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지 못하는 돼지는 그냥 돼지일 뿐이오.
집에서 나와 개천을 따라 신림역 방향으로 가면 신대방역을 조금 못가서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이 있다. 거기를 찍고 돌아오면 4.5km. 예전에는 기본으로 뛰던 코스였다. 컨디션에 따라 조금 더 다리를 채찍질하여 6km를 뛰기도 하고, 이따금 8km를 찍을 정도로 혈기왕성한 날도 가끔은 있지만, 평일 운동은 대개 기본 거리였다. 근 한달. 그러니까 종아리 인대가 끊어지고 나서 어제 처음으로 그 거리를 완주한게다.
우리는 건강을 잃기 전까지 건강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몸을 다치기 전에는 성한 몸으로 하는 움직임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깨닫지 못한다. 라면 국물에 식은 밥을 말아먹듯 4.5km를 순식간에 후루룩 달리던 때에는 이 코스가 마치 마라톤 풀코스라도 되는 양 힘들어질지 어찌 알았겠나. 인대가 끊어지고, 걸음을 절뚝거리고, 지하철 계단도 진통제에 의지해서 오르내린 후에야 4.5km는 커녕 45m도 누군가에게는 사하라 사막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질 수 있겠구나 싶었다.
나는 얼마전부터 빨리 걷기와 느리게 뛰기의 중간 수준으로 자체 재활 훈련을 진행해왔다. 그렇게 움직여서 하루 1~2km. 트랙에서 내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저 운동 부족 비만 돼지가 살을 빼려 나왔다가 몇 걸음 뛰고 헉헉 대며 쉬고, 다시 몇 걸음 뛰다가 헉헉 대며 쉬는 것으로 생각했을게다. 아니야 아니야. 8kg짜리 호구를 쓰고도 바람처럼 날아다니던 나라구! 1km를 4:15에 주파하던 나란 말이다, 하고 원망스런 눈길을 보내보았자 소용없는 노릇. 그저 '헉헉 대는 돼지'에서 '분노하는 돼지'로 바뀔 뿐임을 잘 안다.
느려도 좋으니 걷지만 말고 계속 뛰자. 근육에 혹시 통증이 있나 예민하게 관찰하면서 살살 뛰어보자. 결과적으로는 무사했다. 엔진이 얼굴에 달린 80년대 시내버스처럼 느리고 무뎠지만 어쨌든 멈추지 않고 뛰어냈다. 주룩주룩 내린 비 덕분도 있었을 것이다. 비가 얼굴을 쉴새없이 두드리면 힘든 줄 모른다. 나 스스로를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빗속 명장면에 이입시키는 까닭도 있다. 이렇게 쓰니 이번엔 '꼴깝떠는 돼지'가 되는 것 같지만 말이다.
일요일 밤 10시에, 그것도 비가 내리는 악조건에서 달리기를 결행(決行)한 이유가 있다. 아침에 읽은 라디오 인터뷰 기사로 기억한다. '다이어트를 하려면 여름철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할까?' 라는 다소 뻔한 주제의 기사였다. 어쨌거나 뻔한 기사가 뻔하게 반복되는 것은, 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 중 한 명이었으니 할 말은 없다. 빙수 한 대접을 먹으면 밥이 세 공기라느니, 크림소스 파스타를 먹으면 죄다 살로 간다느니, 하는 식으로 특별한 이야기는 없어 쓱쓱 스크롤을 내리고 있는데 바로 이 한 마디가 석궁 화살처럼 날아와 머리에 꽂혔다.
건강한 돼지.
이럴수가. 딱 나였다. 그보다 정확한 표현은 없었다. "너는 그렇게 열심히 검도도 하고 달리기도 하면서 왜 배가 안들어가니?" 라고 종종 엄마가 핀잔을 주는데, 답이 나왔다.
엄마, 나는 건강한 돼지에요.
주말 내내 '건강한 돼지'라는 표현을 머리핀처럼 꽂고 다니다가, 문득 한 달째 운동을 제대로 안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건강한' 돼지조차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다. 운동하지 않는 돼지는 그냥 돼지일 뿐이야.
그래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단 다시 건강한 돼지로 되돌아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궁극적으로는 '돼지'라는 타이틀을 벗어야겠지만, 수일 내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열대야에 굴하지 않고, 태풍 찬홈이 만들어낸 빗줄기에 무너지지 않고, 무엇보다 '내일부터 뛰자는 둥', '조물주도 일요일은 쉬었다는 둥' 천재처럼 쏟아내는 온갖 자기 변명에 지지 않고, 지금 내가 꾸역꾸역 운동화 끈을 묶는다면 며칠 내로 '컨디션 좋은 돼지' 정도는 될 수 있다. 그리고 '컨디션 좋은 돼지'가 누적되면 '건강한 돼지'가 되는거지.
4.5km를 달리는 동안 우산을 쓰고 산책을 하는 몇몇 사람들을 마주쳤다. 그들은 예외없이 우산을 살짝 들더니 내 얼굴과 출렁거리는 배를 쓰윽 보았다. 가뜩이나 흠씬 젖은 몸이라 딱 달라붙은 티셔츠는 영락없는 노출 의상이었다. 필시 '헉헉 대고 분노하며 꼴깝떠는 물에 빠진 돼지'라고 생각했겠지.
아무렴 어떠냐. 미야자키 하야오는 <붉은 돼지(紅の豚)>에서 로맨틱하게도 이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