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모아가 어떤 인연으로 신발 브랜드 멀티샵의 이름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원래 "Less is more."는 모더니즘의 대표 슬로건이었다. 더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다. 복잡한 것을 배제하라. 더 단순하게 할 수 있다면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
아마 이 말을 심장에 새기고 살아간 사람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는 스티브 잡스일게다. 그가 아니었으면 전면에 버튼이 한개뿐인 전화기는, 아예 나오지 않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확실히 배가 나온 아재가 된 다음에야 세상에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10개의 숫자 버튼과 최소한의 상하좌우 버튼 마저 없애라고 한 것은 확실히 잡스의 고집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라. 예전에 우리가 휴대폰을 바꿔오면 그 안에는 책자 두께의 사용설명서가 같이 있었다.
그런데 "Less os more."가 비단 제품의 철학 안에 한계지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 한 것은 달리는 철학자 조지 쉬언의 "달리기와 존재하기"의 어디쯤엔가 였다.
조지 쉬언은 말했다. 러너는 더 적은 것을 요구한다고. 그럼으로써 더 많이 존재할 수 있다고. 파티, 성공, 화려함, 분주한 일상에 파묻혀 더 "많이"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은 "더 많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달리기는 단순하다. 운동화에 셔츠면 얼마든지 "러너"로서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달리는 행위"에 최대한 집중함으로써 러너는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더 많이" 러너로서 존재할 수 있다. 존재로서의 "Less is more." 는 그런 의미이다.
몇달 전인가 굉장한 뷔페를 간 일이 있었다. 다녀온 이라면 십중팔구 sns에 음식 사진을 공유할만한 그런 뷔페였다. 나는 원래 뷔페를 굉장히 좋아하는 뷔페 귀신이었고, 그날은 당연히 나의 기대치가 최고였다.
하지만 more의 극단에서 나는 more의 무의미함을 맛볼 수 있었던 거다. 모든 음식이 맛있고, 모든 음식이 예뻤지만, 모든 음식이 맛있었기에 어느 음식도 맛있지 않았다.
이것 말고 다른거, 이거보다 더 맛있는 다른거를 찾아 원숭이처럼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몇 달이 지난 지금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 뷔페의 최고 요리는, 그저 볶은 아스파라거스다.
"Less is more."
더 적은 것을 온전히 즐기려 할 때, 더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