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재우 Jul 30. 2015

#2 루틴(Routine) 하세요?

일을 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규칙성이다

'지구상에서 야구공을 가장 잘 던지는 존재'였던 클레이튼 커쇼가 올해는 영 이상하다. 


지금까지 16경기를 뛰며 거둔 중간 성적은 5승 6패에 평균자책점 3.20. 작년 커쇼의 첫 16경기 성적이 12승 2패에 1.76의 평균자책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부진하다. 이대로라면 27경기 21승 3패라는 압도적인 작년의 기록이 일찌감치 물건너갔음은 당연하고 '커쇼'라는 이름값에 버금가는 시즌을 보여줄지조차 의문이다. 벌써 올해 올스타전 출전에 석유처럼 시커먼 먹구름이 끼었다는 뉴스가 들리니 말이다.

 

왜 그럴까. 어디 하나 부족함이 없는 커쇼다. 


3000만 달러의 연봉에(웬만한 중소기업의 일년 매출액이다. 영업이익 말고 매출액), 안정된 가정에, 틈나는 대로 봉사활동까지 빼놓지 않는 사람이 커쇼다. 자기 관리는 또 어떤가. 그는 최고중의 최고만 모인 메이저리그에서도 연습량하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것으로 이름이 높다. 그야말로 흠잡을데 없는, 그리고도 이제 겨우 27살이라 앞으로 10년 이상은 전성기를 누릴 '갓(God)쇼'가 영문 모를 부진에 빠져있는 것이다.

 

그러던 중 커쇼에 대해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은 칼럼을 읽었다. 요컨대 이런 이야기다. 볼배합의 단조로움은 늘 있던 문제다. 특별한 부상을 당한 것도 아니다. 



그의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소위 '루틴(routine)'의 파괴다.

 

루틴이란 '규칙적으로 하는 일'을 말한다.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똑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똑같은 시간에 작업을, 똑같은 순서와 방법으로 하는 것을 일러 루틴이라 부른다. 기사에 따르면 올해 커쇼의 세번째 아이가 태어났다고 한다. 아이가 둘있는 것과 셋있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고 들었다). '선녀와 나뭇꾼'에서도 나오지 않는가. 아이 둘은 양 팔에 끼고 천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선녀도, 셋 부터는 지상에 묶이게 된다.

 

게다가 커쇼는 지난 겨울 시즌 치과 치료를 심하게 받았다고. 충치벌레는 어금니와 함께 우리의 일상도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혹여 임플란트 치료라도 받아야 한다면 최소 몇 달은 고생이다. 그가 받은 치과 치료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또 커쇼가 어금니로 야구공을 던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귀찮은 치과 진료로 겨울 훈련에 구멍이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

 

즉, 바뀐 생활로 인해 커쇼가 디지털 시계처럼 어김없이 지켜온 일상의 루틴이 흐트러졌을거라는 점이 칼럼의 요지였다. 


위대한 성과를 쏟아내는 사람들이 종종 그렇듯 커쇼 역시 루틴에 민감한 선수라고 한다. 그는 늘 똑같이 어마어마한 양의 훈련에 집착한다. 그것을 완수했기에 '지구상에서 야구공을 가장 잘 던지는 존재'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문 모를 부진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그런 심리적이고 사(私)적인 문제에 그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었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다. 



정말 훌륭한 사람 중에는 자신의 루틴을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유명한 이들이 많다. 


시오노 나나미는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카페에 앉아 <로마인 이야기>를 썼다. 앤서니 트롤로프는 출근하기 전 매일 두시간 반씩 일곱 장의 소설을 뽑아냈다. 스티븐 킹은 하루를 집필/ 산책/ 독서로 3등분 하였는데, 거기서 '산책'을 '마라톤'으로 바꾼다면 무라카미 하루키다. <개미>로 유명한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또 어떤가. 이하는 그가 어느 인터뷰에서 직접 고백한 이야기다.

 

"매일 아침 8시부터 12시 30분까지 10페이지 분량의 글을 써요. 이렇게 지켜온 것이 벌써 30년이 됐네요. 이미 써놓은 10페이지를 고치는 작업을 하든 새롭게 쓰든 매일 10페이지 분량을 꼭 지키고 있어요. 오후 1시부터는 과학적인 정보를 주는 사람들이나 새로운 사람들과 점심을 먹죠.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규칙성’이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규칙적 습관이 상상력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죠. 항상 일정한 시간에 규칙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도록 뇌를 훈련시켰더니 그게 이제는 스스로 작동을 하더라고요. 말하자면 뇌도 근육과 같아요. 쓰면 쓸수록 발달하는 기관이죠."


이것이 비단 작가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들의 일상을 연구한 어느 책에서 말하기를(아마도 '천재들의 뇌를 열다' 였던듯), 대부분의 천재 과학자는 보통 사람들의 인식과는 달리 '괴짜'와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사진을 보면서 다른 '천재'들도 봉두난발 특이한 헤어스타일에, 광기와 우울증을 오가는 불안정한 사람일거라 짐작하곤 하지만, 현실은 완전 정반대. 


대부분의 노벨상 수상자들은 '1부 1처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으며, 출근과 퇴근 시간이 일정하고, 연구 외에는 특별한 취미가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어째서일까.

 

나는 경영학 서적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내 서가에 꽂혀있는 책들 어딘가(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느 책이었는지 똑 하고 떨어지지 않는다. 이러다 또 어느 순간 갑자기 '아, 맞다' 하고 기억나겠지만)에서 읽은 이야기다. 책에서 말하길 '성공의 핵심은 배움'인데 '배움의 핵심은 빠른 피드백' 이라 했다. 전체 과정을 최대한 빨리 반복할 수 있는 상황에 있어야 배움이 있고, 개선이 있고, 잽싸게 성공을 움켜쥘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벼농사를 짓는 농부가 과정을 개선하려면 1년의 사이클이 필요하지만, 프로 강사는 두 시간짜리 강연 1회만 해보아도 당장 몇 가지 문제점을 고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얻은 힌트다. 우리네 일상에서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피드백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이렇게 하면 생산성이 더 높아지고, 이렇게 하니 집중력이 떨어지더라' 라고 알 수 있으려면 말이다.

 

정답은 루틴(routine)이다.

 

평범한 일상이 한치 오차도 없이 반복될 때, 우리는 포토그래퍼가 렌즈의 촛점을 맞추듯 미세하게 일과를 조정할 수 있다. 종일 공부하고, 종일 노는 날을 반복해서는 언제 어떻게 공부하는 것이 자신에게 맞는지 공부 노하우를 깨닫지 못한다. 어제는 단식하고, 오늘은 폭식하는 식으로는 자신의 컨디션에 최적인 식사량을 찾지 못한다. 그렇게 루틴에서 벗어난 만큼, 우리의 리듬은 갓 올라선 체중계 바늘마냥 좌로우로 정신없이 흔들린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커쇼와 베르나르 베르베르에서 날마다 멀어져간다.



그래서 나는 루틴한 삶을 꿈꾼다.

 

갑작스런 약속이 없고, 급히 잡힌 회식이 없고, 매일 아침 3km의 달리기와 똑같은 횟수의 맨손 체조를 하는 삶을. 늘 일정한 시간에 모니터 앞에 앉아 정해진 시간까지 백지를 채우는 삶을. 마감이나 행사에 맞춰 알람시계를 죄었다 풀었다를 오가는 것이 아니라 저 바다에 쉬임없이 부는 편서풍처럼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똑같이 흘러가는 삶을 말이다. 그것이 나에게 가능한 최대한의 하루를 빚어내는 방법일게다.

 

루틴이란 결국 Simple Life의 다른 이름이며, 최고의 자신은 지극히 단순한 삶을 통해 가능하니까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1 당신은 홈런 타자입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