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고도의 집중이다
벼락처럼 솟아난다, 고 하면 말이 조금 안 맞는 것 같이 들리지만 왠지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땅에서 솟아난다. 벼락이 치듯이. 번쩍. 그리고 순식간에 하늘에 닿는다. 꼭 그런 이미지다. 바로 이 시간 꽤나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야마구치 마유의 <7번 읽기 공부법>이다.
포털 사이트의 리뷰 숫자는 불과 예닐곱 개 남짓인데 주요 서점의 판매 등수는 종합 10위 안쪽이다. 엄청나게 많은 독자들이 채 리뷰들이 올라오기도 전에 제목과 광고 문구를 보고 구매했다는 이야기다. 발매일은 3월 26일. 오늘이 3월 말일이니 불과 일주일도 안 된 책이다.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정신없이 팔리고 있는 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땅에서 솟아나 벼락같이 솟은 베스트셀러다.
그럴만 하다, 고 생각했다. <7번 읽기 공부법>. 과외 없이 독학으로 동경대를 입학, 수석 졸업하고 재학 중 사법시험과 행정고시를 합격한 저자가 쓴 글이라니, 누구라도 사보고 싶지 않겠는가. 제목을 잘 뽑았다, 고도 생각했다. 나 역시 제목만 보고 신용카드 결제를 클릭한 사람 중 한 명이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호기심이었다. 정신없이 나의 손을 장바구니 담기 > 주문하기 > 결제 완료로 잡아 끈 것은 말이다. 정말 될까.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일까. 과장이 섞여 있는 것은 감안하더라도, 과연 납득할 수 있는 범위일까. 나는 몹시 궁금했다.
책은 생각보다 얇았다. 활자도 큼지막해서 A4 용지에 텍스트로 옮기면 분량 자체는 얼마 되지 않을 듯 싶었다. 아무튼 <7번 읽기 공부법>에서 말하는 공부 방법의 핵심은 이거다.
이해하지 않고 술술 빠르게 읽어나가기. 통독 횟수를 늘리면 저절로 외워진다.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주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한문 시간이었다. 본문을 해석하고 새로 나온 한자를 암기해도 학교 시험에서는 꼭 한 두 문제 정도씩을 틀렸다. 획수를 빼먹던지, 글자를 착각하던지 하는 사소한 착오였다. 그렇게 작은 실수들로 점수가 기름을 바른 쥐꼬리처럼 쏘옥 빠져나가니 공부가 하기 싫어졌다. 자칫 자신감을 잃을 수 있는 일이었다. 원래 댐은 작은 구멍으로 무너진다.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그래서 한문 교과서의 본문 전체를 외워버려야 겠다고 생각했다. 본문 전체라 해도 그다지 많은 것은 아니다. 7언 절구니 5언 율시니 텍스트 자체는 한 페이지 남짓에 불과했다. 그런데 본문을 어떻게 하면 외울 수 있을까. 가뜩이나 미워지려하는 한문 과목인데 말이다. 그 때 내가 택한 방법이 옮겨 쓰기였다. <7번 읽기 공부법>에 비유하자면 '10번 쓰기 공부법'이랄까.
구체적인 행동 지침도 <7번 읽기 공부법>과 같았다.
이해하지 않고 술술 빠르게 옮겨 쓰기.
글자를 따라 그리며 횟수를 늘리면 저절로 외워진다.
그랬더니 외워졌다.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10번쯤 쓰면 어느 정도는 익숙해질테니 그 다음에 본격적으로 '암기'에 들어가려던 것이 애초의 계획이었다. 말하자면 텅 빈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기 전에 쓱쓱 하는 스케치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외워졌다. 본문이 저절로 머릿속에 걸어들어와 엉덩이를 깔고 앉는 느낌이었다.
처음 2~3회를 옮겨 적을 때는 '원숭이가 글씨를 흉내 내는' 수준이었다. 글씨를 쓴다기 보다는 그림을 그린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그런데 5회를 넘어 7~8회에 이르니 조금씩 외워졌다. 교과서를 보지 않아도, 다음 문장에 무엇인지 확인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렇게 10번을 옮겨적은 후에는 외우지 못한 본문이 없었다. 해석하려 애쓸 필요도, 새로 나온 한자를 따로 암기할 필요도 없었다. '10번 쓰기 공부법'을 시작한 이후에는 한자 시험에서 거의 틀리지 않았다. 플레밍의 페니실린처럼, 홧김에 저지른 일로 우연히 발견한 공부법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착각해서는 안되는 사실이 있다. 확실한 방법임은 틀림이 없지만, 공부 시간이 적게 걸리는 방법은 아니라는 점이다. 기존의 공부 방식보다 절대시간은 더 소요되었다. 궁금하거든 당시(唐詩) 하나를 골라 베껴써보라. 따라 그리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단지 반드시 외워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없었고, 결과가 확실하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는 방법이었다.
<7번 읽기 공부법>도 비슷했다. 이해해야 한다, 암기해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빠른 속도로 통독을 하다보면 큰 스트레스없이 쉽게 외워진다는 주장에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갔다. 게다가 저자는 고시 2관왕을 거머쥔 사람이다. 자랑할만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법체계는 일본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지금도 서초동에서는 중요한 재판이 있을 때마다 일본 판례를 뒤적이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러니 저자가 일본 사법시험을 단기간에 패스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나도 제법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책 표지에 복고풍의 글씨로 써 있는 것처럼 '공부 머리 없어도 딱 7번만 읽는' 일이 소파에 앉아 감자칩을 먹으며 로맨스 소설을 읽는 것처럼 쉽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Never.
<7번 읽기 공부법>의 앞쪽 절반만 읽으면 자칫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공부 방법이 있었다니, 나도 이렇게 할 걸.' 하지만 책이 5부 능선을 넘어가며(제 4장 합격의 신으로 만들어준 7번 읽기 공부법, 쯤이었던 듯) '7번 읽기 공부법'을 실천하기 위해 저자가 경주한 노력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대학 입시를 중비할 때 14시간,
사법 시험을 준비할 때 19시간 반이라는 긴 시간을 공부에 투자했다.
하루 24시간 중에 식사는 각 20분씩 3회로 총 1시간, 목욕은 20분,
매일 밤 엄마와의 전화 통화는 10분, 그리고 수면은 3시간 이었다.
물론 반복은 엄청나게 중요하다. 통독을 반복하면 꼬리를 입에 물은 뱀처럼 앞과 뒤가 줄줄이 이어져 이해도가 높아진다는 이야기도 정확하다. 나 역시 늘 경험 중인 일이므로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10번 쓰기 공부법'을 할 때도 절대로 시간이 적게 들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단지 시간을 단축하고자, 혹은 보다 쉽게 공부하고자 '7번 읽기 공부법'을 시도하려 한다면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히려 <7번 읽기 공부법>에서 누구나 따라할 수 있고(따라해야 하고), 주목할 필요가 있는 비법은 바로 이 문장이 아닐지.
"7번 읽기에서는 매회 사이에
쉬는 시간을 두지 않고 읽기를 추천한다.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다음 회를 읽으면 머릿속에 정착이 빨라진다. 나도 학창 시절에 시험공부를 할 때는 각 읽기 사이에 가능하면 시간을 두지 않았다. 7번 읽기를 하루 안에 할 수 있다면 이상적이다."
우리는 7번은 커녕, 고작 단 한 번 읽는 도중에도 수도 없이 맥을 끊는다. 스마트 폰을 만지고, 물을 마시고, 몸을 뒤척인다. 아마 한 번 통독을 하고 난 후에는 반드시 으갸갸갸 기지개를 펴며 뿌듯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리라. "아, 오늘 공부 많이 했어."
고도로 집중하여 쉬지 않고 읽는 것. 그리고 다 읽은 뒤에 멈추지 않고 계속 공부하는 것. 야마구치 마유의 공부법 중 '진짜'는 그 부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