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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Jul 31. 2015

#4 월든. 그리고 Simplify My Life

우리의 에너지는 한계가 있다.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회사 1층에 서점 카페가 문을 열었다. 


책도 팔고 커피도 파는, 말 그대로 서점이자 카페다. 책과 커피 외에 수익을 낼 만한 액세서리를 모색하다가 알라딘 서점에서 절찬리 판매중인 음료수 보틀이 결정되었다. 책에서 뽑아낸 인용구가 새겨진 투명병 말이다. 그래서 나에게도 괜찮은 문구 하나를 정해달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읽었던 책들을 몇 권 뒤적거린 후에 나는 이 문장을 선택했다. 
"Simplify. Simplify. Simplify."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월든>에 썼던 문장이다. 
단순화하라. 단순화하라. 그저 단순화하라.



단순하게 살고 싶다. 


진심으로 그렇다. 한때는 나도 일정이 빼곡한 다이어리를 갖고 싶었더랬다. 고시생 시절 이야기다. 스물 셋 무렵에 '프랭클린 플래너' 광고를 보았는데, 그 친구를 처음 만나는 순간 '이거야 말로 내 삶을 완벽하게 다듬어 줄 도구로다!' 하고 경탄했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우리의 일상을 '가정생활, 인간관계, 건강, 영적, 비지니스' 같은 카테고리로 나누고 그 각각마다 목표를 설정하며, 목표에 따라 해야 할 일들로 리스트를 만든 뒤, 거기에 우선 순위를 매겨 A1, A2, B1, B2... 하고 차근차근 해결해 나간다는데, 이보다 더 완벽한 노하우가 어디 있겠느냐는 말이다. 


하여 나도 가뜩이나 가벼운 지갑을 털어 가뜩이나 무거운 책가방에 넣고 다닐 '프랭클린 플래너'를 샀다. 쓰다보면 공간이 부족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아예 속지도 추가로 구입했다. 설명서를 열심히 읽고 경건한 마음으로 '나의 사명'을 적었다. 생각보다 힘들었다. 미니 소세지를 까먹듯 가볍고 흥미로운 작업일 줄 알았는데 말이다. 이 사명서 한 장이 내 인생을 좌우할 수 있다 여기니 마음이 묵직해진 까닭이었을게다. 



아무튼 그렇게 플래너를 '개시'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찌감치 도서관에 도착한 나는 플래너를 펼쳤다. 오늘의 할 일을 적었다. 


1. 형법각론 교과서 어디부터 어디까지
2. 검도 1시간
3. ...


읽어야 할 분량과 해야할 운동을 적고 나니 막상 더 적어넣을 것이 없었다. 플래너 맨 앞쪽, 나의 사명을 펼쳐 뜯어보았다. 그래도 없었다.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오늘 나에게 필요한 것은 약간의 운동과 의자를 엉덩이에 붙일 풀이 전부였다.


'첫 날이니까'  
나는 다이어리를 덮었다. 그리고 그날 할 일을 시작했다. 



다음날이었다. 


역시 일찌감치 도서관에 도착한 나는 플래너를 폈다. 어제 리스트 옆에 V 표시를 해서 목표를 완수했음을 선언하고 오늘의 페이지를 열었다.


1. 형법각론 교과서 어디부터 어디까지
2. 검도 1시간
3. ...


똑같았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교과서 일백페이지 정독. 고시생의 하루 공부란 그런거니까. 고등학생처럼 하루에 여러 과목을 하는 것도 아니다. 책 한권을 옆구리에 끼면 한두 달이 꼬박이다. 방학이 끝나고 새학기가 시작되었지만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시간표야 책상머리에 붙여둔 것만 보면 될일이고, 술약속이야 눈 맞으면 그 자리에서 '호프집으로 gogo!' 하는 거지 미리 '플랜'할 성질은 아니었다. 그러니 매일매일 플래너를 써봤자 겨우 두 문장. 


1. 형법각론 교과서 어디부터 어디까지
2. 검도 1시간


그렇게 늘 텅 빈 플래너를 가지고 다니던 나는 커리어 맨의 꽉찬 일정이 부러웠다. 오늘의 스케줄을 아침마다 체크하고, 왼손은 휴대폰을 오른손은 커피를 든채 눈으로 뉴스 속보를 쫓는 멀티태스커들이 멋있어 보였다. 



멍청한 소리.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나도 점심 시간을 해바라기처럼 기다리고 영수증을 두꺼비처럼 모으는 영락없는 직장인이다. 직장 연차가 쌓이면서 일상이 달라졌다. '바쁘다'와 '선약이 있다'는 멘트가 점점 늘었다. 지인들이 저녁 시간을 물어올 때 이야기다. '정신이 없네' 소리와 한숨을 내쉬는 습관이 껌처럼 입에 붙었다. 회의를 마치고, 짐을 나르고, 서류가 함박눈처럼 쌓일 때 이야기다. 탁상 달력에는 개미같은 글씨들이 개미처럼 부지런하게 가득하다. 지금 내가 플래너를 다시 산다면 A부터 B,C,D... 1부터 2,3,4...가득 채워나갈 자신이 있다. 


그리고 장담하건대, 이런 방식은 행복하지 않다. 


사람은 결코 잡다한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소모는 크고 효율은 떨어지는 까닭이다. 많은 일을 하다보면 중요한 일을 할 수 없다. 많은 일을 하면서 중요한 일까지 한다면 그건 중요한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거다. 많은 일을 하더라도 모조리 다 잘해내야 한다는 말은, 말로서는 아름답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하거나, 적어도 지속이 불가능하다. 



<One Thing>에 보면 중요한 실험 이야기가 나온다. 


가석방 심사를 담당하는 심사관들이 있다. 누군가의 인생이 달린 문제므로 심사관들은 한 건 한 건 마다 혼신의 힘을 다해 가석방 승인 여부를 검토한다. 그런데 시간대별 승인률을 통계내어보니 예상 외의 결과가 드러났다. 모든 건을 똑같이 집중한다면 승인률은 하루 종일 일정해야 맞는 것. 


그러나 그래프는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출근 직후, 점심 식사 직후, 휴식 직후의 가석방 승인률은 꽤 높았다. 컨디션이 좋을 때 이야기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승인률은 달동네 마을버스처럼 곤두박질쳤다. 점심 식사 직전이나 퇴근 무렵에는 가석방되는 건수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왜일까. 


그것은 집중력의 한계 때문이다. 피로가 쌓일수록 판단이 흐려진다. 제대로 된 결론을 내리기 힘들다. 가석방 심사 대상자는 장기 복역수가 대부분이다. 집중력이 떨어진 심사관은 과연 복역수가 교도소 밖을 나가서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지 확신하기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그냥 '원래 있던 상태'를 내버려두는 길을 선택한다. 복역수에게 원래 있던 상태란, '가석방 불가'다. 


심사관이 불공정한 마음을 먹고 심사에 응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게다. 피로도가 쌓인 다음에는 대충 처리하고 싶었을까. 그렇지는 않을거라 믿고 싶다. 가석방이 한 개인에게 미치는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심사관들이다. 그러나 적어도 데이터는 분명하게 말한다. 


우리의 에너지는 한계가 있다.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안철수 의원이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은 쫓기다 보면 바쁜 일만 하게 되고 중요한 일을 빼 먹는다.
그런데 사실은 중요한 일을 먼저 해야지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나는 <365 공부 비타민>의 어딘가에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다. 


"당신이 하고 있는 모든 일에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중요한 일인가 아닌가. 급한 일인가 아닌가. 


두 가지 질문을 잣대로 모든 일을 네 가지 경우로 나누어보자. 
급하고 중요한 일,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 급하고 중요하지 않은 일, 급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일. 

당신은 평소에 어떤 일부터 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손을 대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급하고 중요한 일. 
둘째, 급하고 중요하지 않은 일. 
셋째,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
넷째, 급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일. 


이제는 당신이 삶에서 이루고 싶은 것들을 적어보라. 
<해리포터>같은 소설을 쓰고 싶은가. 이집트 여행 가이드가 되고 싶은가. 작지만 아담한 카페를 차리고 싶은가. 


지금 당신이 적은 것들은 위에서 나눈 네 가지 분류 중 어디에 속하는가. 

꿈은 언제나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이다. 그러므로 이 일을 세 번째로 하는 한, 당신의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원고를 쓸 때는 몰랐다. 얼마 전에 직무교육을 받다 알게 되었는데 똑같은 이야기를 엄청나게 유명한 컨설턴트가 했더라. 스티븐 코비.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저자다. 시간관리 매트릭스라고,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을 먼저 해야 삶이 바뀐다는 조언이다. 


분명한 것은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을 하려면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시간에 여유가 있고, 재정에 여유가 있고, 업무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진심으로 불행하게도 지금의 세상은 서로 밀어내는 자석처럼 '여유'와는 그 성질이 상극이다. 내버려두면 저절로 꼬이는 컴퓨터 선처럼, 내버려두면 모든 일은 잡다해지고, 일상은 저절로 바빠진다. 


그러므로 여유는 자연스러움의 끝이 아니라 결단과 의지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덜 중요한 일을 줄이는 것. 그 일이 과연 가치가 있나 반문하는 것. 그리고 핵심에 집중하는 습관을 연습하는 것. 그 모든 일은 '함'이 아니라 '하지 않음'에서 시작한다. 스티브 잡스가 분명히 말했다. 


집중이란 Yes가 아니라 No라고. 



따지고 보면 불필요한 일은 하나도 없다. 


만들면 안 만드는 것보단 낫고, 하면 아니하는 것보단 낫다. 하지만 불필요한 일은 없을지라도 덜 중요한 일은 있다. 안타깝게도 매우 많다. 천지삐까리다. 그리고 덜 중요한 일을 하는 그 시간은 더 중요한 일을 하는데 썼어야 할 바로 그 시간이다. 


덜 중요한 일을 쳐내는 것이 어찌 편한 일이겠는가. 그것이 실크로 재단한 속옷처럼 편하다면 세상은 애플과 페이스북같은 기업으로 가득할 것이다. 가지치기는 아프다. 잔가지를 줄이고 굵은 줄기만 남기는 단순화는 분명 쉽지 않다. 그래도 진실은 이렇다. 집중하지 않는 사람은 크게 성공할 수 없고, 집중하지 않는 기업은 위대한 제품을 만들 수 없다. 


언젠가 미국에서 만든 '부자 성향 테스트'를 해본 적이 있다. 문항을 만든 곳이 무슨 컨설팅 회사였나 보험회사였나 그랬다. "당신은 투잡(two job)을 하고 싶습니까?" 라는 질문이 있었다. 그때 나는 법공부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고시생이었기 때문에, 낮에는 법률 일을 하고 밤에는 글을 쓰든 무얼 하든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 게다가 two job. 돈을 두 배로 버는 것 아닌가. 그래서 고민하지 않고 체크했다. 


YES. 



나는 뒤통수를 맞았다. 해설은 이랬다. 


"two job을 가진 사람은 부자가 될 확률이 낮다."


통계 수치에 따른 답이라고 했던 것 같다. 투잡을 가졌기 때문에 부자가 못된 것이 아니라 형편 어려운 사람들이 푼돈이라도 벌기위해 투잡을 택했기 때문에 그런 답이 나왔을 수도 있다. 인과는 모른다. 하지만, 한 길로 정진하지 않고,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지 않고 크게 성공한 사람이 있는가. 스티브 잡스는 침몰해가는 애플에 복귀한 후 350개의 제품을 10개로 줄였다. 


Simplify. Simplify. Simplif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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