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재우 Aug 03. 2015

#26 '나름대로' 노력하면 나아지지 않는다

나는 왜 항상 제자리걸음인가 하는 물음에 대하여

예전에 아는 동생이 '시골 의사' 박경철 원장의 강연 동영상을 보내준 일이 있었다. 


학생들을 앉혀놓고 비전과 꿈을 심어주는 자리였던 것 같다. 박경철 원장은 이런 이야기로 말머리를 열었다. 대강의 요지를 옮겨보면 이렇다.


의대를 졸업했을 무렵 취직 자리를 구하기가 마땅치 않았다. 오라고 하는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시골에 있는 작은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일자리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커리어를 이야기했더니, 그만하면 훌륭하기 이를 데 없단다. 사람은 자신을 알아주는 이에게 끌리기 마련이다. 와달라고 사정하는데 어찌 좋지 않겠느냐. 시골이 뭐 대수겠느냐. 그래서 좋다고 했다. '언제부터 출근할까요?' 했더니, 당장 내일부터 와달란다. 알겠다고 대답하고 짐을 쌌다.


그런데 가봤더니 병원이 이상했다. 이제 막 공사 중이고 의료 기기도 들어오지 않았고, 하여간 제대로 된 병원이 아니었다. 게다가 의사라고는 자기밖에 없었다. 다른 과의 의사들은 아직 구하는 중이라고 했다. 영 찜찜하여 그만두고 올라가려 하는데 병원장이 옷깃을 잡고 매달렸다.  그때 생각했다. 다른 병원에서는 자신을 써주지도 않는데, 이 정도 귀하게 받아주면 거기서 일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눌러 앉기로 했다.


게다가 병원장은 이런 제안도 했다. 페이를 두 배로 주겠다는 것이다. 아니 세 배를 줄 수도 있다고 했다. 이유가 있었다. 자신이 내과도 보고 외과도 보고 소아과도 보고, 모든 진료과목을 다 보아야 했다. 24시간이 부족했다. 어쩌겠는가. 그것이 자신의  첫출발이었다.


대강 그런 내용이었다. 박경철 원장은 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요지는 다름이 없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관계자를 고려하여 약간의 각색'을 하겠다고 밝혔다. 세부 내용이야 좀 바뀌면 어떠한가. 덧붙임과 탈락이 있더라도 핵심은 변하지 않는 것이 이야기다. 그리고 이야기의 교훈은 그 핵심에 있다.


그런데 나중에 박경철 원장의 개인사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물론 핵심은 바뀌지 않았다. 다만 이야기의 색깔이, 들으면서 낄낄거리기도 했던 저 강연 동영상의 내용과는 달랐다. 아니 정반대. 그의 실제 이야기는 시커멓게 먹을 칠한 듯 깜깜웠다.


박경철 원장이 의대를 졸업할 무렵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가계를 돌보려 했던 어머니도 실패를 하여, 커다란 빚이 생겼다. 당시 금액으로 억 단위가 넘는 막대한 액수였다. 그 빚은 고스란히 박경철 원장의 몫이었다. 대학병원에 가서 전공지식을 쌓고 싶었지만 의사의 월급 따위는 파도를 손바닥으로 막는 것처럼 미미했다. 결론은 개원밖에 없었다.


친구들이 힘을 모아주었다. 적금을 깨서 도와준 친구들 덕분에 시골에 병원을 열었다. 공사 중이고 의료기기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작은 병원은 바로 이 병원이었고, 그는 그런 병원의 한  명뿐인 의사이자 원장이었다. 수지를 셈해보니 하루 80명의 환자를 받아야 유지가 가능했다. 병원의 문을 연 첫날, 26명의 환자가 왔다. 그때 처음으로 자살을 생각했다 한다.


방법은 더 열심히 하는 것 밖에 없었다. 더 열심히 설명하고, 환자와 눈을 맞추고, 출장 진료를 다니고, 치료받은 환자에게 AS로 안부 전화를 걸었다.  24시간 진료 대기 상태였다. 그러자 조금씩 입소문을 타고 환자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새벽 4시부터 환자가 찾기 시작해 아침 7시면 그날 진료가 모두 예약 완료되었다. 개원 석 달 째에 200명. 6개월 째에 400명. 개인 의사 진료 숫자로 전국에서 3위.


결국 박경철 원장은 그 많은 빚을 1년 반 만에 깨끗이 갚았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 시절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순간이라고. 병원을 열고 처음 3년 동안 마음 놓고 잠을 잔 적이 단 하루도 없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박경철 원장은 시간 관리의 달인이 되었다. 의사면서 칼럼을 쓰고, 방송을 하고, 책을 낸다. 그러는 틈틈이 전국에서 하는 강연이 1년에 150-200건 정도. 그는 <자기 혁명>에서 '시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필자는 '시간이 없어서'라고 변명하는 사람을 가장 싫어한다. 해야 할 일을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곧 나태함이다. 시간은 누구든 열 배, 백 배로 압축할 수 있다. 집중력과 밀도를 높임으로써 시간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 중에서 성공에 이른 이를 만난 적이 없다. 우리가 쫓기는 시간에는 찌꺼기가 너무 많아서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 그만큼 찌꺼기를 버리면 된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달콤하지만 쓸모없는 것들을 끌어안고 놓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 <자기혁명> 중에서



나는 박경철 원장의 이야기를 읽으며, 사람을 바꾸는 것은 '치열한 노력의 시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치열한 노력이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치열한 노력이 '필수적'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한 단계를 넘어서 새로운 차원을 열기 위해서는 평범한 노력이 아니라 '치열한' 노력이 요구된다. 다만 어느 시기에 불과할 지라도,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일상과는 완전히 결별한 다른 수준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새는 부리가 부서져라 껍질을 쪼아서 알을 깨고, 나비는 온몸이 쓰라리도록 비틀어대며 고치에서 빠져나온다. 뼈를 바꾸고 껍데기를 벗는 노력이다.


야구선수 임창용을 만든 것은 2군 시절 김성근 감독 밑에서 죽었다 살아난 1995년의 6개월이었다. 하루키는 서른 살 무렵 재즈바를 운영하면서 소설을 썼는데, 그 시절 남들보다 세 배쯤 열심히 살았다고 회상했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도산 직전의 회사 연구실에 처박혀 아예 숙식을 하며 신제품을 연구했고, 벨연구소 김종훈 소장은 해군 장교로 복무하며 공학 박사를 2년 만에 마치는 동안 하루에 2시간만 잠을 잤다.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었다. "저는 왜 실력이 늘지 않을까요. 나름대로 한다고 하는데 늘 제자리입니다." 질문의 대답은 문제 안에 있었다. 


'나름대로' 하기 때문에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치열하다'는 단어는 '熾烈하다'라고 쓴다. '치(熾)'는 '불이 활활 붙다'는 뜻이요, 열(烈)은 '기세가 사납다'는 뜻이다. 불이 활활 붙어 기세가 사나울 정도가 되어야 치열함이다. 시간의 찌꺼기와 습관의 나태함을 모조리 긁어모아 인화물질 태우듯 활활 태우지 않는 한 우리는 아직 치열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는 한, 삶은 변화될 수 없다.


새해가 시작된 지 열흘이 지났다. 가야 할 곳도 명확하다. 태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작가의 이전글 #25 최고의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싶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