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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Jun 27. 2019

#218 그때까지 나는 여기 앉아 있으려 한다.

예전 회사의 회장님은 추위를 많이 타셨다. 내가 입사 면접을 보러 갔던 6월의 어느날, 문을 열고 들어간 회장실은 푹푹 쪘다. 어색한 정장을 갖춰 입은 나는 거기 앉아 계속 땀을 흘렸다. 회장님이 에어컨을 싫어할 뿐만 아니라 한 여름을 제외하고는 일 년 내내 테이블 아래 전기 난로를 켜둔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임원 회의가 있는 날이면 긴 멀티탭을 찾아서 회의실에 전기 난로를 설치하는 것이 우리 부서의 일이었다.  


우리 엄마도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다. 봄이 다 지나가도록 목도리를 두르셨고, 늦가을에나 꺼낼 법한 긴 코트를 6월 날씨에도 입고 다니셨다. 전기 장판은 늘 안방의 같은 자리에 펼쳐져 있는데, 그것이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 나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런 엄마다 보니 카페에서 나오는 에어컨 바람이 싫은 것은 당연했다. 오래 있고 싶은데 추워서 더는 못 있겠다며 아깝다는 표정으로 일어서는 날이 많았다.  


이상한 일이다. 얼마 전부터 나 역시 두 사람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매일 카페에 나가 글을 쓰기 시작한 뒤부터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카페에 도착하면 따로 점심을 먹지 않고 일을 한다. 작업 시간을 길게 가져가기 위해서다. 고속버스가 전용차선을 달리는 느낌으로 쭉쭉 밀고 나가다가 ‘오늘은 여기까지’ 싶은 마음이 들면 일을 정리한다. 시계 바늘의 숫자가 아니라 마음에 따라 퇴근 시간을 정할 수 있는 것은 전업 작가의 특권이니까 최대한 복지 혜택을 누리는 것이다. 나는 처음에, 그 퇴근의 신호가 당연히 ‘배가 고파서’일거라 생각했다. 카페에서 오래 있으려고 아침을 든든히 먹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카페를 계속 나가다보니 배고픔보다 큰 문제가 있었다. 추위였다.  


30분 남짓을 힘차게 걸어서 출근하는 편이니 들어서는 순간은 시원한 것이 좋았다. 텅 빈 카페에서 가장 멋진 자리를 골라 앉아 갓 나온 아메리카노의 향을 맡으면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그 기분 그대로 이어폰을 꺼내 유튜브에서 재즈를 틀고 맥북을 두드렸다. 흰 공간에 문장을 채워넣을 때마다 정으로 돌을 쪼아내는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는 실감이다. 그런데 집중하여 손가락을 움직이는 동안 몸이 차차 식었다. 머그잔의 온기가 흔적조차 없어질 즈음이면 슬며서 ‘조금 쌀쌀하네.’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글 한편을 겨우 완성하고 나면 절로 이런 중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추워서 더는 못 있겠네." 


나의 중얼거림이 엄마가 하시는 그것과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자못 당황스러웠다. 아프리카 사람이 한국에 와 함박눈을 처음 보듯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본 경험이었다. 원래는 몸에 열이 꽤 많던 나였다. 예전에 만났던 한 친구는 뜨겁다는 이유로 여름에 손잡고 다니는 것을 싫어했고, 한의원에서는 늘 인삼처럼 열 많은 약재는 안 맞는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렇게 40년 가까이 살아온 나였다.  


체질이 바뀌었을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여름과 겨울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좋아요?’라는 다소 상투적이지만 적당히 달달한 물음을 던졌을 때 ‘예전에는 더위를 많이 탔는데 요즘은…’이라며 체질이 바뀐 것 같다는 답을 하던 분들이 늘 있었다. 다들 체질이 변한다니까 나도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일단 체질 때문이다, 라고 정리를 해도 그 체질이 왜 슬그머니 바뀌었는지에 대한 답은 뾰족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나이가 드니까 그렇겠지’ 싶었다.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는 <언어의 온도>의 카피처럼 우리 몸에도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개는 나이가 들수록 전자에서 후자로 바뀐다. 손목의 맥을 짚거나 체온계를 대고 재지 않아도 스스로가 알기 마련이다. 짧은 소매의 셔츠에 손이 덜 가고, 자동차의 에어컨 방향을 다른 쪽으로 돌리고, 아이스 라떼를 고르려다 ‘그냥 따뜻한 걸로 할께요’라고 말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 말이다. 몸의 따뜻함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차가움으로 변해가고, 그 따뜻함과 차가움의 간격에서 새삼 나이를 인식한다.  


뜨겁던 무언가가 점점 식어가는 일. 어쩌면 그것은 나이 먹기처럼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체온도, 관계도, 열정도, 다른 모든 존재들에 있어서도 흔히 그러하다. 그리고 그 자연스러움으로 인하여 때로는 온도의 상실이 두려움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퇴사를 하기 전에 누군가가 물었다. “글이 쓰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두는데, 혹시 글 쓰는 일이 재미가 없어지면 어떻게 하죠?” 아무리 좋아하는 일도, 그것을 ‘일’로서, 그러니까 밥벌이로서 하면 하기가 싫어지기 마련이라는 흔한 일반론도 친절하게 덧붙였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그랬다. 무서운 물음이었다. 질문을 받기 전에도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던 물음. 나는 아무도 없는 깊은 동굴 안쪽의 어둠을 향해 ‘정말 괜찮은가?’라고 묻곤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을 그만두었는데, 그 ‘하고 싶은 일’이 차갑게 식어 ‘해야 하는 일’로 변해버리면 그 다음에는 갈 곳이 없었으므로, 나는 묻고 또 물었다. 식지 않을까, 계속 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운이 좋았던 것 같다. 희망은 늘 사람에게서 왔다. 검도장에 다닐 때 마지막으로 사사했던 사범님이 생각났다. 머리가 백발인 교사 7단 사범님. 그 분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직접 호구를 쓰고 관원들의 칼을 받아주었다. 이따금 수련 시간 한참 전에 도장에 도착하면 텅 빈 도장에서 초등학생처럼 혼자 타격대를 치고 계셨다. 말수가 적었고 칭찬은 더 적은 무뚝뚝한 사범님이었지만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어릴 때 처음 도장에 발을 디딘 이후로 운동하기 싫었던 날이 나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모든 일에는 나름의 온도가 있다.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은 그 온도의 상실을 향해서 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일반론이라면, 언젠가는 나이가 들어 죽음을 피할 수 없듯, 나 역시 따뜻함에서 차가움으로 바뀌어 갈 수도 있겠지. 먼 훗날, 언젠가 말이다. 다만 그 전까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긴팔 옷을 여벌로 챙기고, 따뜻한 물을 리필해달라고 부탁하며 작업 시간을 길게 가져가는 것.  


'추워서 더는 못 있겠네.’하고 일어설 때까지 나는 여기 열심히 앉아 있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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