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의 신, 이나모리 가즈오가 묻는다 <왜 일하는가>
어느 날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 하나로 나는 이전까지 나를 괴롭혔던 모든 걱정과 불안에서 벗어났다. 보잘것없던 인생도 정반대로 바뀌었다. 그 깨달음은 바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즐기자'였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 깨달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다 보니 인생이, 모든 일이 술술 풀렸다.
- 이나모리 가즈오 稻盛和夫 <왜 일하는가> 일본 기업인
옛 궁궐의 제작을 총 지휘하는 도편수가 이런 말을 했다. "아무리 볼품없는 나무라도 그 안에는 영혼이 살고 있습니다. 천 년 된 나무를 사용하려면 이후 천 년을 견딜 만큼 제 일을 해야 합니다." 어쩌면 미사여구로 들릴 수도 있을 법한 저 말이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은, 그 도편수의 삶이 갖는 진정성 때문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직후부터 궁궐 짓는 일을 시작해 일흔이 넘는 나이까지. 그는 60년의 세월을 궁궐 짓는 일에 온전히 바친 사람이었다.
<왜 일하는가>의 첫 머리에서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이 인용한 어느 도편수의 이야기다. 말이 오직 말로서만 존재한다면 뼈도 없고 살도 없는 가죽처럼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한다. 말은 맥락 속에서 이해될 때만이 참된 가치를 지니는데,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맥락이 '말을 한 사람'이다. 메신저가 곧 메시지라는 맥루한의 통찰은 언제나 유효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나모리 가즈오가 던지는 한 마디의 질문은 그 울림이 넓고도 깊다.
"왜 일하는가?"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이 누구인가. 마쓰시타 고노스케(마쓰시타 전기 창업자), 혼다 쇼이치로(혼다 자동차 창업자)와 더불어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3대 기업가 중 한 명이다. 1959년 자본금 300만 엔으로 시작한 '교세라'를 세계 100대 기업으로 키워냈고, 1984년 KDDI를 창업하여 10년 만에 일본 굴지의 통신 회사로 성장시켰다.
2010년, 일본 항공 JAL이 파산하자 경영진은 이나모리 가즈오를 삼고초려로 모셨다. JAL을 살려낼 수 있는 사람은 전 일본을 통틀어 이나모리 가즈오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수차례 회장직을 고사하던 그는 결국 다시 세상의 부름에 응답하기로 결심하고 겨우 세 명의 측근을 데리고 부임했다. 여든 살에 가까운 노구를 이끈 출사였다. 구원투수로 등판한 그가 보여준 성과는 이랬다. 파산한 회사를 불과 13개월 만에 흑자로 전환. 그리고 2년 만에 역대 최고액 기록 경신.
이쯤 되면 그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나모리 가즈오가 대단한 배경을 가진 인물, 철저하게 교육받은 엘리트, 하늘이 내린 흔치 않은 천재라고 상상할지도 모른다. 만일 그랬다면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그의 업적을 설명하기는 좀 더 쉬웠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완전한 반대다.
그는 중학교 입학시험에서 떨어졌다. 결핵 때문에 수업에 제대로 들어가지 못해서였다. 이것은 그가 겪게 될 길고 긴 좌절의 마라톤 코스에서 갓 스타트 라인을 통과한 것에 불과했다. 대학 입시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원하던 의과대학에 불합격한 뒤 마지못해 고향의 이름 없는 공과대학에 진학했다.
취업 역시 곤란의 연속이었다. 대기업 중 어느 누구도 그를 불러주지 않았다. 명문대를 나온 스펙 좋은 졸업생들과 경쟁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교수님의 추천으로 쇼후 공업이라는 지역의 회사에 들어가게 된다. 그래도 전기 절연 초자를 만드는 단단한 기업이라는 말을 들었다. 좌절의 행로는 여기서 한숨 돌리는가 싶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어둠은 이제 시작이었다. 그 회사는 겉보기와는 달리 하루하루 유지하기조차 버거운 상태였다. 월급조차 제때 나오지 않아 직원들에게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말을 밥 먹듯이 하는 곳이었다. 게다가 이나모리 가즈오가 발령을 받은 곳은 신제품을 개발하는 연구소였는데, 그 연구소에는 세 가지가 없었다. 연구 시설, 연구 자원, 그리고 함께 일할 인력. 이쯤 되면 거의 이름만 연구소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연구소 직원'인 이나모리 가즈오에게 어쨌거나 회사는 오더를 내렸다. 바로 '파인 세라믹스'의 개발이었다. 물론 당시 파인 세라믹스는 가장 유망한 분야인 것은 분명했다. 개발에 성공할 경우 큰 가능성이 열려있는 문이었다. 다만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 '전도 유망한 분야'라는 말은 사실 당시 전 일본에서 어느 누구도 성공한 예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고 둘째, 이나모리 가즈오는 파인 세라믹스와 무기화학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누가 보아도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지인들은 그에게 지독히도 운이 없다며 '끌끌끌' 혀를 찼다. 능력 있는 직원들은 다른 회사로 하나둘씩 전직하고, 오갈 데 없는 사람들만 출근하여 어수선한 회사를 더욱 어수선하게 만들고 있었다. 물론 이나모리 가즈오도 회사에 대해서는 불만이, 앞날에 대해서는 걱정이 가득한 평범한 직원에 불과했다. 여건이 좋은 곳으로 옮기고 싶어도 딱히 그러기도 쉽지 않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때였다. 이나모리 가즈오가 인생을 뒤집을 만한, 아니면 정반대로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지도 모르는 결심을 한 것은.
그는 어차피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다면, 우선 눈 앞의 일에만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당장 해야 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했다. 그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기에 그는 그렇게 '결심'했다. 지금 그리고 여기에 살기로 말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지금 하는 일 외에 방법이 없다면, 지금 하는 일에만 집중하자.
이나모리 가즈오는 말한다. 진실로, 그때 그 순간 이후로, 갑자기 인생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고. 여기서 나는 마음만 다르게 먹으면 세상이 달라진다는 나이브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사실은 그는 진심으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결심'을 했으며, 그 결심을 진심으로 '실천'했다는 점이다. 결심에 이은 독한 실천은, 결코 그의 결심이 나이브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식기를 가져와 연구실에서 먹고 잤으며,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무기화학을 독학했고, 최신 논문을 미국에서 구해와 혼자 번역하며 연구한데다가 자신의 사비를 투자해 연구에 충당했다. 별 볼일 없는 회사의 별 볼일 없는 공대 졸업생이 파인 세라믹스에 능통하고, 넉넉한 지원을 받아가며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경쟁업체의 전문가들과 경쟁할 수 있는 방법은 그 뿐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부분이다. 그는 말했다.
"일에 몰두하면서 나 자신도 놀랄만한 실험 결과가 연이어 나왔다. 그와 동시에 나를 괴롭히던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 '내 앞날은 어떻게 될까?'하는 의구심과 방황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자신의 일이 좋아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얼마나 연봉을 올려주면 다른 업종으로 미련 없이 이직하겠느냐는 질문에 가장 많은 답변은 평균 20%였다. 일에 매여있지 않는 여유 있는 삶을 꿈꾸며 수없이 많은 직장인들이 매주 로또 복권을 산다. 그러나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해야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면, 1년 365일이 매일 여름 휴가와 같다면, 과연 우리는 더 행복할까. 우리의 삶은 더 가치 있는 것이 될까.
물론 아직 어딘가 있을 천직을 찾아 방황 중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현재 하는 일은 일종의 스톱 오버로서 자신이 생각하는 종착지를 향해 틈틈이 노력 중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딱히 '몰입할 수 있는 일' 따위에는 큰 관심이 없지만, 생계수단으로써 마지못해 일터에 몸을 담고 '그럭저럭' 사는 평범한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프랭클린의 말처럼 우리의 삶이 시간으로 이루어진 것일 때, 그 시간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일'이라는 점이다.
그 말은 곧 '일이 바로 삶 그 자체'라는 것을 의미한다.
퇴근 시간을 위해 하루의 일을 처리한다면, 주말을 기다리며 일주일의 일을 버틴다면, 여름 휴가를 손꼽으면서 일 년의 일을 견딘다면, 그것은 생크림이 묻은 체리 하나만 떼어내 입에 넣으면서, 커다란 케이크를 통째로 휴지통에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생크림 케이크에서 가장 맛있는 부분은 딱 하나 얹혀있는 설탕절임 체리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체리 하나만 먹기 위해 케이크를 사는 것은 분명 아니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말한다. 일 자체를 인격을 단련하기 위한 수행으로 삼고, 진심을 담아 진지하게 노력하는 것에 삶의 온갖 기쁨이 있으며,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모든 고통과 걱정거리를 일소하는 비결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 그러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이 질문과 마주해야 하며, 인생을 걸고 이야기할 수 있는 나름의 답을 기필코 찾아내야 한다고 말이다. 하여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왜 일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