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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Jun 11. 2019

#209 다섯번 째 책이 나왔다

다섯번째 책이 나왔다, 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나왔다’함은 인쇄를 마친 상태로 출판사에 도착하였다는 뜻이다. 창고 어딘가에 척척 쌓이고 있을 종이 박스가 눈에 선했다. ISBN을 받는 책으로 계산하면 확실히 다섯번째지만, 개정판이나 상품의 형태를 제외하고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 새로 쓴 글자로 꽉 차 있는 책의 기준으로 본다면 세번째다. 30대가 가기 전에 세 권의 책을 썼습니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대단하다,고 말할 정도는 못되지만 그래도 손에 쥘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는 실감은 있다. 노력을 응축시켜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냈다는 실감이다.  


글이 쓰여진 경과를 서술하는 일에 대해서 퓰리처상 수상 작가 애니 딜러드는 탐탁치 않게 여긴 것으로 기억한다. 문장에 담긴 노고와 그 문장의 퀄리티는 꼭 비례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가 끙끙거리며 겨우 완성한 문장이 독자의 입맛에는 별로일 수 있다. 그런 경우 문장의 값은 읽는 사람이 매겨야 하는 것이지만,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꾸만 거기에 들인 품이 생각난다. 내심 기대하는 적절한 품삯이 있기 마련인데 만약 평가가 그만 못할라치면 기분이 좋을 수는 없는 노릇. 이런 상황에서 글이 쓰여진 경과를 짚어보려하는 것은 일종의 공임비 청구와 같은 행동으로 보였던가 보다. 나 역시 글을 쓰는 사람이므로 애니 딜러드의 조언이 관계없다 할 수는 없지만, 한 편으로 생각하면 헤밍웨이처럼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 것도 아니고, 소로우처럼 숲 속에 오두막을 짓고 들어가 산 것도 아닌데 청구서에 내역을 써 보았자 얼마나 나오랴 싶다. 뭉툭한 연필 끝으로 끄적여 본다.  


처음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30대 초반이었다. 카페를 열고 홍보할 목적으로 블로그를 개시했다. 손님들에게 커피 이상의 무언가를 더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1.2평짜리 조그만 가게를 겨우 얻은 자금 사정으로는 더 얹을 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쪽지’를 쓰기 시작했다. 노란 A4종이에 글귀를 프린트 하고는 오려서 접었다. 리본 모양이었다. 커피에 쪽지를 끼워주며 쪽지 10개를 모아 오면 한 잔을 무료로 드린다고 홍보했다. 쪽지에 들어간 글귀는 날마다 바꾸었다. 글을 적고, 프린트를 하고, 오려서 접는 일에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다. 그래도 쪽지를 쓰는 일은 즐거웠고, 모아 놓은 쪽지가 아까워서 차마 무료 커피와 바꾸지 못하겠다는 손님들의 이야기는 더 반가웠다. 쪽지에 적은 내용에 살을 붙여 블로그에 에세이를 썼다.  


가게를 접고 회사에 들어갔지만 애써 만들어놓은 블로그를 닫지는 않았다. 다만 가게 홍보의 목적으로 개시한 블로그라 어떻게 용도를 바꾸어야 할지는 조금 난감했다. 공정 무역이니, 좋은 원두 고르는 법이니 하는 것들을 쓸 수는 없었고, 그렇다고 ‘새내기 직장인의 꿀팁’ 같은 글은 어쩐지 성격에 맞지 않았다. 퍽 늦게 시작한 회사 생활이었으므로 적응하기에도 벅찼다. 먼지가 소복이 쌓이도록 한참을 내버려두었다. 시간이 흘렀고, 저녁의 술자리 회식에서 느끼는 긴장이 덜 해질 무렵, '퇴근 후에 무얼해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블로그를 다시 열었다. 그리고 아무 글이나 쓰기 시작했다. 일기가 절반, 편지가 절반인 글이었다.  


하루키와 스티븐 킹의 공통점이 있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 어디로 흐를지 정해 놓지 않고 시작한다는 것이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혹은 ‘어떤 상황이 떠오르면’ 거기서부터 그냥 펜에 묶어놓은 목줄을 풀어놓는다. 펜은 강아지처럼 하루에 일정 시간 어디론가를 향해 달려가고, 그렇게 몇 달 혹은 몇 년이 지나면 장편 소설 비슷한 형태의 종이 뭉치가 된다. 그렇게 나온 것이 초고다. 물론 거기서 끝은 아니고 그 뭉치를 매만져 작품으로 끌어올리는 그 다음 공정이 이어진다. 아무튼 하루키와 스티븐 킹이 그렇게 ‘계획없이’ 글을 시작한다는 것은 나에게 적잖은 용기를 주었다. 무언가를 쓰면, 어디엔가는 닿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나는 있었다.  


그래서 틈틈이 썼다. 쓸 거리가 넘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글감이 끊어진 적도 다행히 없었다. 써야 할 것들은 마치 낡은 우물물과 같아서 목을 축일 수 있는 한 줌 정도의 물은 늘 새로 고였다. 나는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물을 종이컵에 받아 커다란 수조에 옮겨 담는 심정으로 문장을 모았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한 번에 쓰여지는 글의 양이 조금씩 자라는 것은 확실했다. 달리기를 할 때 호흡이 느는 것과 비슷했다. 처음에는 1천자가 쉽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4천자도 어렵지 않았다. 길게 쓰는 글의 퀄리티가 무조건 더 좋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읽는 이로 하여금 1천자 동안 머무르게 하는 것보다 4천자 동안 머무르게 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임은 분명했으므로 나는 나아지고 있다고 여겼다.  


몇 년이 지나자 그렇게 쓴 ‘아무 글’이 230편을 훌쩍 넘겼다. 자기계발서로 분류되는 다른 책을 쓰고, 강의 원고를 완성하고, 팟캐스트 작업을 하면서 틈틈이 채운 수조였다. 그쯤 되자 책으로 묶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두서 없이 쓴 ‘아무 글’이 곧장 ‘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철물점에 있는 잡동사니들을 한군데 와르르 쏟아 놓는다고 해서 시계로 바뀌지 않는 것과 같다. 하지만 잡동사니가 굉장히 많다면 시계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은 커진다.  


문제는 취사선택이다. 잡동사니를 한군데 모아 붙이면 잡동사니가 될 뿐이므로 나는 많은 원고를 과감하게 버려야했다. 나쁜 것을 버리는 일은 상대적으로 쉬웠으나 덜 좋은 것을 버리는 일은 조금 어려웠고, 꽤 좋지만 쓸모를 찾지 못해 버리는 일은 상당히 어려웠다. 많은 원고들이 작두로 볏단을 썰듯 뭉텅 뭉텅 잘려나갔다. 고르고 자르다보니 4천자의 원고 중에 한두 문장의 비유만 건지는 경우도 있었다. 새끼 손가락을 깨물듯 아팠지만 나는 잡동사니가 아닌 시계를 보고 작두를 움직였다. 진짜 좋은 제품을 만드는 일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 복귀했을 때 350개 제품을 10개로 줄였으니까.  


그렇게 230개의 원고를 헤쳐 모아서 40개 정도로 줄였고, 거기에 출판사의 의견을 반영해서 또 30개 남짓으로 만들었다. 한약을 달여내듯 졸이고 졸여서 새카만 한 사발이 되었다. 이따금 피부조직까지 발견되는 공룡 화석마냥 블로그의 글이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것도 있으나, “쿵쿵짝”의 박수 소리와 퀸의 <We will rock you> 처럼 흔적만 이어진 글도 있다. 아이디어가 초고로 변하고, 초고를 추려 책으로 묶은 과정을 되짚어보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글은 글 나름의 생명을 갖는 것일지도 모른다.  


구약 성경 뿐만 아니라 그리스 신화에서도 대홍수의 이야기는 나온다. 타락한 인간들을 벌하기 위해 제우스는 물로서 심판한다. 이때 유일하게 두 명의 선한 남녀가 신의 선택을 받고 살아남는다. 데우칼리온과 퓌라다. 그들은 인류를 다시 창조해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는데 그 과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돌을 어깨 너머로 던지는 것이었다. 그들은 대홍수가 머물다 간 진흙밭에서 부지런히 돌을 뽑아 던졌고 데우칼리온이 던진 돌은 남자가, 퓌라가 던진 돌은 여자가 되었다. 신화에서는 전해지는 것은 거기까지. 그 돌들이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떻게 살아갔는지 까지는 밝히지 않는다. 첫번째 에세이 집을 만들고 보니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내가 해야하는 일은 데우칼리온과 퓌라처럼 부지런히 펜으로 돌을 던지는 일이 아닌가 싶다.  


# 내일 공식적인 출간 안내 공지 글을 올리겠습니다. 그 동안 블로그 글을 꾸준히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노력이라쓰고버티기라읽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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