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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Jan 02. 2017

#185 2017년,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서


운동을 마치고 신림동 쑥고개의 밤길을 터벅터벅 걸어 내려오면서 문득 '치기어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로 시작하는 짧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코트를 벗고, 가방 속의 책을 주섬주섬 꺼내어 책상 한 쪽에 치워놓은 후, 컴퓨터에 전원을 넣고 이렇게 대뜸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치기어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기(稚氣)란 '어리고 유치한 기분'이다. 구태여 치기어린 글이라고 말함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첫째, 내가 글을 끄적인지 퍽 오래된 까닭에 어떤 글이건 간에 대패질을 제대로 하지 않은 탁자 모서리처럼 글의 여기저기가 툭툭 걸리게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매끄럽고 보드라운 글이 나올리 없고, 맥락없이 떠들어대는 유치원 아이들의 재잘거림마냥 문장이 짜르고 끊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모니터의 여백을 놓지 않고 어쨌거나 끝까지 두드리려 마음먹었으니, 어리고 유치하다.

그리고 둘째, 이것이 더 중요한 이유인데, 올해는 이렇게 이렇게 해보리라, 하는 다소 내밀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드러날 것 같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이런 식의 글을 잘 쓰지 않았다. 적어도 내 기억으로는 그렇다. 물론 글의 어느 한 조각이든간에 자신을 담지 않은 것이 있을리 없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손을 번쩍 든 초등학생처럼 '저는 이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밝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오늘은 문득, 그렇게 하고 싶어졌다는 말이다. '문득 치기어린 글을 쓰고 싶어졌'다는 것은 그런 의미이다. 

치기어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7년의 출발을 맞이해서 말이다.

돌아보면 지난 한 해 역시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다. 광화문 광장으로 주말마다 우리를 불러냈던 국가지대사(國家之大事)말고도, 개인적으로도 그랬다. 

마음이 아팠고, '힘들면서 힘내기도 하면서' 한 해를 보냈다. 연초에 이별수가 있다고 염려해주시는 어떤 분의 말을 흘려 들었는데, 돌이켜보면 흘려들을 일은 아니었던 게다. 아우가 있는 노르웨이 여행을 간 것은 좋았지만, 먼 길을 다녀온 사이에 우리 푸들이 먼 길을 떠났다. 이제 SNS에 있는 '푸들 아빠 8년차'라는 말을 지워야 하는데,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다. 하기사, 여전히 작은 공간에 매일 푸들 마실 물을 갈아준다. 우리 푸들 덕분에 나는 '지금 이곳에 없더라도 마음 속에는 늘 같이 있을 수 있다'는 빅터 프랭클의 말을 이제 이해한다. 결국 책은 쓰지 못했다. 출판사로부터 목차를 컨펌받은 것이 에어컨이 약한 낡은 카페에 앉아 반팔티를 입고 땀을 뻘뻘 흘리던 때의 일인데 이래저래 미루다 보니 한 해가 지나버렸다. 그리고 팟캐스트. 1년 동안 팟캐스트는 꾸준히 해왔다. 방송이 펑크날 뻔한 위기도 서너 번 있었는데 밤을 지새든, 어찌되었든 주 3회 정시 업로드 방송을 1년 동안 유지했다. 딱 한 번 아침 일곱시가 아니라 오후에 업로드된 일만 제외하고 말이다. 

그렇게 바쁜듯 일 년이 지났다.
2016년이 가고 2017년이 왔고, 원숭이 해가 저물며 닭의 해가 밝았다.
그리고 이제 나도 서른 중반을 넘어 후반의 문턱에 발을 디뎠다.

이상한 일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나이른 신경쓴 적이 거의 없었다. 천성적으로 둔해서 그런 것일수도 있고, 20대 이후에 인생 시계가 남들보다 느리게 갔기 때문일수도 있다. 스물 아홉에 군대를 갔고, 서른 하나에 제대로 된 첫 돈벌이를 시작했지만 늦다는 생각도, 조급하다는 생각도 해 본 일이 없었다. 

이런 기억이 있다. 스물 아홉에서 서른으로 넘어가는 12월 31일의 자정에, 나는 군대 막사에서 불침번 근무를 서고 있었다. 행정반에서는 텔레비전을 통해 제야의 종소리가 흘러나왔고, 알면서도 모른척하는 당직 사관 덕분에 각 생활관 창문에서도 푸릇푸릇한 텔레비전 불빛이 어른거렸다. 그리고 나는 라면 스프가 떨어진 전자렌지가 있는 복도 한 가운데에 대걸레자루처럼 서 있었다. 서른 살로 넘어가는 순간을, 그것도 허리에 찬 30년된 수통처럼 멋대가리없는 군복을 입고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찌보면 대단히 기분 착잡한 일일수도 있지만, 그 때 나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저 똑같은 밤이고 똑같은 하루일 뿐이라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는 내가 나이를 더 먹었기 때문일까. 이상한 일이다. 시옷 받침을 떼어내고 서른의 후반으로 접어들었다는 것이 새삼 신경 쓰인다. 그렇다고 해서 구슬퍼 하거나, 조급해 하거나, 한스러워 하거나, '이번 생은 망했어' 라며 툴툴대는 편은 조금도 아니지만, 그저 마치 자를 때가 지나 조금 긴 새끼 손가락 손톱처럼 이따금, 나이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이제 서른 일곱이구나.

서른 일곱이나 먹도록 별다른 굴곡없이 무사히 잘 살아왔다는 것은 감사할만한 일이다. 그리고 사주로 보나, 점성술로 보나, '성격이 곧 운명'이라는 셰익스피어의 말로 보나, 과도한 욕심도 없고 무모한 시도도 하지 않는 나이기에 인생에서 마이너스로 떨어질 일은 없을거라는 조언들 또한 앞으로 지속적으로 감사할 것을 예비하고 있다. 마이너스는 없고 노력 여하에 따라 플러스만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천복이라고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도 문득 서른 일곱, 나 자신에게 무언가를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이런 아이디어는 예전에 박경철 선생님의 글을 읽을 때 내 머릿속 어딘가에 들어와 자석에 붙은 철가루마냥 떨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거기 있는 줄도 몰랐는데, 새해가 되면서 갑자기  '나 사실 여기 있었어' 하고 고개를 빼꼼 내민 것이다. 

박경철 선생님이 마흔이 되었을 즈음인가, 스스로를 위해 선물을 하고 싶어지셨단다. 그동안 고생했다고, 잘 살아왔다고 말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주기로 결심했다. 바로 다이어트였다. 엄청나게 고생을 하셨던건 아니라고 했다. 다이어트식을 한다고 유난을 떠신 것도 아니다. 의학 지식을 동원해서 탄수화물을 줄이고, 나트륨을 줄이고, 미역 같은 해조류로 포만감을 주어 몸을 속이고, 그런 식으로 그저 '조금 신경을 써 볼까' 하는 정도의 작은 관심을 주었을 뿐이라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다만 지속적으로, 끈을 놓지 않고. 그렇게 박경철 선생님은 20kg을 줄였다.

사실 나도 그 정도의 약한 관심으로 지난 몇 달 동안 느릿느릿 체중을 줄였다. 조금 전에 집에 들어왔을 때 속옷에 양말까지 탈탈 벗고 체중계 위에 올라가 서니, 가장 많이 나갔을 작년 봄보다 10kg이 줄어 있었다. 유난을 떤 것은 아니다. 살을 빼야지, 라고 '불끈' 결심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헬스장에 재미를 붙였고, 고등학생 때 이후로 계속 해왔던 야식을 거의 끊었던 것 뿐이다. 그 야식도 몸을 생각해서 끊은 것은 아니었다. 먹고 나면 졸려서 팟캐스트고 뭐고 아무 일도 할 수 없었기에 슬슬 멀리하다보니 부지불식 간에 소원한 관계가 되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무리하지 않고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줄어온 것이 감량 10kg이 되었다. 

물론 아직 과체중인 것은 사실이다. 원래도 건강한 돼지였으니까 과체중이라고 해서 밀가루 반죽처럼 물렁물렁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수치상으로는 과체중이 분명하다. 여기서 3~4kg을 더 줄인다면 카페를 할 때 가졌던 몸무게가 될게다. 그때는 점심 끼니를 소금 주먹밥으로 정말 부실하게 때우던 시기였다. 그리고 거기서 더 줄인다면, 그렇다. 거기서부터는 미지의 영역이다.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몸이고 한 번도 보지 못한 거울 속의 나다. 원래 근육량이 있는 편이라서 어디까지 쉽게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기왕 여기까지 온 것, 나 자신에게 선물을 주어볼까 싶었다. 앞으로 10kg. 그래보았자 남들은 이미 다 살고 있는 정상 체중의 세계지만 말이다. 

올해는 할 일이 많다. 촬영들어간 강의도 잘 마무리해야 하고, 책도 먼지 쌓인 목차를 끄집어 내어 원고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팟캐스트의 방향도 인문학과 고전 쪽으로 뱃머리를 조금 돌려볼까 한다. 이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모두 회사에서 퇴근한 뒤에 짬을 내어 해야하는 일들이다. 그리고 하루 일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운동.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식을 하던 날도 90분의 운동을 거르지 않았다니까, 나는 바쁘다는 핑계조차 댈 수 없는 사람이다.

2016년의 끝자락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왔던 며칠 전에, 한 지인이 찰스 디킨즈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디킨즈가 그렇게 말했단다.



"가면서 조급해 하는 것이, 가만히 서서 조급해 하는 것보다 낫다.
휴식이 없는 인생도 있다."



저 문장을 읽는데, 가슴 속에서 집채만한 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왜 그랬을까. 아닌 줄 알았지만, 기실은 내가 조급했는지도 모른다. 그래, 그랬을 수도 있지. 그래도 괜찮다. 어찌되었든 가만히 있는 것보다 가는 편이 낫다는, 휴식이 없는 삶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는 거라는 저 말이 나를, 괜찮다고 잘 하고 있는 거라고 위로해주었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은 거다. 

그래. 괜찮겠지.
가끔은 이렇게 치기어린 글을 끄적거리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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