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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Jun 02. 2019

#202 변화는 마음가짐으로만 오지는 않는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부는 소리가 흔들리는 나뭇잎들을 따라 들린다. 저 새파란 잎사귀처럼 불어오는 바람도 시원하다. 이른 아침, 산 속의 바람이다.


나는 바람의 소리를 귀로 들으며 벤치에 걸터앉아 눈을 감고 있다. 눈을 감으니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 너머에, 저쪽 멀리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 골짜기로부터 자동차 도로의 웅성거림 역시 슬그머니 올라온다.


나는 이곳에 앉아 우주를 상상한다. 앉아 있는 나와, 이 숲 전체와, 숲 바깥의 도시와 그리고 그보다 더 커다란 범위의 것들을 머릿속으로 그린다. 상상 속의 시선이 점점 위로 올라갈수록 나는 작아져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 숲과 도시와 우주는 유리구슬처럼 뒤섞여 아름다운 무엇이 된다. 나는 우주 속의 점으로서 이 자리에 앉아 있다. 그리고 이 작은 나로서 오늘 해야할 일에 대해 생각한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우주가 직접 시킨 것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응답했다.”고 마이클 싱어는 말했다. 유명한 명상가이자 숲속의 은둔자, 그리고 미국에서 손꼽히는 소프트웨어 기업의 CEO다. 소프트웨어와 거리가 멀고 은둔할 생각과는 더더욱 먼 나지만, 싱어의 글을 읽으며 싱어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그가 될 수는 없더라도 그가 손짓해 준 방향에서 나의 길을 찾을 수는 있으니. 나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우주가 직접 시킨 것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는 삶의 길.


퇴사를 하면 내 뜻대로 살 수 있다는 자유의 약속은, 이제 내 뜻이 지시하는 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의무의 구속과 같다. 나에게는 질서와 방향이 필요했다. 질서가 없으면 일상이 무너지고 방향이 없으면 삶이 흐트러진다. 다행스럽게도 나에게는 손짓으로 길을 가르쳐주는 훌륭한 스승들이 많았으므로 나는 내가 알고 있는대로 살아보려 결심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우주의 일이다. 나는 싱어처럼 주어진 모든 것이 우주의 일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변화는 마음가짐으로만 오지 않는다. 마음을 먹는 것은 변화의 시작이나 그 시작을 매듭 짓는 것은 언제나 구체적인 행동이다. 행동(行動). 다님으로서(行) 움직일 것(動). 나의 이 팔다리와 몸뚱아리를 움직여 어디론가 가야했다. 나는 매일 아침 여섯시 뒷산으로 움직였다.


아침에 눈을 뜬다. 가급적 일찍 잠자리에 드니 알람을 맞추지 않더라도 대여섯시에는 잠이 깬다. 이불을 개고, 세수를 벅벅하고, 머리맡에 걸어 놓은 운동복을 입는다. 그리고 야트막한 뒷산으로 향하는, 10분쯤 걸리는, 그래서 한번도 즐거운 적 없었던 급한 오르막길에 걸음을 내딛는다. 거기까지다. 나머지는 폭신한 숲길이다. 뒷산 정상에만 오르면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된다. 그리고 30분쯤 땀을 흘린 후에 벤치에 앉아 이렇게 우주를 상상한다. 


움직임은 그 자체로 결과다. 그 결과들이 물건이나 돈을 만들어 냈느냐는 질문은 부차적이다. 움직인다는 것은 그 자체로 변화인 까닭에 그 자체로 결과가 된다. 게으른 이 몸을 이불 위에서 숲속으로 옮겨다 놓는 정도의 변화라도 말이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부는 소리가 흔들리는 나뭇잎들을 따라 들린다. 저 새파란 잎사귀처럼 불어오는 바람도 시원하다. 이른 아침, 산 속의 바람. 아마도 나의 응답을 우주에 전하는 바람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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