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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Jul 31. 2015

#5 현대카드를 응원한다

영혼의 뿌리를 묻고 또 묻는다는 것

                                                                                                                                            <쥬라기 월드>를 보았다. 


영화 동호회에서 지원해준 덕분에 양쪽 귀가 SOUNDX 극장에서 입체 음향을 즐기는 호사도 누렸다. 티라노 사우르스의 포효는 원없이 들었던 것 같다. 어금니 치석까지 구석구석 보일 정도로 생생하게 말이다. 


근 20년 만에 본 '쥬라기' 시리즈였다. 첫번째 쥬라기가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을 때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쥬라기 공원, 마이클 크라이튼, 고려원" 이란 멘트가 라디오 광고에서 한여름 국지성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그 비에 흠뻑 젖은 나는 영화보다 먼저 두 권짜리 소설 <쥬라기 공원>을 읽었다. 원작에서 아주 스마트한 이미지로 그려진 말콤 박사가 스크린에서는 무게감이 약해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쥬라기 월드>는 훌륭했다. 예측 불가능한 사고가 발생한 테마파크와 하필 그날 거기를 찾은 주인공 꼬마들이라는, 지극히 예측 가능한 스토리를 가지고도 밸로시 랩터처럼 스피디하게 130분을 끌고 갔다. '포악한(그리고 압도적인) 육식 공룡 vs 착한(그리고 늘 도망다니는) 주인공 vs 욕심 많은(그리고 끝까지 잘 죽지도 않는) 경영자' 란 도식에서 벗어나 '사람과 교감하는 공룡' 또는 '공룡끼리 대격돌' 코드를 삽입한 것이 성공 요인이 아니었나 싶다. 싸움 구경은 늘 재미있다. 더욱이 그것이 공룡들끼리의 한바탕이라면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영화관 불이 켜진 뒤 사람들이 출구로 줄줄이 향할 때 내 머릿속에 남은 것은 치아가 고른 티라노 사우르스도, 등근육이 모범적인 주인공도, 후속편에 쓸려고 악당이 어디론가 빼돌린 공룡 유전자도 아니었다. 


그것은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잠시 흘러나왔던 광고, 현대카드 CF였다. 



현대카드에서 이태원에 뮤직 라이브러리를 만들었단다. 


시대별 장르별로 빼곡하게 준비된 음반들이 고급스러웠다. 아티스트들이 공연할 수 있는 장소도 있다 했다. 건물의 야경은 무대 위의 록스타처럼 빛났다. 애플 스토어의 사진을 뉴스를 통해 처음 마주한 느낌. 한마디로 '쿨'했다.


현대카드는 문화, 특히 음악과 관련된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진행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현대카드 슈퍼 콘서트' 광고를 보았을 것이다.  마룬 파이브, 에미넴, 폴 매카트니, 비욘세 등등. 문자 그대로 세계적인 대스타의 초대형 콘서트였다. CF는 또 어떤가. 확실히 현대 카드 광고는 다르다. '내꺼 사세요! 이거 좋아요!'라고 고래고래 악을 쓰는 수다스런 CF들 사이에서 현대 카드의 그것은 분명 눈을 사로잡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들은 이미지 구축에 성공했다. 금융 서비스나 카드 포인트 따위에 거의 관심이 없는 나도 현대 카드의 심플한 로고는 마음에 든다. 로고처럼 생긴 스틸 벤치를 집에 들여놓고 싶을 정도다. 


대단한 일이다. 온 세상의 마케팅 직원들이 머리카락 빠지는 줄 모르고 밤을 새워 일하지만, '저 회사 쿨하다' 하고 당장 떠올릴 수 있는 곳이 몇 군데나 되겠는가. '현대카드' 하면 '슈퍼콘서트'를 떠올리는 사람들은 이제 '뮤직 라이브러리'도 떠올릴 것이다. 그렇게 한 걸음씩 현대카드는 '현대카드 = Culture' 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재미있는 점이 있다. CF를 보다가 종종 잊어버리기도 하는데, 현대카드는 그저 카드 회사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삼성카드, 국민카드, 또 장삼이사 갑남을녀 무슨무슨 카드와 똑같다. 6000원짜리 청국장을 파는 식당 주인으로부터 130원을 수수료로 떼가는 카드 회사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카드 회사가 포인트를 이야기하지 않고, 현금 서비스를 이야기하지 않고, 문화와 음악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게 어느 정도는 통해왔다. 지금까지는 분명 그렇다. 



현대카드 CF를 보니 스티브 잡스가 마케팅에 대해 언급했던 유명한 동영상이 생각났다. 애플로 컴백한 잡스는 직원들을 새로운 캠페인의 추진을 밝히는 자리에서 한마디로 단언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마케팅은 가치입니다."


그리고 설명을 이었다. 지구상에서 마케팅을 가장 잘한 기업, 즉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가장 잘 알린 기업인 나이키를 보라고. 이 때 잡스의 말이 재미있었다. 


"나이키는 사실 잡화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신발 회사라구요."


그 때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맞다. 나이키는 신발 회사다. 프로스펙스나(폄하하려는 의도는 없다) 프로월드컵처럼(정말 없다), 혹은 '말표 고무신' 처럼 단지 "땅을 딛고 서거나 걸을 때 발에 신는 물건"을 만드는 회사일 뿐이다. 매출액은 훨씬 많지만 본질적으로는 신발을 만드는 제조업이다. 하지만 되돌아보건대 젊은 시절 우리는 종종 나이키가 '신발' 회사는 커녕 신발 '회사'라는 사실 조차도 잊곤 했다. '나이키'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마이클 조던과 타이거 우즈, 그리고 호날두다. 위대한 운동선수에 대한 경의. 그것이 나이키의 가치임은 변성기를 맞은 중학생도 안다. 나이키의 마케팅이 뼛속까지 철저하게 성공했다는 증거다. 



그것은 오랜 세월 나이키가 자신의 제품이나 가격 전략보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 결과였다. 수익 창출은 기업의 존속 요건이다. 성장하지 않는 기업은 퇴보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라고 고객의 시선을 확 잡아끌고 싶지 않았을까. '더 좋은 제품을 더 싸게' 판다고 소리쳐서 당장 지갑을 열게 만들고 싶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이키는 현명했다. 


조급함을 버리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묵묵히 내세웠다. 그 결과 우리는 나이키가 해마다 회계 감사를 받는 일개 상법상의 영리법인이라는 사실을 거의 잊은채 운동화를 고른다. 제품을 넘어 가치로 기억되는 기업. 즉, 그 기업의 영혼을 어필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갔을지 상상도 할 수 없다. 최고의 인재들이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했을 것이다. 마케팅 비용 또한 댐의 수문을 열듯 쏟아부었으리라.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더 좋고 더 싸다고' 시장통처럼 떠들고 싶은 욕구를 절제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항상 자신들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 영혼의 뿌리를 묻고 또 물었다는 사실이다. 


현대카드는 자신의 브랜드를 Culture와 엮어내는데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초창기의 나이키처럼, 제품 이전의 가치를 묻고 또 묻는 그런 고민의 방식을 이제 막 묘목처럼 심어낸 현대카드의 모습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많은 시간이 흘러 우리의 자녀들은 현대카드가 카드회사라는 사실을 잊은 채로 가입 신청서를 쓰게 될 수도 있겠지. 평범한 기업들과 완전히 다른 기업이라는 인식. 그것도 기업이 기업으로서 실현할 수 있는 멋진 가능성이리라. 


현대카드를 응원한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우리들 개개인이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면, 우리가 단지 '신발을 만들거나 카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의' 우리의 스펙과 커리어로 평가받는 존재를 넘어서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존재가 되고 싶다면, 우리는 저 나이키에게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거다. 


조급함을 버릴 것. 우리가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묻고 또 물을 것. 다른 어떤 것보다도 그 가치관의 실현을 전면에 내세울 것. 


그것이 아마도 '영혼'을 간직한 사람으로 세상을 헤쳐가는 방법일거라 믿는다. 


스티브 잡스가 "마케팅은 가치" 라고 단언한 후 진행한 캠페인은 CF 역사상 최고의 히트작으로 이름을 남겼다. 
그 캠페인의 카피는 이렇다.  


Think Differ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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