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를 마친 뒤의 질의응답 시간이었다. 학생들의 열기가 뜨거웠고 나 역시 컨디션이 좋았던 덕에 강의는 대단히 즐거웠다. 자연히 질문하고 싶은 학생들도 꽤 많아서 물음이 쏟아졌다. 어떻게 하면 잠을 줄일 수 있느냐, 슬럼프가 오면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FAQ가 대부분이었다. 샤워기를 최대한 틀어놓듯 90분 동안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지만 공부를 잘하고픈 학생들 입장에서는 궁금한 것이 한참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 한 학생이 진지하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공부가 너무 하기 싫은데 어떻게 해요?”
공부 잘하는 방법에 대한 강의였다. 나는 웃었다. 이렇게 답했다. "공부가 정말로 너무 하기 싫으면 안하면 되죠.” 그 대답에 100명쯤 되는 학생들이 일제히 웃었다. 나는 덧붙였다.
“공부는 안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건 알아야 해요. 선택에는 책임이 따라요. 공부를 안하면 나중에, 친구들이 다 대학을 가거나 취업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할 수 있는데 그때 마음이 좀 안 좋지 않겠어요? 그건 당연한 인과예요. 만약 지금 공부를 안할거면, 그때 가서 그런 일이 있더라도 ‘아, 나는 실컷 놀아봤으니까 괜찮지 뭐. 이런 일도 오케이!’ 라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해요.”
그러면서 너무 걱정하지는 말라고, 학창 시절에는 공부와 뚝 떨어져 살았지만 나중에 공부에 재미를 붙인 사람들을 많이 봤다고, 학생도 나중에 공부가 하고 싶어지는 때가 올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거짓말은 아니다. 내가 이야기를 나눈 사람 중에는 ‘공부에 늦바람’이 났다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인생에서 하는 공부에는 총량이 있는 것 같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공부를 안 했더니 취업을 해서 밥벌이를 한 다음에야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공부 총량 이론이 얼마나 맞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와는 정반대의 케이스들도 분명 있다. 억지로 공부를 해서 겨우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자리 잡은 다음에 공부라면 질색을 하는 식이다. 그나마 밥벌이라는 중간 피니시 라인까지 도달한 경우는 다행인지도 모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바람빠진 타이어처럼 퍼져버리는 일도 많으니까. 어차피 평생 배워야 하는 세상이므로 두 가지 케이스 가운데 부득이 한 가지만 골라야 한다면 분명 ‘타이어' 보다는 ‘늦바람’이 나을 것이다. 물론 그런 학창 시절을 지켜보는 부모님은 속이 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데 공부는 본질적으로 ‘하기 싫은’ 작업일까? 어린 시절에 꾹 참고 하든, 나이들어서 뒤늦게 하든, 간염 예방 주사처럼 귀찮은 것인데 그냥 인생에서 어느 한 시기에는 반드시 함께 해야 하는 그런 것일까? 왠지 ‘당연한 거 아냐!”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다수일 듯 하다. 공부가 재미있다고 이야기하면 별난 사람이나 부정직한 사람을 마주하는 쓰디쓴 시선을 받을 것만 같다. 대략 감이 오지만 그렇다고 움츠러들 필요까지는 없겠지. 나는 솔직히 그렇게 생각한다. 공부는 잘만 하면 아주 재미있을 수 있다고. 문자 그대로 ‘시간 가는 것을 잊을만큼’ 말이다.
독일에 파울 볼프스켈(Paul Wolfskehl)이란 사업가가 있었다. 유서 깊은 가문 출신인 그는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지만 학자가 될 정도로 탁월하지는 않았다. 졸업한 뒤에는 가업을 물려받았고 인생의 대부분을 그 사업에 매진하면서 보냈다. 평범한 이공계 출신의 사업가를 상상하면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볼프스켈이 사랑하는 어떤 여자가 있었다.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아주 뜨겁게 구애를 했지만 인생이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 법이다. 그녀는 구애를 단칼에 거절했고 볼프스켈은 깊게 상심했다. 열성적인 감성을 지녔던 그는 삶의 의욕을 잃고 자살을 결심한다. 다만, 유서 깊은 가문에서 책임감 있는 성품으로 자랐기 때문에 실행으로 옮기는 과정은 대단히 주의깊었다. 그는 자신이 없어도 사업이 크게 흔들리지 않도록 업무 처리를 하면서 일정을 계획했다. 죽기에 알맞은 날을 정하고, 그날 자정에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도록 한 것이다.
드디어 그 날이 왔다. 볼프스켈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하는 편지를 꼼꼼하게 썼다. 모든 일을 마무리 짓고 난 뒤 시계를 보았을 때, 자정까지는 아직 몇 시간이 남아있었다. 그는 별 생각없이 서재로 들어가 책들을 뒤적거렸다. 거기에는 수학 서적들이 있었다. 볼프스켈이 거기서 집어든 것은 270년간 풀리지 않는 수학계의 난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대한 글이었다. 사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아주 간단하다. 중학교 때 배우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만 안다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문장이다.
피카고라스의 정리: X의 제곱 + Y의 제곱 = Z의 제곱
페르마의 정리: 'X의 n승 + Y의 n승 = Z의 n승'에서, n이 3 이상의 정수라면, 이 방정식을 만족하는 정수해 X,Y,Z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쉬웠다. 볼프스켈은 페르마의 정리를 보는 순간 270년 간 풀리지 않았다던 악명 높은 문제가 잘만 하면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문제 풀이를 위해 지금까지 접근했던 방식들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오류가 있는 듯 보였고고, 조금만 뒤집으면 해결책이 있을 것도 같았다. 그는 자리에 앉아 골똘히 집중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볼프스켈이 떠올린 아이디어는 아쉽게도 답이 아니었다. 그는 기존의 접근을 뒤집는 대신 그저 약간의 보완점을 찾아낸 것에 그쳐야 했다. 애석한 일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런 사실이 있었다. 문제를 고민하는 사이에 자살 예정 시간을 놓쳐버린 것이다. 그는 수학 문제에 집중하는 동안 실연의 아픔이나 삶의 절망 따위는 흔적조차 느끼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볼프스켈은 다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써놓았던 유서들을 모두 찢어버리고는 간밤에 있었던 일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다음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기부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그가 출연금에 따라 1908년 괴팅겐 왕립과학원에 <볼프스켈 상>이 만들어졌다. 10만 마르크가 넘는 거금이었지만, 새롭게 얻은 삶을 생각한다면 싼 값이었다.
공부가 재미있을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헤어졌다는 괴로움이나 앞길이 막막하다는 불안감이나 살고 싶지 않다는 절망감을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부가 재미없는 것은 대부분 공부 그 자체가 아니라, 공부를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곳이 높고 멀기 때문이다. 성적을 위해 공부하고, 합격을 위해 공부하고, 승진을 위해 공부하면서 그 결과까지 최대한 빨리 얻고 싶어하는 것이 보통의 마음이다. 높고 먼 곳을 가는데 헐레벌떡 뛰어가야 하니 그 길이 괴로울 수밖에.
군대에서 행군으로 걸었던 산길도 혼자서 천천히 가면 트래킹이다. 그런 길을 실컷 걷고 싶어 트래킹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그렇기에 나는 공부 또한 마찬가지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공부를 오해하지 않으면, ‘공부 자체는 무죄’라는 사실을 알면 지금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언젠가 다시 친해질 기회가 있을 수 있으니까.
삶이 무료할 때, 인생이 방향을 잃은 듯 보일 때, 볼프스켈처럼 별 생각없이 이리저리 책을 뒤적거려 보기를. 꼭 어딘가에 닿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그저 아무거나 공부해보기를. 내가 만나 본 ‘늦바람’들은 대부분 잔잔한 일상을 즐길 줄 알았고, 미래에 대한 따뜻한 희망이 있었다. 지금 받고 있는 연봉이나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말이다. 잔잔한 일상과 따뜻한 희망, ‘행복’이라는 두 글자를 풀면 그 비슷한 것이 되지 않을까.
그럴 수밖에 없다. 긍정 심리학자 조지 베일런트가 연구한 행복의 조건 중에서 ‘공부’는 무려 두 번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