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재우 Jun 20. 2019

#213 어떤 레벨의 꾸준함에 도달하는 일에 대하여


눈높이 수학 이야기가 나와서 한 가지를 덧붙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습지를 하는 6년 동안 매뉴얼을 지키며 제대로 해낸 것은 딱 2주 밖에 없긴 했지만, 그 이야기가 곧장 ‘나머지 시간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답니다.’를 의미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밀렸다가 하고 띄엄띄엄 하더라도 무언가를 6년 간 계속한 사람은 반드시 얻는 것이 있게 된다. 하다못해 ‘나는 밀려서 하기 싫은 일도 6년이나 버틴 사람이에요.’라는 식의 자부심이라도 말이다. 억지로 한 눈높이지만 그 덕에 나는 사실 수학을 꽤 잘했다. 매일 매일은 아니더라도 매주 매주는 수학 공부를 한 셈이니까.  


꾸준함에도 종류가 있다. 매일 같은 시간에 하는 사람이 있고, 매일 적당한 시간에 하는 사람이 있으며, 매일 하지는 않더라도 띄엄띄엄 끊이지 않고 하는 사람이 있다. 사나흘 몰아서 했다가 또 사나흘을 쉬어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종이 위에 그래프로 그리면 사인 코사인 곡선처럼 파동이 그려지지 싶다. 사람에 따라 파장이 길거나 짧고, 혹은 진폭이 크거나 작을 뿐이다. 리듬이 있고 그 리듬이 일정만 하다면 우리는 그것을 일단 꾸준함이라 부를 수 있다. 아주 이따금만 반복되는 가느다란 리듬일지라도.  


15년쯤 전에 검도장의 사범님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대학 동아리에서 열심히 검도를 하더라도 나중에 사회인이 되면 사실 계속 도장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얼마만에 도장을 찾든, 계속 나오기만 한다면 검도를 하는 거예요. 일주일에 한 번 나오든, 한 달에 한 번 나오든, 심지어 새해 정초에 인사하러 한 번 나오든, 그렇게만 호구를 쓰면 계속 검도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나는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말도 안되는 소리. 한 달에 한 번 나오면서 어떻게 검도를 ‘수련’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 시절, 사회인이 되어본 적 없고 부상 한 번 당해보지 않았던 나는 검도 열정은 있었을지언정 검도 인생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2년 전쯤이었을까. 종아리 근육을 다쳤다. 대련을 하던 중에 ‘탁’하고 고무줄이 끊어지는 듯한 느낌이 왼쪽 종아리에서 왔다. 정형외과에서는 힘줄 가운데 하나가 끊어진 거라고 했다. 나는 체중을 많이 줄인 뒤에 다시 검도를 시작하겠다고 생각하고는 죽도를 도장에서 가져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검도를 나가지 못했다. 한 달에 한 번은커녕 일 년에 한 번도 말이다. 완전히 쉬어버리고 나서야 사범님이 말한 ‘꾸준함’을 이해했다.  


그러므로 처음 무언가를 할 때는 아주 높고 대단히 딱딱한 기준에만 꾸준함의 눈높이를 맞추고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형편껏 꾸준히 하면 누구나 일단은 꾸준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는 회사를 다니는 동안 꽤 꾸준하게 글을 썼으나 우체국 직원이었던 앤서니 트롤렆처럼 대단한 꾸준함을 자랑하진 못했다. 영국의 소설가 트롤렆은 매일 아침 출근하기 전에 톱니바퀴처럼 7페이지의 글을 썼고 그렇게 일주일에 49페이지를 완성했다. 나는 그의 엄청난 성실성을 부러워 하면서도 새벽 5시 알람 소리에 눈을 뜨거나, 매일 같은 분량의 글자수를 쏟아내는 일에 번번이 실패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타협점을 찾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동안만 작업을 했다. 쓸 수 있는 날은 쓰고, 쓰지 못하는 날은 쉬었다. 월,화,수,목 나흘 정도 글이 나오면 방전되어버린 머리는 금요일부터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 침묵을 존중하면서 다시 배터리가 차기를 기다렸다. 나의 꾸준함이 트롤렆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했겠지만, 다행히 그런 식의 꾸준함은 나에게 지속 가능했고 괴롭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30대 내내 나름의 꾸준함을 연습했다. 그렇게 해서 어떤 레벨의 꾸준함에는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이 끝은 아니겠지만.  


이제 한 단계 올라서야 할 시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회사를 나온다는 것은 내 삶을 내가 책임진다는 뜻이다. 내가 판단하고 내가 결정하므로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은 나에게 있다. 핑곗거리라는 달콤한 막대 사탕은 내려놓아야 한다. 잘하지 못하더라도, 변변치 못하더라도 그것은 온전히 내 실력인 것이다. 얼마 전에 연구 결과 하나를 읽었다. 박사 학위를 갓 받고 이제 직업적인 학문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논문의 집필 스타일을 조사했다. 한 그룹은 매일 한 두장이라도 꾸준히 썼고, 다른 그룹은 한참을 쉬었다가 폭발적으로 썼으며, 또 다른 그룹은 그 둘의 가운데에 속했다. 시간이 지나 그들이 어떤 커리어를 쌓았는지를 조사했는데, 매일 한 두 장이라도 논문을 쓴 그룹의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테뉴어를 받은 정교수가 되어 있었다.  


기어를 바꿔 끼우는 중이다. 매일 아침 꾸역꾸역 글을 채우고 있다. 어린 시절 시골 할머니 댁에서 고구마를 캐던 생각이 난다. 호미를 들고 쪼그려 앉아 앞으로 전진하는만큼만 고구마가 나왔다. 한 알 한 알 끄집어내서 광주리를 채웠다. 글도 매한가지다. 이랑과 고랑을 옮겨가며 다른 레벨의 꾸준함을 캐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212 비가 오니까, 오늘은 쉴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