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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Feb 03. 2017

#186 '압도적'인 단상

퇴근 길, 집에 오면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고 눈을 떼지 못한 적이 있었다. 어느 토너먼트에서 상대방을 단 몇십 초만에 이겨버리던 선수였다. 한두 판이 아니라, 계속 그랬다. 예선을 넘어 16강, 8강, 준결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람과 그나마 "몇 분"이라도 버텼던 사람은 결승전 상대가 유일했다. 

어쨌든 그 체급에서, 그 시합에서, 그 선수의 모습은 압도적이었다.

십년쯤 전의 그 기억은 마르지 않은 아스팔트에 찍힌 발자국처럼 잊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압도적'이란 것은 꼭 상대가 있어야 하는걸까.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평생을 압도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먼 채로 살아야 할게다. 우리보다 나은 사람은 언제나 있고, 우리를 이길 사람도 언제나 있으므로. 그것도 압도적으로.

그건 슬픈 일이다. 압도적인 모습을,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멋진 모습을 우리 스스로에게서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은, 평생 단 한번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은, 슬프고 억울해 할 만한 일이다. 처음 우리가 태어났을 때 이 세상 전부를 주어도 우리와 바꾸지 않으리라 생각했을, 몇 십년 전 우리들 부모님의 눈빛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압도적'이란, 그런 것이어서는 안된다. 그럴 수는 없다.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멋진 모습은 바스라진 땅콩 껍질처럼 무수히 많은 사람들 중에 선택함을 받은 겨우 몇몇에게만 허용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그럼 어떻게 되어야 할까. 어떻게 되어야 이 어그러진 톱니바퀴를 가지런히 맞추어, 제 시간에 우는 뻐꾸기 시계를 보며 울음을 멈추는 아이처럼, 우리도 우리 안에 깃든 억울한 슬픔을 닦아낼 수 있을까. 

런닝머신 위를, 땀을 뚝뚝 흘리며 달리고 있는데 그런 생각이 '귀에 들렸다.' 

압도하여 이길 상대가 '남'일 필요는 없는거라고. 다 비운 치킨 박스와 찌그러진 맥주 캔을 밀쳐 놓은채 '오늘은 먹고 잘래.' 라고 이야기하던 그저께와, 10분쯤 달리다가 '오늘은 피곤하니까 운동은 슬슬하고 가야지.'라고 중얼거리던 어제를 곱씹으며, 오늘 채우기로 했던 거리를 꾸역꾸역 채워 넣을 수 있다면, 그러면 오늘의 나는 어제와 그제의 나에 비해 '압도적'으로 멋진 내가 되는 거라고. 

훤칠한 저 윌 스미스는 'I am not afraid to die on a treadmill.' 이라고 하면서, 원하는 삶을 사는 비결은 simple, 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운동을 마치고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들어 오는데, 문득 오늘이 금요일이라는 사실을 몇 시간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열심히 살고 있는게다. 다행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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