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질을 받을 정도로 좋아하는 일이라야 우리는 변할 수 있다.
꽃에는 나비가 없을 수 없고, 산에는 샘물이 없을 수 없다.
돌에는 이끼가 없을 수 없고, 물에는 물풀이 없을 수 없다.
교목에는 덩굴이 없을 수 없고, 사람은 벽(癖)이 없을 수 없다.
- 중국 청나라 시인 장조張潮 <유몽영>에서 재인용
대학교 1학년 때다. 정확하게는 1학년 가을, 겨울 즈음이었지 싶다. 나는 바리캉으로 3mm 삭발을 하고, 위 아래 추리닝을 입은 채로 학교를 다녔다. 아래는 짝퉁 아디다스 러닝 바지, 위에는 하도 빨아서 흰색이 다 되어버린 회색 후드티였다. 거기에 똑같은 운동화 하나를 신은 채로 매일 같이 학교를 가고, 왔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도대체 왜 그랬나 싶다. 인생에서 한 번 밖에 오지 않는 스무 살 아닌가. 게다가 대학교 1학년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낙타가 바늘 구멍 들어가는 것마냥 취업이 어려운 시기도 아니었다. 군대를 다녀온 뒤, 그러니까 '복학생'이라는 퀴퀴한 이름표를 단 후에, 강아지가 담벼락 아래 뚫린 개구멍을 오가듯 얼마간 몸을 웅크리고 바닥을 박박 기면 그래도 다들 어디가 되었든 '정규직 사원'으로 입사할 수는 있다고들 했다. 요컨대, 대학교 1학년은 '고3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대가로 당분간은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그 좋은 시기에 나는 늘 삭발, 추리닝, 운동화 차림이었다.
'너는 왜 그렇게 입고 다니느냐'고 뭐라 하던 사람들도 있긴 했다. '쟤는 하여간' 하는 눈초리긴 했지만 다들 워낙에 한창 자유분방할 때니 그저 한 마디 툭 던지는 정도에 불과했다. 동기 중에는 모나리자처럼 눈썹을 깨끗이 밀어버린 녀석(남자)도 있었고, 늘 개량 한복을 입고 다니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그저 후줄근한 추리닝이었을 뿐이다.
운동 때문이었다. 그 시절 나는 학교 수업만 마치면 땀을 흘리러 달려갔다. 사실 종목은 여러 번 바뀌었다. 검도를 하다가 복싱을 했고, 글러브를 버리고 마라톤을 뛰다가, 운동화를 넣어두고 다시 검도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는 틈틈이 학교 체육관의 낡은 쇳덩어리들을 가지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함께했다. 미팅보다는 도서관이 중요했고, 도서관보다는 운동이 재미 졌던 나의 스무 살이었다.
하루의 일과는 대략 이랬다. 강의 몇 개를 우이독경 식으로 설렁설렁 듣고, 강의가 없는 빈 시간에는 커피우유갑을 접어 팩을 차고 놀았으며, 자하연 매점에서 초코시럽을 발라주는 와플이나 우물거리다가, 해가 저물면 예외 없이 체육관을 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옷 갈아입기도 귀찮은데 이럴 바에야' 하는 마음으로 아예 추리닝을 입고 등교를 한 적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편했다. 그래서 아예 그것이 교복이 되었던 것이다.
내게는 운동이 벽(癖)이었다.
'벽'이란 '치우치게 즐기는 무언가'를 의미한다. 이를테면 캐릭터 인형을 모아서 온 집안을 인형으로 가득 채운다던가, 손뜨개질이 너무 좋아 밤이나 낮이나 실과 바늘에만 매달리는 사람을 일러 '벽이 있다고' 한다. 나는 운동이 좋았다. 책상머리를 지킨다고 고등학교 때 까지 제대로 해 본 적 없는 운동이었다. 덕분에 찾아온 허리 통증으로 점심시간마다 한의원에서 침을 맞으며 고3 시절을 보내곤 했다.
대학생이 된 후, 갑자기 무한정의 자유시간이 주어지자 제일 먼저 택한 것이 운동이었다. 대단한 몸짱도, 자랑할 만한 스포츠맨도 아니었지만, 운동을 거른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매일 땀을 흘렸다. 약속이 있어 체육관을 가지 않은 날이면 하다못해 학교 내의 순환도로라도 한 바퀴를 뛰었다. 한 바퀴는 4km였고 20분 하고도 3, 4분쯤 더 걸렸다. 나는 운동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했던 셈이다.
얼마 전에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호중유천(壺中有天)이란 고사성어가 나왔다. 호중유천을 직역하면 '항아리 속의 하늘'이다.
중국의 한 관리가 길을 걷다가 용모가 기이한 노인을 만나 부지불식 간에 뒤를 밟게 되었다. 그런데 이 노인은 어느 집 담벼락 담장 위의 기와 구멍 속으로 쏙 들어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관리가 놀라서 달려와 기와 구멍 속을 들여다 보았다. 그랬더니 그 안에 하늘이 있고, 물이 흐르고,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있는데 마치 지상낙원처럼 좋아 보이더라, 하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말이다. '작은 항아리 속에 하늘이 들어 있다'는 말은 남들은 모르는 자기 만의 세계가 있어, 세파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한 몸을 편히 쉴 수 있는 취미나 기예를 의미한다.
'항상 눈코 뜰 새 없는 어느 기업의 총수가 알고 보니 물고기를 기르는데 1인자더라', '직업이 공무원인 어떤 사람은 주말만 되면 일류 철인 3종 경기 선수로 변신하더라' 하는 식이다. 꼭 1등이나 1류는 아니어도 좋으니, 그 안에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넉넉한 세계가 있느냐가 포인트다. 일본의 양명학자 야스오카 마사히로는 바로 이 '호중유천'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좋아하는 것이 있는 사람은 삶을 한결 풍요롭게 산다.
대학을 졸업한 지 어느새 수 년이 지났다. 몇 년 만 더 지나면 '까마득한'이란 수식어를 붙여도 그럭저럭 과장이 아닌 나이가 될 것이다. 이제는 출퇴근을 해야 하는 직장이 있고, 식사 후에는 커피우유 대신 아메리카노를 들고 다니며, 와플을 우물거릴 한낮의 여유는 찾아보기 드물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추리닝을 교복처럼 입지는 않는다.
이제 비록 추리닝은 입지 않지만, 매일 추리닝 차림으로 캠퍼스를 다닐 정도로 포옥 빠졌던 운동은 변함없이 내 곁에 남았다. 그 시절 가졌던 운동이란 벽은 마치 또 하나의 심장처럼 뗄레야 뗄 수 없는 습관이 되어버렸다. 어느덧 검도 3단. 일 년에 서너 차례 시합도 나가는데 메달을 노리는 재미도 쏠쏠하다. 허름한 맥주 집에서 검도 이야기를 하면 칼이 어쩌고, 발이 어쩌고 하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내가 가진 항아리 속의 하늘, 호중유천인 것이다.
맛깔난 영화를 만들기로 유명한 장진 감독은 그런 말을 했다.
"고등학교 때 250편의 연극을 보았는데, 그것이 이야기를 만드는 데 절대적인 도움이 되었다. 즐긴 일은 반드시 선물이 되어 돌아온다. 그러니 즐길 수 있을 때 참지 말고 즐겨라."
사람들은 원래 평범함을 벗어난 것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벽은 남들에게 이러쿵 저러쿵 말을 듣기에 딱 알맞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말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누가 있으랴. 하지만 '나'라는 사람을 만드는 것은, 사방으로 뻥 뚫린 풀밭에서 남들과는 다른 '자신의 길'을 내는 것은 결국 '벽'이 아닌지.
벽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을 정도로 좋아하는 일을 만나야 우리는 변화할 수 있다.
대학시절 '너는 왜 그렇게 입고 다니느냐'라고 핀잔을 주었던 지인들 중에 지금도 늘 운동을 하는 사람은 내가 알기로 아무도 없다.
소설가 김연수는 <청춘의 문장들>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대체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큰 관심이 없다. 내가 꼭 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에도 흥미가 없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만이 내 마음을 잡아끈다. 완전히 소진되고 나서도 조금 더 소진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누구인지 증명해주는 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 견디면서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일,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글을 쓸 때, 나는 한없이 견딜 수 있다. 매번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두 손을 들 때까지 글을 쓰고 난 뒤에도 한 번 더 고쳐본다. 인간이란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고, 할 수 있는 일은 할 수 있는 존재다. 나는 완전히 소진될 때까지 글을 쓸 수 있다."
완전히 내던질 수 있는 일. 완전히 즐길 수 있는 일. 그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뭐라 뭐라 말이 나올 수도 있는 일. 우리의 삶을 정말로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런 일들이 아닐지. '사람은 벽이 없을 수 없다'는 장조의 말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