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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Jun 06. 2019

#206 퇴사를 하고 체중이 저절로 줄었다

2.5kg이 줄었다. 퇴사하고 꼭 한달 만이다. 아니다. 다시 계산을 하자. 도쿄 여행을 다녀오는 동안 몸무게가 꽤 올라갔으니, 4kg이 줄었다. 제일 무거웠을 때로부터 말이다. 보름 남짓이다.


체중계에 올라설 때 눈이 즐겁기는 하지만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그 정도 체중감량이야 별로 자랑할 것은 못 된다. 남자라면 그렇다. 원래 통통한 남자라면 더욱 그렇다. 예전에 마음먹고 체중을 줄였을 때는 한 달에 8kg을 빼 본 적도 있고, 군대에서는 5주 동안 13kg을 줄이기도 했다. 숫자만 보면 호들갑을 떨 정도까지는 아닌데, 그래도 이번 변화를 “좀 괜찮은데?”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딱 한 가지 이유가 있다. 이번에는 4kg이 ‘저절로’ 줄었다. 


오해가 있을 수 있으니까 ‘저절로’라는 말의 의미를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첫째, 체중계를 보지도 않았는데 뱃살이 들어가 있었다거나 아예 몸무게에 관심도 없었는데 저절로 옆구리가 잘록해졌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매일 아침 한 번씩 체중을 쟀다. 둘째, 삼시세끼를 마음껏 먹고 마셨는데 4kg가 빠졌다는 뜻도 아니다. 글쓰는 리듬이 깨지는 것이 싫어 보통은 점심을 거르고 일을 했다. 대신 아침을 든든히 먹었고 저녁을 일찍 차렸다. 마지막 셋째, 운동하지 않고 누워서 숨만 쉬었는데 배가 들어갔다는 뜻 역시 전혀 아니다. 막상 퇴사를 하고 보니 활동량이 꽤 많이 감소했다. 출퇴근하면서 걷는 시간과 사무실 안에서 돌아다니는 걸음이 알게 모르게 꽤 많았던 것이다. Fitbit 데이터를 보고 안되겠다 싶어 아침 운동을 추가했다. 그제야 회사를 다닐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돌아왔다.


예전에 베스트셀러였던 <시크릿>에서는 Eat like a horse, 실컷 먹으면서도 “살이 빠진다”라고 생각만 하면 마법처럼 체중이 준다고 가르쳤다. 어쩌면 그런 것이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저절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저절로’는 그와 다르다. 나에게는 마법도 없고 비밀도 없다. 


사람이 정말로 바뀌려면 세 가지 단계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다. 결과가 바뀌고, 행동이 바뀌고, 정체성이 바뀌어야 한다. 아마 앤서니 라빈스가 오래 전에 널리 퍼뜨린 이야기일 것이다. 그 세가지 단계에는 층위가 있다. 사과에 비유하자면 껍질이 결과, 과육이 행동, 씨가 정체성이다. 세 가지 층위에는 우열이 없다. 진짜 다른 사과가 되고 싶다면 세 가지 모두가 바뀌어야 한다. 다만 문제는 변화의 순서다. 


우리가 보통 원하는 것은 결과다. 성적이 오르길 바라고, 연봉이 높아지길 바라고, 인간관계가 원만하길 바란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 단계에만 머물러 있다. 씨도, 과육도 변화가 없는데 껍질만 매끈해질리는 없다. 그래서 의지가 있는 일부의 사람들이 그 다음 단계까지 들어간다. 행동이다. 책을 읽고, 계획을 세우고, 마음 공부를 한다. 그렇게 계속하면 뭐가 되어도 될 텐데 사실 지속하기가 쉽지 않다. 언제 그랬냐는 듯 하던 일을 손에서 놓아버린다. 껍질은 매끄러워지려다 만다. 결국 무언가를 계속하려면 사람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정체성이다. ‘이번에 담배를 끊은 사람’보다 원래 비흡연자가 나중에 담배를 피울 가능성이 낮다. 그래서 사과 전체를 바꾸려면 변화의 순서가 반대로 되어야 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정체성의 변화가 먼저다. 정체성이 바뀌면 행동이 변화되기 쉽고, 행동이 바뀌면 결과가 따라온다. 사과에서 제일 얇은 부위가 껍질이다. 나머지가 바뀌면 순식간에, 그리고 확실하게 바뀐다.  


퇴사를 전후해서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대한 생각을 꽤 진지하게 했다. 그 생각은 자연스레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표현이 이슬비처럼 온 몸을 축축하게 감쌌다. 앤서니 라빈스의 이야기가 와 닿은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나의 생각은 체중을 줄여야지, 혹은 야식을 끊어야지 정도에 머물러 왔다. 전자는 껍질이고 후자는 과육이다. 성공한 적도 있었지만 과정은 대개 녹록치 않았고, 그래서 오래 가지 못했다. 늘 수도꼭지를 손으로 틀어막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번에는 다르게 해보기로 했다. 씨부터 바꾸어볼까.  


“나는 건강한 생활을 하는 작가.”  


그렇게 정하고,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먹었다. 소처럼 씹다보니 풀도 제법 먹을만 했다. 운동도 무리하지 않았다. 짧으면 40분, 길면 60분. 체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하게 글을 쓰기 위해서 했으므로 그 정도가 적당했다. 모든 것을 건강한 생활에 맞추고 보름을 살았다. 그러는 사이 체중은 저절로 줄어 있었다. 내가 이야기하는 ‘저절로’란 이런 의미다.  


휘트니스 센터에서 인바디를 측정했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었다. 앞으로 계속 갈 수 있을까? 근육량은 평균 이상이지만, 체지방은 평균보다 훨씬 이상인 나다. 그래도 이번에는 조금 오래 갈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씨를 바꾸고 있으니까.  


어제 밤이었다. 또 일이 늦어져 자려고 생각한 시각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문득 맥주가 마시고 싶었다. '건강한 생활을 하는 작가’가 되고 나서 한 번도 방에서 혼자 맥주를 마신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란다에서 기린 캔을 하나 집어다 냉장고에 넣었다. 보리 첫즙의 100%만 담았다는 문구에 벌써 목이 상쾌한 듯 싶었다.  


그 때 머릿속에서 “주말이니까."라는 간사한 마음의 소리가 또 들려왔다. 아차, 어제 밤에 빵을 먹어치울 때 내 정신을 잠깐 사라지게 만든 그 목소리였다. 한 번의 잘못은 인간적인 실수, 두 번의 잘못은 의식적인 과오. 맥주를 마실 수는 있지만 두번째 화살로 마시는 것은 불가. 나는 다시 맥주를 냉장고에서 꺼내 원래 자리에 가져다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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