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 메모 또는 밑줄을 치면서 읽는가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질문들

by 한재우

HOW TO READ - BASIC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질문들


"아직 책 읽기가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독서 초보자들은 책을 읽는 방법이 궁금하다.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자신의 독서 방법이 맞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어느 정도는 책과 친숙한 독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해서는 여전히 깊은 갈증을 느낀다. 혹시 지금보다 더 나은 길은 없는지, 독서가들이 활용하는 특별한 노하우는 없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에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질문들 몇 가지를 정리해보았다. 국내외 내로라하는 독서가들의 목소리를 함께 실었으니 이 정도면 믿고 따라도 될 것이다. 비록 지금 소개하는 이야기들이 정답은 아닐지라도 퍽 우수한 답안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기초를 토대로 자신에게 꼭 맞는 책 읽기 방법을 찾아내기를 바란다."



1. 책은 언제, 어디에서 읽는 것이 좋은가
2. 한 권씩 읽는가,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가
3. 메모 또는 밑줄을 치면서 읽는가
4. 왜 읽어야 하는가 혹은 최고의 독서법



우선 깨끗이 책을 보는 방법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책을 읽을 때 메모는 커녕 밑줄조차 긋지 않는다. 이유는 개개인마다 정말 다양하다. 깨끗한 책을 소장하고 싶어서. 책 자체를 귀하게 여겨서. 단지 귀찮아서. 어디에 밑줄을 그어야하는지 잘 몰라서. 다 읽은 뒤에 값이 떨어지기 전에 중고서점에 팔기 위해서 등등


책을 읽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점은책을 많이 읽는 독서가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책을 깨끗이 읽는다고 해서 무조건 독서 초보자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 옛 사람들은 15cm 자나 형광펜 없이도 정독과 숙독을 통해 사서삼경을 공부했다. 글자 옆에 붉은 붓으로 작은 점을 찍어 키워드를 강조한 정도는 되었지만 밑줄을 긋거나 메모를 남기는 일은 물리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7번 읽기 공부법>의 아마구치 마유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법학 전공서를 공부할 때도 눈으로만 텍스트를 반복해서 읽었다.


"저는 메모하면서 읽는 유형은 아닙니다. 쭉 읽는 스타일입니다. 왜냐하면 책은 어떤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진지하게 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책은 이미 활자화가 되어 있지만 사실은 작가가 말을 하는 것이잖아요. 저만의 방법이기는 한데, 될 수 있으면 글을 읽으면서 활자와 함께, 저자의 육성을 상상해서 읽어보는 방법을 많이 써보려고 그럽니다. 생생하게 다가올 때가 있어요." -방송인 김제동


"책을 볼 때 줄을 긋거나 적거나 하지 않아요. 줄을 긋는 것은 다음에 다시 보고, 그때 외우거나 이해하겠다는 이야기거든요…… 읽어야 될 책, 새로운 책은 많기에 저는 가능하면 첫 번에 씹어먹고, 꿀꺽꿀꺽 삼켜 소화한 다음, 내 몸에 저장하겠다고 생각하고 책을 읽는 습관을 붙였어요." -의사 박경철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과 수험생, 그리고 상대적으로 다수의 독자들은 책을 읽으며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기고 싶어한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감명 깊은 문장이나 중심 내용에 밑줄을 그어두면 다음에 읽을 때 그 부분 위주로 읽기 때문에 효율적이다. 2회독, 3회독이 쉬워진다. 반복은 암기와 이해로 가는 관문이므로 회독 수가 늘어난다는 말은 그 내용을 더 잘 습득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수험 전문가라고 부를 수 있는 고시생들에게 '밑줄 긋기를 통한 공부 분량의 압축'이 수험 생활의 성패가 걸려있는 중대한 과제가 되는 이유다.


취미삼아 책을 읽은 경우에도 예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 혹은 인용문을 찾아야 할 일은 종종 생긴다. 그럴 때 어느 책의 어느 부분에 있었던 이야기인지 확인하려면 밑줄이 유용하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만 책을 본다면 '분명히 어디선가 읽었는데 그게 어디더라' 하면서 답답함에 머리를 쥐어뜯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메모 역시 중요한 기술이다. 저자의 생각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이 책이다. 책을 읽는 일은 곧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정면으로 만나는 셈이 된다. 따라서 책을 읽다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관점이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번쩍번쩍 솟아나는 경험을 종종 한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이다. '아하!'하고 무릎을 치는 일이 많을수록, 책을 읽다 생각하기 위해 잠시 책장을 덮는 경우가 많을수록, 그 책이 좋은 책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그 때 책에서 얻은 깨달음을 행간에 메모해두어야 한다. 아이디어란 뚜껑을 열어놓은 휘발유와 같아서 정말 순식간에 허공으로 날아가버린다. '아하!'의 순간에는 평생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은 기막힌 생각도 나중에 되새김질 하기 위해 뒤적이면 까맣게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저는 책을 즐기려고 읽는 경우보다는, 글을 쓰려고 읽게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마음 편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놓지를 못하고, 줄을 긋게 된다든지 거기다가 간단한 메모,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는다든지 그럴 때가 왕왕 있고요. 좀 중요한 내용이다 싶은 것들은 컴퓨터에 입력을 하는 등, 나중에 책 쓸 때 도움이 될 수 있게 정리하는 편이에요." - 미술 평론가 이주헌


"책을 읽다가 마음에 남는 곳은 접어 놓거나 뭘 끼워 두는데, 요즘은 그런 곳이 하도 많아져서 아예 연필을 들고 줄을 칩니다. 그리고 나중에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줄을 친 부분을 찾아서 메모를 하거나 또 한번 생각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렇게 하면, 읽었던 책과 인접한 다른 책을 읽었을 때 (줄을 친 부분을 비교해보며) 새로운 관점이 생겨나기도 하고요. 두 책간의 논지가 부딪히거나 결합되면서 조금 더 넓고 깊은 관점이 생기기도 합니다.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저의 책 읽는 습관입니다." - 소설가 성석제


"책 읽는 습관은 조금 나쁜 습관인데, 이를테면 물론 밑줄을 긋는다는 것은 남을 줄 때 밑줄이 그어지잖아요. 남의 책을 빌려 올 때 밑줄 그은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있어요. 자기를 긋는 것이거든요. 밑줄 긋는 것까지는 좋은데, 여행하면서 읽을 때는 저는 책을 찢어요. 읽은 부분은 버리고 점점 점점 가벼워져서 나중에는 버리는 좀 나쁜 습관이죠." - 서양화가 황주리


"저는 책에다 제 마음대로 낙서를 해요. 책에 밑줄만 치는 게 아니라 점을 찍기도 하고, 저만의 도형을 그리기도 하고, 떠오르는 생각을 그 옆에다 적기도 하고, 그러는 버릇이 생겼고요. 흔적이 남는 거죠. 그리고 독서록 같은 것을 만들어요. 많이 만들진 않았는데, 그게 나중에는 거꾸로 제가 기억할 때 참 요긴하더라고요." - 타이포그래프 디자이너 안상수


그러므로 이렇게 요약하자. 책을 읽을 때 메모를 남기느냐, 밑줄을 치느냐 하는 질문에 대해 정답은 없다. 그것은 본인의 책 읽기 노하우에 따라 다르다. 그저 귀찮아서 펜을 들지 않는 것 뿐이라면 다시 생각해봐야 겠지만, 나름 깨끗하게 책을 읽으면서도 충분한 습득이 이루어진다면 다른 사람의 구두를 신듯 억지로 방법을 바꿀 필요는 없다. 하지만 훗날 참고 자료를 찾기 위해 다시 책을 뒤적일 것 같다면, 책을 읽으며 아이디어들이 떠올라 반드시 기록해둘 필요가 있다면, 그리고 아직 자신만의 책 읽는 방법이 확립되지 않은 학생이라면 일단은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고 행간에 메모를 남기는 보다 일반적인 방법을 따라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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