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재우 Aug 06. 2015

#43 사람 만나는 일이 두렵다면 '잡담'을 연습하라

무쓸모의 쓸모를 말한다 <잡담이 능력이다>

'잡담=알맹이 없는 이야기'는 정답이지만, '잡담=필요 없는 이야기'라는 말은 큰 오해다. 잡담에는 알맹이가 없기 때문에 의의가 있다. - 사이토 다카시  齋藤孝 <잡담이 능력이다> 일본 언어학자   


일전에 어느 잡지를 뒤적이다가 '무쓸모의 쓸모, 소용없는 것의 소용, 쓸데없는 일의 쓸데'라는 표현을 만난 적이 있다. 반짝이는 글귀였다. 개울가에 발을 담그러 갔다가 우연히 아주 마음에 드는 예쁜 조약돌을 줍게 된 것처럼 기분이 좋아서 기억 어딘가에 메모해두었다. 


사실 쓸모없다고 생각한 많은 것들은, 단지 너무 흔해서 소중함을 모르는 것이거나 아니면 지적 능력의 한계로 그 쓸모를 가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지극한 오해'인 셈이다. 


이를테면 오랜 시간 동안 잠은 쓸데없이 낭비하는 시간이라 여겨졌다. 그래서 '잠을 줄이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로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뇌과학 연구 결과가 쌓이면서 잠은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역할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음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 바로 어제 자 신문만 하더라도 잠이 '기억을 연결하고' '창의성을 낳으며' '의사결정을 하는' 등 중대한 일을 부지런히 한다고 '충실한 잠을 독려'하는 기사가 났다. 


다른 예로 맹장은 어떤가. 맹장은 단지 퇴화된 기관일 뿐이며, 고작해야 맹장염이나 앓을 뿐인 골칫덩이로서 기회가 되면 차라리 뚝 떼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기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이다. 최근의 의학 연구는 맹장이 인체에 유익한 세균들을 모아두는 기능을 한다며 없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또, '고래잡이' 수술은 어떤가. 내가 어렸을 적에는 방학만 지나면 종이컵을 달고 거북이처럼 어기적어기적 걸어 다니는 녀석들이 우글우글했다. 일종의 필수 코스이자 통과 의례였다. 그런데 지금은... 차마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인터넷에서 고래잡이 수술과 함께 사라져버리는 많은 것들을 직접 검색해보라. 

<잡담이 능력이다>는 '쓸데없는 소리'로 여겨져 왔던 '잡담의 기능'에 대해 주목한 책이다. 이 책이 주는 경천동지 할 깨달음은 바로 저 한 문장으로 충분하다. 


잡담에는 알맹이가 없기 때문에 의의가 있다.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는 사이토 다카시에 따르면 잡담의 가장 강력한 기능은 다름 아닌 '사회성'이다. 누구나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모임에 참석하여 쭈뼛거렸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청산유수 수다가 끊이지 않는데, 처음 보는 사람 앞에 서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고생한 경험도 다들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사이토 다카시는 그런 어색함을 깨고, 둘 사이에 자리 잡은 알래스카처럼 광활한 공간을 단숨에 가로질러 벚꽃나무 아래처럼 친근하고 훈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도구가 바로 '잡담'이라고 한다. 


잡담을 잘 하는 사람은 곧 인간관계에 뛰어난 사람이며, 사회생활에서 요구되는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말대로 "면접에서 다른 사람과 격의 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는 자체가 대단하며, 굉장히 뛰어난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잡담은 절대로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며 오히려 웅변술과 화술을 연습하듯 '잡담력'을 연습해야 한다고 사이토 다카시는 주장한다. 책의 제목 그대로 '잡담이 능력'인 것이다. 

그렇다면 잡담을 잘 하기 위해서는 어떤 기술이 필요할까. 


다행히 우리는 잡담을 배우기 위해 스승을 찾아 멀리 가거나, 거액의 교습료를 낼 필요가 없다. 일상이 곧 도장이며, 매 순간이 곧 실습 시간이니 말이다. <잡담이 능력이다>에서 사이토 다카시가 조언하는 기술 중 세 가지만 기억하면 좋을 것 같다.

첫째, 인사 플러스 알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을 때, "안녕하세요."라고 받으면 거기서 끝이다. 더 이상 랠리가 이어지지 않는 탁구공과 같다. 잡담에 있어 마침표는 미덕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사 뒤에 무언가를 덧붙여 볼 것. "오늘 비 온대요." 혹은 "어제 축구 중계  보셨어요?"처럼 의미 없는 말이라도 좋다. 바로 그 '의미 없는 한 마디'가 잡담을 여는 문이다. 


둘째, 칭찬. 


시도하는 것 만으로 성공인 것은 효도 만이 아니다. 칭찬은 물론 그 내용이 중요하지만, 단지 시도만으로도 충분한 효과가 있다. 잡담 중에 최고의 잡담은 칭찬이다. 만일 '입에 발린 소리'가 하기 싫기 때문에 이 방법에 거부감이 든다면, 해결책이 있다. '입에 발린 칭찬'이 아닌 '진짜 칭찬'을 하면 된다. 넥타이든, 새로 한 머리든. 진심으로 칭찬할 거리를 찾자.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자. 진심 어린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허접한 밥을 산 뒤에 짠돌이라고 뒷말을 듣는 경우는 있더라도, 작은 칭찬을 한 후에 쪼잔하다고 뒷말이 나오는 경우는 단연코 없다. 돈도 들지 않는데 효과는 100%다. 


셋째, 슛이 아닌 패스. 


잡담의 핵심은 '이어지는 말'이다. 그러므로 '결론을 도출하는 질문'과는 상극이다. 축구로 빗대면 슛이 아닌 패스인 셈이다. 골대를 향할 생각이 없이 슬슬 공만 돌리고 있는 게으른 선수들과도 같다.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이야기가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잡담의 비결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해 동네에 새로 생긴 피자집으로 끝날 수도 있다. 이야기를 마친 후에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했지?"라고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좋은 잡담이라고 사이토 다카시는 조언한다.  


예전에 어느 택시 기사 분이 라디오에서 했던 말이 기억난다. 여성 운전자였다. 라디오 진행자가 "심야에 운전하시면 위험할 수도 있는데 무섭지 않으세요?"라고 물었다.  그때 기사분이 이렇게 답했다. "무섭지요. 그래서 젊은 남자 손님이 타면 말을 많이 걸어요. 가족 이야기도 하고요. 그 덕인지 아직까지 별다른  문제없이 잘 운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이것이 잡담의 쓸모 있음이자 알맹이가 없는 것의 알맹이 아닌가.

 


작가의 이전글 #42 그 순간 인생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