는 한계가 있고, 아마도 나이를 먹어갈수록 손바닥의 잔주름이 늘어가듯 그런 한계들이 몸집을 불린다. 그것은 물론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 나는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기꺼이 받아들일 정도로 성숙하진 못했을 뿐이다.


요컨대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슬프지 않을 도리가 없다, 는 이야기다. 


밤이다. 


아니 밤은 아닐진대 밤처럼 깨어있기 위해 버둥대는 아침이다. 나는 산발한 슬픔들을 머리채에서 붙잡아 두 손으로 움켜쥔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꽉 움켜쥐고 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린다. 숨을 고르고, 가슴을 다독이고, 눈가를 비비며, 슬픈 한계 속에서 내가 해야할 것들을 가만히 생각한다. 


밤이건 아침이건, 밤같은 아침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은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할 수 없는 일들 위에 슬퍼하는 어리석음 앞에서 이렇게 나는 단단하려 애쓰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178 그들이 나무 아래에서 잠을 자지 않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