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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Dec 07. 2017

#192 삶의 문법, 양상추를 씹다가

조금 전의 일이다.


회사를 마치고, 여느때처럼 운동을 끝내고 돌아왔다. 17,400보를 걸었다는 스마트밴드의 기록이 거짓이 아니라고 시위하는 것마냥 발가락은 욱씬거렸다. 나는 어제 먹다만 양상추 반 통을 스텐인리스 뚜껑에 싣고 와 책상 앞에 앉았다. 대강 접은 얇은 담요가 얹혀있는 나무 의자 위에서 종일 피곤했던 몸은 충분히 편안했다. 나는 양상추를 손으로 뜯어 씹으며 아우가 보낸 글 한쪽을 읽으려던 참이었다. 아찻, 케찹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생각이 났다. 부엌으로 가 1/3쯤 남은 케찹 병을 달랑달랑 들고 왔다. 양상추는 아삭했고, 케찹은 달았다.   


서울대 종교학과의 배철현 교수의 칼럼이었다. 학교 다닐 때 배운 적은 없었지만 그 분 책도 집에 있었고, 몇 번인가 글을 읽기도 했다. 종교학과를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에 지금과 다른 길을 선택했더라면, 직접 사사했을 수도 있는 선생님이다. 나는 양상추를 우적거리며 읽기 시작했다. '문법(文法)'이라는 제목. "1993년 3월 나는 하버드대 와이드너 도서관 5층에 마련된 고대 근동학 도서관에 초초하게 앉아있었다."로 시작하는 첫문장이었다. 


수메르어를 배웠던 경험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아우가 산스크리트어를 전공하는 덕분에 더 눈이 갔다. 지역은 근동(近東)과 인도로 다르지만 인류 문화의 두 반석이었던 고대 언어에 대한 배움의 길에는 분명 쌍둥이처럼 닮은 면이 있을터였다. 배철현 교수는 수메르 어를 공부하면서 점토판을 들고 쐐기 문자를 공부하던 기억을 풀어 놓고 있었다. 

나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보았던 수메르 점토판이 생각났다. 정말 '책의 역사'에서 읽은 대로 신용카드 크기의 직사각형 판에 쐐기를 닮은 깨알만한 글씨가 빼곡히 파여 있는 판이었다. 스크롤을 내리면서, 양상추를 부지런히 씹으면서, 역시 루브르에 가서 다리가 부르트도록 눈에 담고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한켠으로는 여덟시간 시차가 나는 지구 반대편에서 지금 바로 이 시간에도 산스크리트 어를 똑같이 보고 있을 아우를 생각하면서, 나는 글을 읽었다. 


배철현 교수는 수메르어를 공부하면서 인생을 지탱하는 두 가지를 배웠다고 말했다. 첫번째는 근면, 두번째는 겸손이었다. 시간을 들여 외우고, 복습한 만큼, 엉덩이를 의자에 붙인 그만큼 배움이 는다는 것을 체험했기에 근면이고,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공부한 것에 비례해서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짐을 겪었기에 겸손이라 했다.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오른손으로 양상추에 뿌릴 케첩을 더듬었다. 


그래, 공부란 그런거지. 맞는 말씀이지. 그리고 동시에 내가 앞으로 무엇을 써야하고,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는, 내심 막다른 순간이 온다 하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더 부지런히 읽다보면, 공부해야 할 더 많은 공간이 계속 열릴테니까. 그래, 그렇지. 어리석은 내가, 제자리에 멈추어 서서, '더 이상 갈 곳이 없으면 어쩌지' 라고 고민할 필요는 평생 없겠구나. 


글을 읽기 참 잘했다, 라고 생각할 즈음 손에 쥔 양상추도 주먹만큼 작아졌다. 글은 마지막 문단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렇게 시작하는 문단이었다. "1993년 5월, 나와 동료들은 ‘룸-지’에서 야콥슨 교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처음으로 수업에 나타나지 않아 휴강했다." 그때 나는 양상추를 손으로 떼고는 '한 입에 넣기에는 조금 크네.'라고 생각했다. 뿌리 쪽이었기 때문인지 좀 썼다. 입 안에 꽉찬 양상추가 마치 숲이라도 통채로 갈아버리는 것처럼 와사삭 소리를 내며 씹혔다. 글은 이렇게 이어졌다. 


"그가 처음으로 수업에 나타나지 않아 휴강했다. 그날 저녁 뉴욕타임즈 신문에서 야콥슨 교수의 부고(訃告)를 읽었다. 세계적 수메르학자 야콥슨이 책상에 앉아 수메르 문헌을 읽던 중 편히 영면하였다."


살다보면 가끔 그런 표현을 써야하는 순간이 있다.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몇 초가 지났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몇 십초가 지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멈췄던 세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내가 처음 든 알아챈 것은 내가 양상추를 씹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하나 둘씩 눈 앞의 공간이 시선 안으로 들어왔다. 모니터의 작업표시줄에 깜빡이는 카톡 창과, 스테인리스 뚜껑 위에 있는 먹다남은 양상추 조각과, 아우가 주고 간 엄지 손가락만한 불상 아래 뽀얀 먼지가 불이 켜지듯 하나씩 차례로 눈이 들어왔다. 


그러고 나서 조금 전 세상이 멈췄던 그 시간 동안 내가 바라보았던 것들이 기억났다. 그때 나는 아우와 나의 마지막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아우도 나도 저렇게 가려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게다. 퇴직한 지 20년이 지난 노교수가, 한 번도 빠짐없이 격주로 학생들에게 자신이 아는 것을 가르쳐주었던 노선생이, 책상에 앉아 수메르 점토판을 읽으며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장면에 겹쳐서 말이다.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윙윙 돌아가는 컴퓨터의 소음과, 창밖에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노 학자가 되어, 혹은 노 작가가 되어 저렇게 가는 일도 나쁘지 않겠거니 싶었다. 문득 씨익 하고 웃음이 지어졌다. 배철현 교수의 다음 문장은 이랬다. "그의 삶은 수메르어 문법처럼, 간결하고 강력했다. 그는 자신에게 최선인 삶의 문법을 찾은 도인이다." 

내가 나의 삶의 문법을 찾았는지는 아마 그 마지막 시점이 되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것도, 자랑할 일도 아닌, 오로지 나를 위한 과제이리라. 하지만 왠지 먼 훗날 그 순간이 되면, 지금 오늘, 세상이 멈춘 이 순간에 보았던 그림이, 다시 찾아올 것만 같았다. 


배철현 교수님의 글 원문 URL은 다음과 같습니다. 


http://www.hankookilbo.com/v/fe49e56f8b3d48dabf6d2e40f19e7b6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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