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한재우 Jun 21. 2019

#214 쉴 때는 확실하게 쉬어준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해서, 컨디션 난조가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것은 퇴사와는 관계가 없다. 프리랜서가 되었다고 해서 발길을 끊지는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올 것이고, 또 어떤 식으로든 머물다 어떤 식으로든 갈 것이다.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반복된 일상이므로 내가 그 자체에 불만을 갖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난조는 어쩌면 그것 대로의 생존 리듬이 있는지도 모른다. 일정한 간격으로 한 번쯤 찾아와 주어야 하는 리듬 말이다. 그렇게 일단 생각해버리고 나면 슬며시 기운이 느껴질 때도 그저 ‘또 왔군’ 하는 마음이 들기는 한다. 마음껏 먹고 마시며 푹 쉬었다가 제 갈 길을 갈 것이니, 필요한 것은 다만 어느 정도의 시간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난조를 두팔 벌려 환영하는 입장은 당연히 아니다. 모기에게 화를 내는 것은 어쩐지 바보같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모기를 환영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장마철 벽지에 눅눅하게 밴 습기처럼 내 안에서 배어나온 침체된 기운이니 누구를 탓할 수 있는 노릇은 아니더라도, 난조의 상태는 알게 모르게 불편하다. 웬만하면 멀리하고 싶은 심정, 오더라도 눈치껏 쓰윽 가주었으면 하는 심정이다. 할 수만 있다면 시간 대신에 지폐 몇 장을 주머니에 찔러 넣어 주고 사라지게 만들고 싶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는 나름의 방법들은 있다. 푹 잠을 자기도, 혹은 바람을 쐬러 가기도 한다. 며칠 작업을 손에서 놓는 것도 흔하며, 반대로 그냥 시간에게 맡긴 채 할 일을 계속 할 수도 있다. 어느 것이 효과가 있을지는 사실 미지수다. 감기를 떼어내기 위해 이런 저런 방법들을 써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다보면 반드시 나아지긴 하는데, '그것 덕분에 나았다’고 콕 집어서 말할 수는 없다. 지난 번에 효과가 좋았던 약이 이번에는 잘 안 듣기도, 해 본적 없던 일이 의외로 특효약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나아지기 위해 이것저것 애써본다, 는 그 자체가 유일한 약일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하루키의 책을 집어들었다. 비가 그치고 날씨도 선선해서 가방을 멘 채 개천 변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꽤 많이 걸어도 땀이 나지 않았다. 7,000걸음쯤 걸었을 때 널찍한 카페를 발견했다.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오늘의 작업에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절반, 부메랑처럼 강인한 힘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 절반으로 책을 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다. 


전에도 읽은 책이고, 팟캐스트에서 다루기도 했다. 책에는 이미 정성들여 그은 밑줄과 군데군데 붙여 놓은 포스트 잇이 제법 가득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직업으로서의 작가’가 아니었다. 입장이 달라지면 관점이 변한다. 관점이 변하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거기 어딘가 ‘직업으로서의 작가의 컨디션 난조’에 대해서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발견하길 바랐다. 소파 깊숙히 몸을 묻고 책으로 침잠했다.  


이런 문장이 있었다. 내가 밑줄을 치고 군데군데 키워드에 동그라미를 그려놓은 문장이다.  


“매일 다섯 시간에서 여섯 시간, 의식을 집중해서 집필합니다. 그만큼 필사적으로 뭔가를 생각하다 보면 뇌는 일종의 과열 상태에 빠져서 한참 동안 머리가 멍해집니다. 그래서 오후에는 낮잠을 자거나 음악을 듣거나 그리 방해가 되지 않는 책을 읽기도 합니다. 날마다 한 시간 정도는 밖에 나가 운동을 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의 작업에 대비합니다. 날이면 날마다 판박이처럼 똑같은 짓을 반복합니다.” 


그러면서 하루키는 ‘깊은 우물 밑바닥에 혼자 앉아 있는 느낌’으로 ‘아무도 구해주러 오지 않고’, 아무도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해주지도’ 않는 고독한 작업이라고 스스로를 묘사했다. 야구로 치자면 9회가 아니라 15회, 18회가 되어도 마운드에서 내려올 수 없고 반드시 스스로 끝맺음을 해야하는 선발투수 같다면서 말이다. 예전의 나는 저 문장에서 ‘다섯 시간’과 ‘운동’, 그리고 ‘반복’이라는 단어에 표시를 해 두었다. 매일 저 정도 양의 작업을 운동과 병행하면되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눈에 들어온 것은 다른 단어였다. 대비. '그리고 다음 날의 작업에 대비합니다.’ 어쩌면 나는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잠들기 전까지 같은 속도로 달리는 마라토너처럼 나 자신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었다.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면서 말이다. 그러는 사이 조금씩 나사가 헐거워진 기어처럼 속도가 떨어졌을지도. 이번 난조의 원인이 여기에 있으려나.  


쉴 때는 확실하게 쉬어준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다음 날의 달리기를 위한 ‘대비’임을 분명하게 인식한다. 그 둘 사이의 균형을 통해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어떤 지점을 찾아간다. 그것 또한 ‘직업으로서의 작가’로 살기 위해 내가 익혀야 되는 기술일지도 모른다. 나는 열심히 난조에 효과가 있다는 약을 찾아서 삼키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213 어떤 레벨의 꾸준함에 도달하는 일에 대하여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