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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Jun 07. 2019

#207  저절로 그렇게 된다

'나는 건강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다'라는 식으로 생각을 하니 저절로 살이 빠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요즈음의 나는 확실히 재미를 보고 있는 방법이긴 하다만, 나와는 달리 ‘그렇게 생각해도 안 되는데?’하는 경우 역시 있을 것 같다. ‘나는 수학을 잘 하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한다 해서 모두가 당장 1등급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조금쯤 설명을 덧붙여야 물을 쏟아 놓고 사라진 무책임한 카페 손님 취급은 당하지 않을 것 같다. 


얼마 전에 털레기를 먹었다. 털레기는 재료들을 이것저것 한 군데 넣고 끓인 수제비를 말한다. 아주 유명한 집이라 주차가 힘들었고 점심을 거른 나는 꽤 배가 고팠다. 다행히 오래 기다리지 않아 항아리 가득 수제비가 나왔다. 김이 펄펄 나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듬직했다. 그 안에는 수제비와 함께 배추 시레기도 잔뜩 들어있었다. 다시 보니 메뉴 이름이 ‘시레기 털레기’다. 국자로 수제비를 뜨는데 수제비와 시레기가 반반쯤 되었다. 나는 사실 밀가루를 엄청나게 좋아한다. 통통한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말이다. 단군 신화처럼 동굴 속에 들어가 100일 동안 살아야 한다면 아마 밀가루를 가져가지 않을까. 그것으로 빵도 굽고, 국수도 삶고, 수제비도 떼고, 부침개도 만들고… 그렇게 수제비를 좋아하는 나였는데 시레기와 수제비가 함께 들어있는 그릇을 보며 대번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시레기를 많이 먹으면 몸에 좋겠다.’ 


생각은 무의식적이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떠올라 버린다. 적당한 자극이 주어지면 동전을 넣은 두더지 게임처럼 툭툭툭 튀어나오는 것이 생각의 본성이다. 중요한 것은 무슨 생각이 주로 고개를 드느냐다. 펄펄 끓는 수제비라는 자극 앞에서는 ‘시레기가 몸에 좋다’는 생각도, ‘오늘 벨트 한 번 풀어볼까’하는 생각도, ‘내 사랑 수제비!’하는 생각도 모두 가능하다. 그 가운데에서 ‘시레기!’하는 목소리를 가장 크게 만드는 것이 저절로 줄어드는 체중의 비결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길이 있다. 누구나 그 길을 가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나는 두부를 먹으면 몸이 튼튼해질 거라 생각했다. 구운 두부를 잔뜩 먹고는 “두부 대장 튼튼!”하고 배를 북처럼 두드렸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의 일이다. 내가 두부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한 것은 엄마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 하셨기 때문이다. “이 두부가 얼마나 좋은 건데.” 엄마는 유독 두부를 편애 했던 것 같다. 엄마 입장에서 두부가 제일 흔하고 싸고 반찬 삼기 수월한 재료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 말을 반복적으로 들은 나는 늘 두부에 젓가락을 댔다. 두부를 먹으면서 몸에 좋은 거라고 반복해서 생각했고, 먹고 난 다음에는 몸이 좋아졌다고 신나 했다. 무슨 보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말이다. 결국 두부를 좋아하는 입맛은 40년 째 이어지고 있다. 지금도 나는 두부를 보면 ‘건강한 음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아이들이 뽀빠이를 보면서 시금치 먹는 습관을 들이는 것과 같다. 요컨대, 생각하고 행동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정체성은 테이블과 같다고 앤서니 라빈스는 말했다. 테이블이 튼튼하려면 그 테이블을 떠받치는 다리가 튼튼해야 한다. 다리는 근거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근거들. 그러므로 '나는 건강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다’라는 정체성을 테이블 상판으로 쓰려고 결심한 다음에는 다리를 하나 하나 세워야 한다. 눈을 뜨면 운동복을 입고, 아침은 든든히 먹고, 이른 저녁 식사 이후에 야식은 참는다. 


다행히 '건강한 생활’에 맞는 행동을 조금씩 하다보면 점점 더 쉬워진다. 다리가 늘어날수록 테이블 세우기가 더 수월해지는 것과 같다. 이제부터 나는 '건강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했으므로 건강하게 먹고, 건강하게 먹을수록 '건강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더 강해져 건강하게 먹기가 더 쉬워진다. 선순환이다. 게다가 이런 결심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우적우적 야식과 폭식으로 살아온 나라고 해도 그런 정체성을 갖는데는 아무런 모순이 없다. 나는 ‘지금부터’ 건강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으니까. 


이렇게 결심하면 야식이나 폭식 생각이 뚝 끊어질까요, 라고 궁금해 할 지도 모르겠다. 아쉽게도 답은 ‘아니요’다. 습관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 몇 년씩 살아온 ‘나’가 그렇게 간단히 바뀔 리는 없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업장이 두텁고, 힌두식으로 말하면 까르마가 강하며, 뇌과학적 표현으로 하면 시냅스의 연결이 단단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 반복이라면, 새로운 반복을 통해 머지 않아 ‘다른 나’가 되어 있을 것이다. 저절로 그렇게 된다.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열흘 쯤 지난 일이다. 밤에 라면이 먹고 싶었다. 양은 냄비에 보글보글, 새빨간 배추 김치를 척. 생각은 무의식에서 떠오르나 행동은 의식으로 통제할 수 있다. 나는 라면을 끓여 먹기로 결정했다. 다만. 그 밤이 아니라 다음 날 아침에. 나는 건강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니까. 


눈을 떴다. 평소처럼 운동복을 입었다. 뒷산을 다녀온 후에 약속한 대로 라면을 끓여서 아침으로 먹었다. 그 날 이후 아직까지는 밤에 라면이 먹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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