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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Jun 18. 2019

#212 비가 오니까, 오늘은 쉴까?


비가 쏟아지는 아침이다. 어제밤 내내 비가 오더니 날이 밝은 뒤에도 미련이 남은듯 비는 아직 그치지 않는다. 이렇게 비가 와도 아무런 불평없이 가방을 들쳐 메고 나갔던 때가 생각난다. 10대 시절이다. 우리집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사를 갔다. 버스를 타야 통학이 가능한 먼 곳이었다. 중간에 한 번 갈아타야 했고, 시골길은 굽이굽이 왕복 2차선으로 이어져 통학에는 왕복으로 매일 두 시간이 걸렸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8년을 그렇게 다녔다. 


쏟아지는 비가 나의 통학 시간을 고려해줄 리는 없었다. 여름이면 하늘이 뚫린 듯 비가 쏟아졌다. 오르락 내리락 경사진 길에는 빗물이 폭포처럼 흘렀고, 버스 정류장마다 웅덩이가 움푹움푹 있었다. 한 시간의 등교길 중 폭포와 웅덩이에서 온전히 발을 피해 학교까지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토끼처럼 깡총거리나 코끼리처럼 발을 담그나 학교에 가보면 매 한가지였다. 애초부터 포기한 나는 아무렇지 않게 빗속을 걸었다. 교실에 가서 젖은 양말을 벗고 맨발로 수업을 들으면 그것대로 시원해서 좋았다. 나는 비를 불평하지 않았다.  



20대가 끝나갈 무렵 논산 육군 훈련소가 적혀 있는 입영 영장이 나왔다. 입소 대대로 오라고 했다. 나흘 동안 머물며 몸의 치수를 재고 검강 검진을 하는 곳이었다. 보급품을 받았던 밤이 기억난다. 생활관을 나가려는데 비가 엄청나게 왔다. 조교들은 나무 상자에 쌓여있는 판초를 입으라고 했다. ‘판초’라는 말이 처음이었으므로 그 단어가 한자인지 영어인지, 아니면 잘못 들은 발음인지도 알 수 없었으나 상자 안에 둘둘 말려진 축축한 천을 보며 비옷이겠거니 짐작했다. 늦게 집으면 없을까봐 조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들 들개처럼 달려들었다. 나도 뒤질세라 조금이라도 상태가 좋아보이는 것을 골랐지만 겉이나 속이나 흙과 물로 잔뜩 젖은 것은 다르지 않았다. 비좁은 복도에 다닥다닥 달라붙은 채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판초우의를 착용하는 일은 고역이었고, 나는 쭈꾸미처럼 튀어나온 머리 구멍을 찾지 못해 헤맸다. 밖에는 나가지도 않았는데 안경은 이미 빗물 천지였다.  


겨우 판초를 입고 컴컴한 언덕길을 걸어 창고 앞에 도착했다. 먼저 온 다른 소대가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보급품을 받으면 입어보고 신어볼테지. 꽤나 오래 걸릴 것이다. 비는 계속 쏟아졌다. 조교들은 우리에게 앉아서 기다리라 했다. 서 있던 행렬이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며 자리를 잡았다. 나도 닭장 속의 닭마냥 쪼그려 앉았다. 빗줄기는 거세게 판초 우의를 때렸다. 밤은 까맣고, 비는 쏟아졌고, 다리는 아팠다.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하고 있어야 할지 알지 못했으나 나는 일어서지 않고 버텼다.  



서른이 넘어 직장에 들어갔다. 정장을 갖춰 입는 자리까진 아니더라도 구두에 셔츠 정도는 챙기는 분위기였다. 회사는 집에서 조금 멀었다. 출근에는 1시간 20분이 걸렸고 퇴근에는 1시간 40분이 들었다. 길이 먼 까닭에 비가 오면 늘 몸이 젖었다. 나는 발걸음을 조심했다. 회사에서 맨발로 있을 수는 없었으므로 최대한 우산 속에 몸을 숨긴 채 두루미처럼 신중하게 걸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용이 없었다.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젖은 빗물이 카드값처럼 온통 축축했다.  


창밖에 내리는 비를 보는 것은 좋았으나 젖은 신발이 싫었고, 젖은 신발로 해야하는 출근이 싫어서 비오는 아침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비를 감내해야하는 젖은 발의 불평 앞에서 챙겨야 하는 우산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낯선 느낌. 10대 때는 그러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렇게 조금씩 나이들어 가는구나 싶었다. 이러다 60이 되고 70이 되면 비가 내릴 기미만 보여도 싫어지는 것 아닐까. 어르신들은 비가 오면 무릎이 쑤신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아직 나의 무릎은 괜찮았고 비가 와도 나는 아홉시에 출근 도장을 찍어야 했다. '비가 오니 일하러 가기 싫다’는 투정어린 생각은 잠깐 입술을 삐쭉 내밀고는 들어갔다.  



오늘 아침 눈을 떠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창밖을 내다 보았다. 제법 흥건했다.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장대비는 아니지만 우산을 써도 발이 젖을 정도는 되었다. 일기 예보는 오후 쯤은 되어야 그칠 것 같다고 했다. 문득, ‘오늘은 집에서 일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에는 집에서 다른 작업을 하고 오후에 비가 그치면 나가서 글을 쓰는 것도 좋겠다.’라는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대안까지 연이어 떠올랐다. 솔깃한 이야기였다. 가방을 싸려다 말았다. 아침부터 먹으면서 고민해보자고 생각했다.  


순두부찌개였다. 김치가 가득 들어 칼칼했다. 밥을 한공기 가득 넉넉히 담았다. 맛있게 먹고, 양치를 하고 느릿느릿 방에 들어왔다. 강아지가 요 며칠과는 다른 나의 동선을 보고 이상하다 생각했는지 낑낑거렸다. 내가 일하는 표정이 아닐 때 나오는 낑낑거림이었다. 놀아달라는 뜻이었다. 책가방을 챙길까 말까 주저할 때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손에 잡았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이다. 문득 그저께쯤 넘겼던 칸트의 자유론이 떠올랐다.  


칸트는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사람은 마땅히 자유로운 선택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야 한다는 것이 칸트의 생각이었다. 다만 그가 생각하는 자유는 조금 까다로웠다. 사람들은 보통,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자유라고 여기지만 칸트가 보기에 ‘하고 싶은 대로 함’은 ‘욕구에 대한 끌림’에 불과했다. 술이 마시고 싶어져서 마시고, 화가 불쑥 치솟아서 욕설을 내뱉는 것은 내재된 욕구에 끌려가는 것이지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칸트의 자유는 그런 끌림이 아니라 그런 끌림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해야하는 것을 선택하는 자유였다.  


그렇다. 나에게 솔직해야지. '비가 오니까 오늘은 집에서 일할까'라는 생각은 사실 ‘비가 오니까 오늘은 쉴까’와 결이 같은 목소리다. ‘일하는 것’과 ‘살살 일하는 것’ 사이의 구분이 불분명하다면 ‘살살 일하는 것’과 ‘쉬는 것’ 사이의 경계도 마찬가지다. 학교에 다닐 때, 군대에 있을 때, 직장 생활을 할 때의 내가 그 경계를 넘지 않았으므로, 월담을 권유하는 목소리는 자유가 아니라 끌림에서 나왔을 것이다. 나는 나에게 솔직해져야 했다. 


주섬주섬 가방을 챙겼다. 우산을 꺼냈다. 자유를 선택하고 집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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