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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Feb 07. 2017

#187 길 없는 길을 가고 있다고 느낄 때

아우가 서울에서 3주를 머물다 오슬로로 돌아갔다. 

교환학생 한 번, 영어캠프 한 번 나간적 없던 아우에게 영어는 더듬더듬 그 자체였다.(이 글을 보면 아우가 움찔이나 버럭은 할지언정, 아니라고는 못할거다) 그래도 노르웨이에서 꾸역꾸역, 이사도 하고 김치도 담그고 빵도 손수 만들어 먹더니, 좋은 은사님 밑에 박사 과정도 무사히 들어갔다. 문헌학 특성상 다행히 시간의 문제일 뿐, 논문도 마칠 수 있을 거라고.

마틴 루터 킹은, 계단을 올라갈 때 끄트머리를 볼 필요는 없다 했다. 눈 앞의 한 계단만 보이면 충분하다고 말이다. 모세는 홍해를 건널 때 그의 앞에서만 바다가 양쪽으로 갈라졌더랬지. 겨울왕국에서 엘사가 절벽에서 절벽으로 건너갈 때, 그녀가 손을 뻗은 자리에선 얼음 다리가 생겨났다.

우리 삶은 진짜 그런것 아닐까. 일단 한 계단을 올라서면 바다가 갈라지고 다리가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물론 이런 생각을 공식 같은 것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을 게다. 올라서지 않은 상태에서는, 바다로 내달리지 않은 상태에서는, 길은 보이지 않을테니 말이다. 

어쩌면 길이란, 원래 길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한 걸음 내딛을때 딱 다음 발을 놓을만큼만 공간이 생기고, 그렇게 한참을 걸어간 후에 남겨진 흔적을 멀리서 바라만 보던 사람들이 "길"이라고 부르는 것일지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길 없는 길을 가고 있다고 느껴질 때, 그때 우리는 눈치챌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우리가 맞는 길을 가고 있다고 말이다. 


            




글을 쓸 시간이 없다. 조금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블로그'에 '마음 편히' '오랫동안 해온' 끄적이는 글을 쓸 시간이 없다는 이야기다. 회사에서 일로서 만들어 내야 할 텍스트는 백업 파일에 척척 잘도 쌓고 있고, 마감이 있는 다른 원고는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무진장(無盡藏)' 쏟아내는 중이며, 팟캐스트에 들어갈 사운드로서의 컨텐츠는 1년 3개월 동안 쉬지도 않고 줄줄 흘렸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끄적거리는 글을 쓸 시간만 좀처럼 나지 않는 것이다. 

긴 글을 쓸 수 있을 때가 되어야 다시 글을 쓰려 한다면, 다듬은 글을 내놓을 수 있을 때가 되어야 다시 글을 올리려 한다면 언제 다시 글을 잡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느니 차라리 틈 나는 대로, 말 그대로 '거치고 짧은' 조각 글이라도 쓰는 것이 맞겠지 싶다. 그 편이 더 행복하고 말이다. 

나중에 이리저리 이으면 조각보라도 만들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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