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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Aug 03. 2015

#24 <허삼관 매혈기> 같은 책이 좋다

매일 출근해야 하는 삶이 지긋지긋하다면 위화를 읽어보자

15:47

급한 대로 <허삼관 매혈기>의 독후감상문을 몇 분 만에 휘갈겼다. 


과제 제출 마감일이고 더군다나 나는 과제를 모으는 담당자다. 늦지 않게 내시라고 빚쟁이마냥 사람들을 독촉하고 다니는 입장인 내가 날짜를 맞추지 못하면 나름 체면이 상하는 일이다. 덕분에 꼼꼼히 쓸 여유가 없었다. 끄적거리고 보니 독후감상문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수필(隨筆). 말 그대로 '붓가는 대로 쓴 글'이 되어 버렸다. 그 과제의 첫 문단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허삼관 매혈기> 같은 책이  좋다,라고 첫 문장을 써놓고 보니 '과연 <허삼관 매혈기> 같은 책이란 무슨 책을 말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온다. 글쎄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다. '나는 위화의 책이 좋다' 거나 '허삼관 매혈기의 주제의식이 좋다'는 식으로 말했으면 아무도 토를 달지 않고 끄덕끄덕 넘어갔을 일이다. 하지만 나는 분명 '<허삼관 매혈기> 같은'이라고 말을 했고, 그것은 헤밍웨이의 표현대로 '진실한 한 문장'이었다. 즉, 마치 어떤 도서 분류표에는 그 흔한 십진분류가 아니라 '허삼관 매혈기  류'라는 딱지가 붙어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는 이야기다. 
진심은 진심인데, 그렇게 말해놓고 보니 또한 스스로 골똘해진다. 제목만 보아도 읽고 싶어 지는 책인가? 그렇지. 첫 장을 읽으면 계속 읽게 되는 책인가? 아무렴. 읽는  중간중간에 웃음과 눈물이 나오는 책인가? 두말하면 잔소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표지를 덮었을 때 가슴에 남는 것이 있는가? 그러게 말이다. <허삼관 매혈기>는 이 모든 것을 다 갖춘 책이다. 세상에. 하나하나 뜯어보니 진짜다. 이런 책이야 말로 내가 아닌 그 누구라도 읽고 싶은 책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 누구라도 쓰고 싶은 책 아니겠는가?)" - <허삼관 매혈기>를 읽고 나서


16:30 


부서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사장님께서 찾으신다고 했다. "아산 건으로 소장 들어온 거 말이야, 내일 오전 중으로 답변서를 제출하도록 하지." 사장님의 지시는 늘 짧고 간결하다. 오른손 검지 손가락으로 허공을 짚으며 무언가를 가리키는 자세로 지시를 내리신다. 답변서를 제출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찾아보고 처리하겠다"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 그런데 내일 오전에 무슨 회의랬는데. 

16:50 


잠시 후에 있을 PT 장소를 세팅하러 3 강의실로 향했다. 담당자라서 늘 내 노트북으로 강의실을 세팅하는데 노트북 코드를 뽑으려 좁은 책상 밑을 기어들어갈 때마다 꼭 빵빵한 풍선을 전자레인지에 욱여넣는 심정이다. 뱃살을 빼던가 해야지 원. 


17:05 


조대리가 위화와 <허삼관 매혈기>를 주제로 PT를 시작했다. 위화는 <허삼관 매혈기>를 쓴 중국의 작가다. 혹시 몰랐더라도 괜찮다. 나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낯선 이름이었으니까. 조대리는 무려 스무 장 가까이 되는 PPT를 넘겨가며 열심히 설명했다. 마오쩌둥이 어쩌구, 문화대혁명이 어쩌구, 대약진 운동이 어쩌구 하는 중국 근대사 특강이 이어졌다. 핑크색 PPT와 예의 낭랑한 목소리가 듣기 좋다는 생각을 했다. 파란색 볼펜을 들어 피드백 용지에 적었다. "낭랑한 목소리가 듣기에 좋음" 


그런데 갑자기 내 귓바퀴에 택배 배달이라도 온 것처럼 PT 내용이 쏘옥 들어왔다. 작가 위화에 대한 이야기였다. 


"위화의 원래 직업은 놀랍게도 발치사였습니다. 날마다 고되게 사람들의 이빨은 뽑아주던 위화는 시원한 그늘에 앉아 빈둥빈둥 놀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문화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에 문화관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 밖에 없었습니다. 작곡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소설을 쓰는 것. 세 가지 중에서 그나마 소설이 제일 해볼 만하다 여겼던 그는 당장 소설 쓰기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글쓰기를 배워본 적도 없는 위화였지만 말입니다." - 조대리의 PT 중에서


순간 위화에 대한 친근감이 부싯돌의 불꽃처럼 튀었다. 나는 원래 '배운 적도 없는데' 대가가 된 사람들을 엄청나게 좋아한다. 독학으로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대단한 '무언가'가 있다. 그들이 찾아낸 것은 진짜다. 


PT가 끝나고 나서 질의응답 시간. 나는 그 이야기를 어디서 읽었느냐고 물었다. 조대리는 멋쩍은 듯 웃었다.


네이버요.

19:00 


상대적으로 길고 길게 느껴지는 월요일. 퇴근 도장을 찍었다. 출근 도장을 찍은 시각으로부터 10시간 30분이 지난 후였다. 

"저녁 드시고 가시죠." 

우리는 회사 정문 앞, 구내식당보다 훨씬 많이 들렀던 분식집을 찾았다. 


"참치 김밥 두 줄에 떡만둣국 하나. 라볶이에는 라면 사리를 두 개요." 

주인 아주머니는 셋이서 다 먹을 수 있을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글쎄. 그게 그렇게 많은 양인가. 

"우리는 참치를 달달 볶아 넣어서 비린내가 안나." 

부지런히 놀리는 젓가락 뒤로 아주머니의 자랑 소리가 들린다. 쓰윽 엄지를 치켜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입은 여전히 우물우물 후루룩. 떡만둣국에 들은 하얀 떡이 유난히 매끄럽다. 


내일 아침 아홉 시에 기획안 회의를 해야겠다는 이야기가 오간다. 아산 답변서 부치자마자 회의에 들어가야겠군. 전도금 정산서와 지출결의 올릴 것이 네 갠데. 내일 오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갈게다. 


19:55 


6호선에 몸을 싣고 펄벅의 <대지>를 편다. 설 선물로 나온 스팸 상자는 종아리 안쪽에 두고, 통통하다 못해 뚱뚱한 가방은 머리 위에 올렸다. 몇 년 만에 다시 읽는 <대지>다. 어디 보자. 기억나는 장면이 뭐가 있더라. 왕룽이 결혼하던 날, 색시의 얼굴은 영 별로지만 몸매가 고웁다고 좋아라 했던 부분이 생각난다. 


젠장. 위대한 문학작품을 읽어도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19금 사랑과 전쟁 수준이다. 이런 감수성으로 과연 글을 써도 될까, 순간 주눅이 들었다. 

20:10 


합정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탄다. 아시다시피 퇴근길 합정역은 서울시 곳곳에 열리는 헬게이트 중 하나다. 지하철에서는 웬만하면 책을 읽는 나지만, 이런 상황에는 도저히 손 쓸 방도가 없다. 게다가 오늘은 비 내리는 월요일. 스팸 상자에 뚱뚱한 가방에 축축한 우산까지. 나무꾼이 숨겨두었던 옷을 천사에게 돌려주더라도 이 정도 짐이 있다면 날아가기를 포기할 듯. 나는 임산부 옆 문가 자리를 겨우 차지한다. 반대편으로 문이 열리는 신도림 역만 제외하면 safe zone이 확보된 셈이다. 


20:15 


멀뚱멀뚱 서있다가 문득 조대리의 PT가 생각났다. 아, 참. 네이버라고 했었지. 아이폰을 꺼냈다. 네이버를 켰다. 엄지 손가락이 움직였다. 위화, 문화관, 발치사. 괜찮은 제목의 블로그 글이 눈에 들어왔다. 


나의 문학의 길


"나는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오오! 이 사람 정말이다).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발치사였다(진짜네 발치사). 그때 소설을 쓰고자 마음먹은 이유는 발치사를 그만두고 문화관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문화관 사람들은 매일 출근하지 않았는데, 바로 그 점에 끌린 것 같다(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나는 "작가가 될 운명이었다(영화 <그레이트 뷰티>)" 같은 멋들어진 표현이 하나도 멋있지 않다. 그건 마치 접시 바닥에 소스로 공작새라도 그려놓은 채로 서빙되는 프랑스 요리처럼 조금도 즐기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 대신 좀 더 사실적이고, 약간은 후줄근한 시작이 훨씬 좋다. 


'진구 구장 외야의 흙 언덕에 앉아 쭉쭉 뻗는 2루타성 타구를 보며 소설을 써보기로 결심(무라카미 하루키)' 했다거나 '회사가 매각된다는 흉흉한 소문으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할 일이 없어 소설을 끄적이기 시작(마루야마 겐지)' 했다거나 'PC통신에 재미 삼아 이야기를 썼더니 사람들이 죽어라 좋아해서 소설가가 적성인가? 하고 생각(김영하)' 했다는 이야기들이 아무래도 정감이 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단은 '매일 출근하기 싫어서' 소설가가 되기로 했다니, 위화 이 사람 합격점이다.

 

당시에 내가 아는 한자는 5~6000자 정도였는데 그 정도면 소설을 쓰는데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20:20 


나는 어느새 위화의 글이 빼곡히 쓰여진 아이폰 화면에 눈동자를 고정시키고 있었다. 길지 않은 산문을 읽으며 내 머릿속에는 몇 번이나 "이 사람은 진짜야, 진짜라고!"하는 호들갑이 들렸다. 


"나는 아직도 처음 소설을 쓸 당시의 일들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다. 첫 소설을 쓸 때는 소설 작법도 몰랐고, 인용부호를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중학교에 다닐 때 작문을 해본 적은 있지만 인용부호를 써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가장 곤란했던 것은 내가 당최 앉아 있질 못한다는 점이었다. 이것이 내가 직면한 첫 번째 난관이었다. 분명 엄청난 시련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 단계를 넘어갔다. 이를 악물고 이겨냈다. 왜냐고? 계속 이를 뽑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다른 사람의 쩍 벌린 입을 들여다보면서 평생을 보내야 한다면 너무 비참하지 않겠는가." 
"한 작가는 다른 작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 뿐이다. 햇빛이 나무에 주는 영향을 예로 들어 말해보겠다. 햇빛이 나무에 영향을 주더라도 나무는 나무의 방식으로 성장하지 햇빛의 방식으로는 성장하지 못한다. 한 작가의 다른 작가에 대한 영향도 마찬가지다." 
"나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지 않고 중간의 한 단락 한 단락을 뒤적이며 보는 것이다. 그러면 이 작가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게 될 것이다. " 


20:25 


마침내 나는 위화의 글을 더 읽지 않고는 못 뱃길 것 같다는 기분까지 도달했다. 그건 마치 중간고사가 막 끝난, 그리고 부모님이 모두 여행을 떠난 금요일 밤 같은 느낌이었다. 요컨대, 당장 무언가를 저지르고 싶다는 뜻이었다. 비록 그것이 위화의 책을 구매하는 '건전한' 행동이지만 말이다. 


'그래. 신림역에 내리면 당장 반디앤루니스에 가는 거야.'


나는 이미 결심했다. 영등포구청역에서 신대방역까지 움직이는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20:35 


사실 이 책부터 읽어야지! 하고 마음먹은 것은 <영혼의 양식>이라는 산문집이었다. 표지에 서툴게 그려진 고구마가 먹음직스러웠다. 나는 위화의 작품보다도 위화라는 사람에게 끌렸으니 산문집부터 읽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입에 맞는 떡이 동네 떡집에 늘 진열되어 있는 것은 아니듯, 서점의 재고 수량에 <영혼의 양식>은 0권 이었다. <365 공부 비타민>은 한 권 남아 있던데, 그 순간 만큼은 공부 비타민 대신 영혼의 양식이 있었으면 싶었다. 


대신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는 책을 집었다.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목차를 후루룩 넘겼다. 인민, 루쉰, 차이, 혁명, 풀뿌리... 내가 좋아할 만한 단어는 아니었다. 위화라는 사람을 알게 된 것이 불과 세 시간 전인데, '위화가 말한 중국' 따위에는 더더욱 관심이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딱 두 개의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 '독서'와 '글쓰기'. 그래, 내가 알고 싶은 '위화'의 전부는 결국 '위화 표 독서'와 '위화 표 글쓰기'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두 개의 챕터만 읽어도 내가 '저지르고 싶은' 것은 다 저지르는 셈이 되는 것이다. 


나는 스팸 상자와 축축한 우산을 한 손에 모아 들었다. 책을 집어 들고는 계산대로 갔다. 


23:30 


이제 책을 펴려 한다. 한 권의 책을 충동 구매하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6천 자의 수다를 줄줄 늘어놓느냐고 타박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도 "15:47 급한 대로 <허삼관 매혈기>의 독후감상문을 몇 분 만에 휘갈겼다."라고 첫 문장을 썼을 때 6천 자짜리 끄적임이 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때로는 한 권의 책이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60여 권 긁어모았지만, 처음에 어떤 계기에서 하루키를 모조리 읽기 시작했는지 당췌 기억이 없다. 그렇게 아무런 계획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루키를 읽었고, 그 문장들은 나의 글 여기저기에 녹아있다. 


내가 위화의 책을 계속 읽게 될까. 그것은 알 수 없다. 충동의 정도로만 본다면 가능성이 높은 일이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래서 내가 위화라는 작가를 '나무에게 쏟아지는 햇빛'처럼 여기게 된다면, 스팸 상자를 들고 뚱뚱한 가방을 메고 축축한 우산을 든 채 네이버에서 '위화, 문화관, 발치사'를 검색했던 이 짧은 순간이 내 삶에 흔적을 남기는 그런 시간이 되겠지. 


이렇게 생각하니 내가 <허삼관 매혈기>에 거의 무의식 상태로 휘갈겼던 첫 문장이 무슨 뜻이었는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는 <허삼관 매혈기> 같은 책이  좋다,라고 첫 문장을 써놓고 보니 '과연 <허삼관 매혈기> 같은 책이란 무슨 책을 말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온다." 


그렇다. 어쩌면 <허삼관 매혈기> 같은 책이란, 바로 '중간고사가 막 끝난, 그리고 부모님이 모두 여행을 떠난 금요일 밤' 같은 책인지도.


사족. 


이 글을 쓴지 6개월이 지났건만 아직도 <영혼의 식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서점에서는 품절이고, 출판사는 절판이며, 알라딘 중고도서 코너에는 정가  10000원짜리 책을 25000원에 내놓은 재테크 판매자만 있는데다가, YES24의 중고서적상은 입금 완료 후 보름이 넘도록 연락이 없어 전화를 걸었더니 '재고가 어디 있는지 못 찾겠어요' 란다. 

혹시 가지고 계신, 그래서 기꺼이 양도하실 의향이 있으신 분은 말씀하여 주시기를. 지저분하지만 않다면 정가까지 드리고 구매할 의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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