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에서는 고추를 독초라 했다
"김치도 먹지 않아요"라는 말을 한 후에야 사람들은 매운 음식을 끊기로 했다는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김치조차 먹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집에서는 내가 먹을 몫만큼 백김치를 담갔다. 덕분에 한정식 집에나 가야 한 조각 구경할 수 있는 백김치를 원 없이 씹었다. 배추에 젓갈, 소금뿐인 백김치지만 그럭저럭 맛이 시원했다.
원래 매운 음식을 즐기지는 않았던 나였다. 하지만 light smoker가 몇 가치 피던 담배마저 완전히 끊듯, 매운 음식을 아주 멀리하려 결심한 것은 한의사 선생님의 지시 때문이었다. "빨간 색깔 음식은 아예 먹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단발머리에 바늘 끝처럼 눈빛이 반짝거리던 선생님은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로 고추를 끊어야 건강이 회복될 수 있다고 단언했다. 만성적인 피로에, 아예 세입자마냥 눌러앉은 비염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허리 통증까지 이런저런 증상들을 보따리 보따리 짊어지고 찾아간 한의원이었다.
고추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임진왜란 무렵이다. 전래국은 일본.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고추가 일본에서 전래됐다고 해서 이를 왜개자(倭芥子)라고 불렀고,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고추를 왜초(倭椒)라고 했다. 그런데 이 고추가 칠레산 포도나 이스라엘산 닭고기처럼 식량으로서 조선 땅에 발을 디딘 것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놀라지 말 것.
고추는 처음에, 왜군의 화생방 무기였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은 화생방을 모를 리 없다. 아니, 요즘은 군대 예능 프로그램 덕분에 모든 사람이 알려나. 화생방이란 '화학, 생물학, 방사능'의 줄임말이다. 화학전, 생물학전, 방사능전에 사용하는 무기가 화생방 무기다. 적은 꼭 총으로 쏘고 폭탄으로 터뜨려야 제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치명적인 바이러스나 무시무시한 세균을 활용하면 훨씬 효과적인 살상이 가능하다. RPG 게임을 할 때도 아군 진영 깊숙이 숨어서 매직을 쓰는 마법사들이 있지 않은가. 검투사 캐릭터가 손가락 근육이 저릴 때 까지 적을 때리는 동안 마법사들은 유리병에 들은 보라색 약물을 터뜨려서 대량으로 몬스터를 잡는다.
고추는 바로 그런 화생방 무기였다. 고춧가루를 태워 그 연기를 적진, 그러니까 우리 조선군 측에 날려 보낸 후 사무라이들이 돌격할 용도로 쓰였다고 한다. 아마 집회를 강제해산시킬 때 쏘는 최루탄 비슷한 효과를 냈을 것이다. 고추의 어원은 고초(苦草). 지금도 한약명은 고초(苦椒)라고. '고초'의 '고(苦)'는 고통스럽다고 할 때 바로 그 '고'다.
동의보감에서는 고추를 설명할 때 '독초'라는 표현을 쓴다.
그렇게 전래된 고추가 전쟁이 종결된 후에도 이 땅에 남았다. 처음에는 고추를 궁궐에 심어 두고 실험용으로 살펴보았다. 백성들에게 '음식'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은 훨씬 뒤인 1700년대 말엽. 무려 200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 후에야 고추가 일반 대중에 유통되었다는 이야기다.
화생방 무기가 사람의 몸속에 처음 들어가는 데 저항이 없을 리 없었을 터. 조선시대 기록에는 주막에서 술과 함께 고추를 먹다가 급사한 경우도 여럿 있다고 한다. 독초가 정말 사람을 잡은 것이다.
그로부터 200년이 지나는 동안 고추는 확실하게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김치찌개나 제육볶음처럼 그냥 매운맛의 음식이 아니라 아예 익스트림한 '매움'을 콘셉트로 내세운 요리들이 인기다. 매운 짬뽕, 매운 떡볶이, 매운 불닭, 매운 갈비찜. 마치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여기가 미각의 지도 끝이다'라고 발을 내딛는 탐험가들을 보는 것 같다. 이제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음식의 특징을 매운 맛이라고 한단다. 외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음식점에 가보면 메뉴판에 빨간 고추를 그려 넣어 매운 맛의 정도를 표기한 곳이 흔하다.
주막에 앉아 고추를 와그작 와그작 씹어먹고 막걸리 한 사발을 쭈욱 들이킨 후에 갑작스런 호흡곤란과 심장 이상으로 생을 마감했을 조선 시대의 누군가를 생각하면 200년 사이에 미각의 영역이 놀랄 만큼 확대된 것은 사실이다. 적어도 우리는 불닭볶음면과 크레이지떡볶이를 간식거리로 먹을 수 있는 강인한 존재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담배 연기에 익숙해졌다 하여 우리의 폐 두 쪽이 니코틴 앞에 당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 술을 물 마시듯 들이킬 수 있다 하여 우리의 간이 피로를 모르는 애기들처럼 생생한 것이 아니듯, 혀라는 수문장과 안면을 튼 고추도 여전히 우리의 오장육부에게는 고초(苦草)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미각은 금방 돌아올 수 있다. 석 달 동안 고춧가루를 아예 입에 대지 않았더니 단골집의 베트남 쌀국수 마저도 매워서 맛을 모를 지경이었다. 칠리소스를 뿌리지 않은 상태임에도 그랬다는 이야기다.
석 달을 꼬박 그리하였더니 몸이 좋아졌다. 비염이 사라졌고, 아토피가 나아졌고, 허리 통증도 온데간데 없어졌다. 물론 고추뿐만 아니라 인스턴트, 커피를 같이 끊은 효과겠지만 말이다. 얼마 전 떡국을 먹으면서 무심결에 예전처럼 후춧가루를 잔뜩 뿌렸더니, 그릇을 설거지통에 채 담그기도 전에 콧물이 주루룩 흐르기 시작했다. 매운 맛의 고(苦)다. 서양의 후추와 우리네 고추는 역사적으로 그 쓰임새가 비슷했다.
매운 음식만 빼고 다 좋습니다.
지금도 회식 메뉴를 정할 때 내가 하는 말이다. 몸이 좋아지고 난 후 빨간 음식과 아주 약간은 화해를 했다. 누가 라면을 끓이면 한 젓가락 건지고, 제육볶음 쌈밥을 시키면 서너 점은 숟가락에 얹는 정도다. 그래도 고추로 양념한 음식인지 음식으로 양념한 고추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매운 녀석들은 여전히 쳐다도 보지 않을 생각이다.
어제는 석 달만에 순댓국을 먹었다. 김치 없이 먹기는 어려운지라 애써 석 달 동안 함께 끊어온 순댓국이다. 뿌연 국물이 펄펄 끓는 뚝배기 안에 푸짐하게 들은 뒷고기와 토종순대가 얼씨구나 반가웠다. 밥을 뚝뚝 말았다. 김이 무럭무럭 났다. 김치 중에서 양념이 적은 배추 줄기 부분을 집어 들었다. 아주 약간의 고춧가루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