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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Jul 31. 2015

#19 <총 균 쇠>가 가르쳐준 네 가지

우리 사회, 그리고 나 자신의 희망을 찾다

2000년대에 빅히트를 쳤던 컴퓨터 게임 <스타 크래프트 1(이하 '스타')>에는 네 개의 서버가 있었다. 


온라인으로 접속하여 누군가와 한 판 붙으려면 이 네 개의 서버(asia, east, west, europe) 중에서 하나를 골라 들어가야 했다. 블리자드 사(스타의 제작사. 이 게임을 만들어서 새파란 세종대왕님을 갈퀴로 긁어 모았다)는 아마 처음 서버를 만들 때, 스타 유저들이 네 개를 골고루(가장 덜 붐비는 곳을 찾아서) 이용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마치 화장실에서 가장 짧은 줄 뒤에 서듯이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스타는 우연치 않게도 우리나라에서 대박을 쳤다. 스타가 만들어낸 시장은 대단했다. 건물마다 PC방이 들어서 게임 로딩되는 소리가 그칠 새가 없었다. 학생이고 직장인이고 스타를 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가 드물었다. '첨예한 수사권 갈등을 완화시키기 위해 검찰청 - 경찰청 간의 친선 스타 경기가 열렸다'는 훈훈한 기사가 보도될 정도였다.


그 열풍의 중심에는 프로게이머가 있었다. 매일 18시 30분 게임 채널에서 중계되는 게임 경기에 스타 유저들은 열광했다. 벙커링이니 4드론이니 투 넥서스니 하는 화려한 전략들에 눈과 귀를 저당 잡혔다가 일과가 끝나면 PC방으로 달려가기 일쑤. 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접속한 서버가 바로 asia였다. 그래서 여기만 사람들이 속이 꽉 찬 왕만두처럼 미어터졌다.


덕분에 asia 서버에는 고수들이 바글거렸다. 나 역시 "1:1 왕초보끼리 살살" 같은 미끼를 덥석 물었다가 영혼까지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흠씬 두들겨 맞고 surrender를 누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웬만큼 해서는 스타 좀 한다고 방귀를 뀌기 어려웠다. 스타 결승전을 보려고 부산 광안리 바닷가에 10만 명이 운집하는 나라 사람들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반면에 west나 europe 서버에는 정말로 왕초보들이 가득했다. 


물론 그곳의 유저들은 '왕초보'라는 한글을 쓰지 않았다. 미국이나 유럽의 스타 유저들이 주로 접속하는 서버였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는 프로게이머도 게임 중계도 없었다. 그냥 테트리스나 갤러그를 즐기듯 집에서 데스크톱에 스타 CD를 삽입하고 게임에 접속한 '선량한' 사람들이었을 뿐이다. 그런 까닭에 그들의 게임 운용에는 허점이 많았다. asia에서 만신창이가 된 영혼을 이끌고 서버를 갈아타면, 별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도 행주로 식탁 위의 먼지를 훔치듯 스타 후진국의 선량한 영혼들을 쓸어버릴 수 있었다.


어쩌면 europe이나 west 서버에서는 'Korean 하고 게임하기 싫다'는 볼멘소리가 튀어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보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타를 'unbelievable'하게 잘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기이한 현상이다. 블리자드 사는 스타를 전 세계에 똑같이 유통시켰고 인터넷이 되는 환경이라면 누구나 접속할 수 있게 서버를 열어 놓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만 압도적으로 잘했으니 말이다. 만일 스타라는 가상 세계가 실제의 세상이었다면 한국인들은 전 지구를 정복하고도 남았을게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우리 나라에 스타 마니아 자체가 많고(인구), 스타를 할 수 있는 PC방이 넘쳐 났으며(생산 인프라), 게임을 전업으로 하는 프로게이머가 있고(기술의 발달), 시청자를 확보한 게임 채널(기술 확산의 속도)까지 구축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 스타와 비슷한 일이 인류의 문명사에서 실제로 일어났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스타의 세계와는 정반대로 europe의 유저였다.



스페인 정복자 피사로와 잉카의 황제 아타우알파는 페루의 한 고지대 평원에서 전투를 치렀다. 어쩌면 아타우알파는 '전투'를 한다는 생각 없이 전장에 나왔을지도 모른다. 피사로가 잉카 제국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그의 수하에는 168명의 병사 밖에 없었다. 반면 아타우알파는 수백만 명의 백성 중에서 선발한 4만 명 대군의 호위를 받고 있었다. 전열의 맨 앞에서 길바닥을 쓰는 전사만도 2천 명. 그것은 올림픽 스타디움의 관중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과 그 가운데에서 매스 게임을 펼치는 인원 정도의 대결에 불과했다. 그런 와중에 매스 게이머들이 관중 전체를 상대로 먼저 공격을 감행하리라고 예상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일이 일어났다. 피사로는 나팔을 불고 딸랑이를 흔들며 기습 공격을 시작했는데, 믿을 수 없게도 잉카의 4만 전사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기 시작했다. 스페인 병사들은 잉카 전사들을 지칠 때까지 죽이고 또 죽였다. 공격은 밤이 되어 더 이상 앞을 볼 수 없을 지경이 되고서야 멈추었다고. 


그날 하루에 죽인 인디언의 숫자는 7000명에 달했다. 


전투 도중에 아타우알파는 피사로에게 사로잡혔다. 피사로는 그를 석방하는 조건으로 가로 6.7m, 세로 5.2m, 높이 2.4m의 방을 황금으로 가득 채워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몸값을 받은 후에 거리낌 없이 아타우알파를 죽였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168명이 4만 명을 도륙하는 일이, 그것도 탁 펼쳐진 평지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 


<총 균 쇠>는 말한다.
세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째는 총이었고 둘째는 말이었으며 셋째는 철제무기였다고. 


잉카제국에는  그때까지 총과 말과 철제 무기가 없었다. 맨몸뚱이에 몽둥이를 든 4만의 병사들은 총소리에 놀라고, 말의 돌격력 앞에 개미새끼들처럼 흩어졌다. 그들의 곤봉은 스페인 병사들의 갑옷 앞에 무력했다.


피사로와 168명의 병사들은 행주로 식탁 위의 먼지를 훔치듯 아메리카 대륙의 대제국을 쓸어버렸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것이 신대륙과 유럽의 문명이 공식적으로 만난 첫 번째 순간이었다.



생리학, 조류학, 진화생물학 등 과학을 전공으로 하면서도 인류학과 언어학에도 탁월한 실력을 갖춘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왜 오늘의 세계는 불평등한 모습이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 직접적인 이유는 물론 1500년대 유럽의 식민지 확장 때문이다. 대항해시대의 군인과 상인들이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를 점령했고, 그곳의 부가 유럽으로 흘러들어가면서 기술의 발달을 촉발시켰다. 피사로와 아타우알파가 조우한 그 비극적인 순간 말이다.  그때 형성된 세계(북반구-남반구, 유럽-식민지, 선진국-후진국)의 밑그림이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경제적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왜 1500년 무렵의 대륙들은 발전의 정도가 서로 달랐을까. 어찌하여 피사로가 아타우알파를 만났을 때 스페인군에게만 총과 말과 철제 무기가 있었으며, 그 반대는 불가능했을까. 


왜 1500년 europe에는 고수들이 바글거린 반면 다른 대륙에는 surrender를 누를 수밖에 없는 왕초보들로 가득했을까. 


<총 균 쇠>는 그것에 대한 책이다.


B.C 일만년의 선사시대부터 인류의 역사를 훑어내려 온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수렵 채집 단계를 벗어나 농경 생산으로 전환하는 것이 발전의 핵심이었다. 식량 생산이 늘어나면서 인구가 증가했는데, 식량이 남은 뒤에야 사람들은 잉여 시간을 기술 개발에 쏟을 수 있었다. 가축 화할 수 있는 대형 동물이 있는지도 중요했다. 가축은 주요 단백질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경작(밭갈이)과 운송(수레)의 생산성을 높였다. 흥미로운 것은 가축화 된 동물로부터 인간은 세균을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결핵이나 천연두는 소에게서 왔고, 인플루엔자는 돼지로부터, 백일해는 개로부터 왔다. 일찍부터 가축을 길러 면역력이 있는 유럽인들이 남아메리카에 전염병을 퍼뜨려 원주민을  몰살시킬 수 있었던 이유다.


그 다음은 대체로 인구가 제한을 받지 않고 계속 증가할 수 있는 비옥하고 충분한 환경이 있느냐의 문제였다. 거시적으로 볼 때 인구의 증가와 기술의 발전은 양의 상관관계가 있었다. 충분한 자원과 충분한 인구와 일정한 환경이 주어진다면 사람들은 문자와 정치체제와 금속 기술 등을 열심히 고안해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모든 발전의 전제 조건들을 충족시키기에 보다 적합한 환경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그런 환경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다른 지역보다 빠르게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릴 수 있었다. 이를테면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확실히 농경에 유리한 비옥한 토지였다. 유라시아 대륙에는 가축화에 적합한 대형 포유류가 13종이나 있었던 반면 남아메리카에는 단 1종(라마) 밖에 없었으며, 오스트레일리아에는 그나마도 존재하지 않았다. 황하와 양자강이 동서로 뻗은 중국은 기술이 전파되기 유리한 환경이었지만 열대우림이 빽빽한 브라질이나 사하라 사막이 끝없이 펼쳐진 북아프리카는 그렇지 못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총 균 쇠>의 주장이 '지리적 결정설'을 따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유럽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을 수 있었던 까닭은 지리적 우연 때문인 바, 


다시 말해 역사적 궤적은 궁극적으로 '부동산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다.


인간의 창의성을 무시하려는 의도는 조금도 아니지만 그래도 어떤 지역은 '창의적인 사람이 보다 많을 수 있는 환경'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거라 덧붙인다.


700쪽이 넘는 <총 균 쇠>를 읽다 보면 시공간을 넘나드는 방대한 근거자료와 설득력 있는 추론들 탓에 그의 '지리적 결정설'을 반박할 엄두를 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책 속에서 언급한 비스마르크의 말대로 "정치가의 일이란 역사 속에서 걸어가는 신의 발소리를 듣고 그가 지나갈 때 옷자락을 붙잡으려고 노력하는 일"에 불과하며, 역사와 지리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 미력한 한 인간이 바꿀 수 있는 것은 그다지 없지 않을까 하는 다소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랬다. 솔직히 말하자면 <총 균 쇠>를 읽는 동안 나는 겸손함이라는 얇은 포장지로 감싼 우울함이 떠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주 가느다란 희망을 찾은 것은 두꺼운 책의 끝이 거의 보이는, '에필로그'에 닿은 뒤의 일이다. 에필로그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출발선(식량 생산)에서 가장 앞서 나갔던 비옥한 초승달 지대가 기술 개발에 있어서는 끝내 유럽에 뒤쳐진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다른 곳보다 몇천 년 일찍 출발할 수 있었지만, 일단 그 선발 간격을 추월당한 뒤에는 더 이상의 지리적 이점이 없었다. 이 같은 간격이 사라져간 과정은 강성한 제국들이 점차 서쪽으로 옮겨진 경로를 통해 상세히 더듬어볼 수 있다...(중략)... B.C. 4세기 말 알렉산더 대왕 치하의 그리스인들이 그리스로부터 동쪽으로 인도까지 정복하면서 드디어 힘의 중심이 서쪽으로 이동하는 돌이킬 수 없는 첫 걸음을 떼었다."


즉,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작물화, 가축화 된 동식물들이 그리스인들의 정복에 의해 서쪽으로 확산되었고, 그로 인하여 일단 몇천년간 간직해온 노하우가 공개된 이후에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만의 차별성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다. 이 지점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알다시피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은 한 개인이 엄청난 저항과 반대를 무릅쓰고 불굴의 의지와 남다른 비전으로 일구어낸 부분이 크다. 만일 마케도니아의 왕이 알렉산더가 아니었다면 그런 동방원정은 이루어지기 힘들었다고 보는 편이 옳지 않을까. 


그렇다면 유럽의 추월 역시(알렉산더 자신은 의도한 것이 아니었을지라도), 결과적으로는 지리적 결정론이라는 두꺼운 책의 한 귀퉁이에나마 인간의 힘으로 역사를 바꾼 예외 사례라고 표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닐지.



하여 <총 균 쇠>를 읽으면서 나는 이런 것들을 생각했다. 비록 거스르기 힘든 도도한 흐름에 떠밀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 할지라도, 왕초보 딱지를 떼기 위해, surrender를 조금 덜 누르기 위해, 그래서 asia 서버에서 나름 행복한 유저로 삶을 즐기기 위해 몇 가지 노력은 할 수 있겠구나 하고 말이다.


첫째, 속도가 중요하다.


인류의 발전은 일정한 단계를 거쳤다. 식량을 생산하고 가축을 기르고 기술을 발전시키는 등, 거시적으로 볼 때 계단을 생략하고 건너 뛰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발전이란 이전 단계에서 얻어낸 잉여 자원을 재투자함으로써 성취한 것이었다. 한 개인, 혹은 한 조직의 발전도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짐 콜린스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 비약처럼 보이는 어떤 기업에도 단절적인 비약은 없었으며, 다만 성장의 속도가 빨랐던  것뿐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가진 잉여 자원이란 결국 시간과 돈이다. 그것을 흩뜨리지 않고 가고자 하는 길에 온전히 재투자함으로써 수레바퀴를 빠르게 돌려야 한다. 아타우알파에게 그랬듯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그리 인내심이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



둘째, 변화를 적극적으로 쫓아야 한다.


식량 생산이나 대형 포유류의 가축화에 적합한 지역은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다. 그러나 그런 곳에서 개발된 기술의 선진성을 알아보고, 이를 수용할 것이냐는 인간의 의지에 달렸다. <총 균 쇠>에는 총을 받아들이고도 다시 칼을 주력 무기로 사용한 일본이나 활과 화살을 보고도 받아들이지 않은 오스트레일리아 등 저질러서는 아니 되었을 명백한 실수들이 소개되어 있다. 보수적인 태도와 완고한 고집이 우리를 역사의 뒤안길로 떼밀어낸다.


공부든, 일이든, 장사든 늘 새로운 노하우를 창조해낼 필요는 없다. 그러나 다른 이가 만든 노하우를 접했을 때 알아보는 눈과 일일신 우일신 하는 부지런함은 있어야 한다. 스티브 잡스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직접 집필한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것이 내가 평생 하고자 한 일입니다. 바로 끊임없이 나아가는 것이지요(That’s what I’ve always tried to do—keep moving.)"



셋째, 경쟁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경쟁은 스트레스 덩어리다. 어느 편이냐 하면, 나 역시 경쟁 따위하고는 담을 쌓고 평생을 살고 싶은 사람에 속하기는 한다. 그런데 <총 균 쇠>를 읽으면서 문명으로부터 고립되거나 경쟁자들의 자극을 회피하고 살 때 치명적인 판단 착오(선진 기술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등)를 일으킬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세균과 부대끼며 면역력을 키우지 않으면 아메리카인들처럼 순식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 경쟁을 즐길만한 사람이 나는 도저히 아니되 어느 정도 필요한 부분을 대해야 할 때는 감내(甘耐), 문자 그대로 달게 받아들일 수는  있어야겠다.



넷째, 질서를 의심해야 한다.


우리는 통제된 상태, 갈등이 없는 상태를 긍정적인 것으로 여긴다. 상명하달, 위로부터 내려와 물 흐르듯 막힘없이 일처리가 될 때 윗사람들은 기뻐하고 아랫사람들은 안도한다. 하지만 중국은 어째서 그보다 훨씬 낙후되어 있던 유럽에게 기술의 선도자 자리를 빼앗겼는가. <총 균 쇠>는 그것이 중국의 정치적 통일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명나라의 정화는 60척이 넘는 선단에 2만 8천 명의 군대를 이끌고 원정을 떠나 아프리카에도 닿았다. 바스코 다 가마가 고작 세 척의 배로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동아시아의 식민지를 개척하기 수십 년 전의 일이다. 정화가 원정을 계속했으면 중국이 유럽을 식민지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어마어마한 원정이 중단된 것은 어이없게도 정치 파벌 싸움 때문이었다. 정화의 반대파가 세력 다툼에 승리하자 곧 선단 파견은 중단되고 조선소는 해체되었다.


중국의 이런 '통일적인' 뒷걸음질은 그 밖에도 수차례 있었다. 수력방적기의 개발을 포기하여 산업혁명의 문턱에서 물러난 것이  14세기였고, 시계 제작 기술을 스스로 파기했으며, 문화 대혁명으로 5년 간 전국의 모든 학교가 문을 닫았다. 만성적 분열과 갈등으로 대포, 전기, 인쇄술, 총포 등의 개발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던 유럽과 대조된다. 어느 정도의 '반대 목소리'가 보장되지 않는 환경에서는 진정한 혁신도, 지속적인 우위도 불가능하다는 증거다.



<총 균 쇠>에 의할 때 우리는 과연 '운이 좋은' 환경에 살고 있는 것일까. 인구는 넉넉하지 않고, 자원은 항상 부족하다. 식량 자급율도 매우 낮고, 정치 문화도 선진국을 떠올리면 답답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다행인, 그리고 감사해야 할 일은 우리가 어떻게든 이 좁은 한반도에서 반만년 동안 버티며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지리적 결정론'은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해 보이지만, 그래도 분명한 것은 "상황은 변하는 것이며 과거의 우위가 미래의 우위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이다. 영원히 승리하는 공식도 없고, 항상 마이너인 분야도 없으며, 역동성 가운데서 기회를 엿볼 수 있는 시대다. 그래서 <총 균 쇠>의 다음 문장에 우리 사회, 그리고 나 자신의 희망을 걸어보고 싶다.


아주 장기적인 안목으로 본다면 적당히 연결되어 있는 곳, 다시 말해서 연결성이 너무 강하지도 않고 너무 약하지도 않은 곳에서 기술은 가장 빠르게 발전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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