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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May 23. 2019

#195 퇴사를 고민할 즈음, 종종 그 상사를 생각했다


4.오사카의 영광이여, 꿈속의 꿈이런가


회사와 이야기를 마치고 퇴사를 한 달쯤 앞둔 다음이었다. 마지막 출근일을 정해놓고 나자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아직 시간이 꽤 많이 남아있다는 생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날짜가 반드시 오기는 오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전자는 일상에 대한 지루함을, 후자는 일상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다. 양가적인 그 감정 때문이었을까. 퇴사를 준비하는 그 시간 동안 나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꽤 많이 했다. 실감이 나진 않지만 다가올 것이 확실해진 퇴사일 앞에서, 역시 아직 실감이 나진 않지만 언젠가 확실히 다가올 죽음이 저절로 연상되었던 것이다.  


'어느날 아침 눈을 뜨면 마지막 출근일이 되어 있겠지.’ 라고 매일 생각하며 한 달을 보냈고 결국 마지막 아침은 예외없이 왔다. 지금은 마지막을 기다리던 날들과 그 마지막 아침조차도 지나가 버린 채 이렇게 모두 이렇게 기억 속에만 남아 있다. 죽음과 맞닥뜨릴 날도 언젠가 반드시 이와 똑같은 구조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이 생에 대한 마지막 출근일이 정해지고, 그 날짜가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하다가, 어느날 아침 눈을 뜨면 그 날이 되어 있겠지. 이조차도 가장 운이 좋은 경우라야 가능한 일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죽기 직전에 이런 시를 남겼다. “몸이여, 이슬로 와서 이슬로 가니. 오사카의 영광이여, 꿈속의 꿈이런가.” 회사의 시간들이 이미 꿈결처럼 느껴진다. 그렇기에 삶 전체의 시간 또한 결코 다르지 않을 것임을 안다. 꿈 속의 꿈임을 알되 최선을 다해 꾸는 수밖에 없다면 무슨 꿈을 꿀 것인가.  





5.불가에 역행보살(逆行菩薩)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이 나에게 진정으로 좋은 것인지 아닌지 사실 우리는 알 수 없다. 좋다고 생각한 일이 불행의 씨앗일 수도 있고, 나쁘다고 여긴 일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가만히 스스로를 되짚어볼 때, 과거에 경험한 괴로움 덕에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구나 싶은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고시에서 떨어져 보지 않았다면 공부로 힘들어하는 수험생을 이해하지 못했을테고, 야심차게 창업했던 가게 문을 닫아보지 않았다면 자영업자의 막막함을 공감하지 못했을테고, 평탄하던 회사가 갑작스레 매각되지 않았다면 살 길을 찾기 위해 팟캐스트를 시도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다. 몇 년 전, 즐겁게 근무하던 부서에서 내동댕이치듯 밀려난 일이 있었다. 꽤 좋아하는 일이었고, 제법 잘하고 있었으므로 많이 당황스러웠다. 면담은 짧았다. ‘해 줄 말이 없고, 같이 갈 수 없다’가 나를 밀어난 상사의 통보 전부였다. 이유를 말해줄 수 없다고 들었으므로, 말해줄 수 없다면 부당한 이유라 생각했고, 듣지 않았어도 짐작되는 이유는 있었다. 인연에 따라 사는 것이 맞다고는 하나 그 순간에는 억울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퇴사를 고민할 즈음, 종종 그 상사를 생각했다. 그가 없었다면 분명 더 즐겁게 일했을 것이고, 적어도 지금보다는 오래 회사에 머물렀을 것이다. 좋아하는 일이었고, 잘하는 일이었으므로. 그렇다면 그때의 통보는 나에게 나쁜 일이었을까. 그리고 그 상사는 나에게 좋지 않은 사람이었을까. 


불가에 역행보살(逆行菩薩)이라는 말이 있다. 좋지 않은 일을 함으로서 결국 나에게 도움을 주는 보살이다. 좋은 일은 그 자체로 기뻐하고, 나쁜 일은 나쁜 일이 아닐 수도 있기에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삶의 괴로움은 많이 줄어든다. 역행 속에서 보살을 볼 수 있는 눈만 열려있다면 말이다. 





6.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퇴사를 결심하기 전까지 그 결정을 가로막는 가장 커다란 장애물은 ‘혹시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 라는 의구심이었다. 글이 안 써지면 어떻게 하지? 강의가 안 들어오면 어떻게 하지? 지금이 성공의 정점이고 앞으로 내리막길 뿐이라면 어떻게 하지...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심지어 ‘갑자기 어디가 아프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통장 잔고와 객관적인 계산과 지난 몇 년 동안의 노력들이 담보하고 있는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이유없이 와르르 무너지는 마음을 나는 지겹도록 마주했다. ‘막연한 불안감’의 힘은 대단했다. 


재미있는 것은 퇴사가 결정된 이후였다. 회사에 의사를 밝힌 바로 그 순간부터 ‘혹시 실패하면...?’이라는 생각은 깨끗이 사라졌다. 할까말까 하는 고민이 끊어짐과 동시에 '혹시…?’는 자취를 감추었고, 마음은 부정적인 그림을 그리는 대신에, 해야할 일들을 늘어놓기 바빴다. 집 밖을 나가기 싫다며 버티던 강아지가 문을 나서자 마자 목줄이 팽팽해지도록 내달리는 꼴이었다. 나는 마음이 지어내는 ‘막연한 불안감’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경계를 보았다. 


해야할 일이 있고, 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데, 단지 막연하게 불안해서 주저하고 있다면 눈을 딱 감고 그냥 해버려야 한다. 마음은 잔머리를 잘 굴리는 게으른 하인과 같다. 망설이는 주인에게는 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열심히 떠벌리지만,  이미 일을 벌인 주인에게는 최대한으로 조력한다. 주인이 살아야 자신도 산다는 사실을 아는 까닭이다. 막연한 불안감은 막연하기 때문에 망상이다.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뒤집한 망상에서 벗어나 멀어진다면, 끝내 우리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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