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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Aug 06. 2015

#44 글쓰기가 때때로 두려운 이들에게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가 주는 조언

그 외 나머지는 인내의 문제이다.

- David Bayles & Ted Orland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중에서


내가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역설적으로 글쓰는 일과 가장 거리가 먼 직업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나는 청소를 하고, 커피를 말고, 설거지를 하며, 싱크대에 물 빠지는 속도가 느려질 때마다 배수관이 막힌 것이 아닌지 걱정해야 하는 구멍 가게의 주인이었다. 매일 아침 같은 자리에 출근을 하면서, 보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형태의 일을 하고 싶다'고 막연하게 상상했었다.


가장 자유로운 직업을 꼽자면 뭐니뭐니 해도 예술가가 최고였는데, 이래저래 따져보니 수많은 예술 중에 돈이 없는 사람도 계속 할 수 있는 장르는 글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술을 하려면 물감을 사야하고, 음악을 하려면 악기가 있어야 한다. 글이야 아래 한글이 깔려 있는 노트북 한 대면 되는 것 아닌가. 퓰리처상을 탔던 애니 딜러드도 그런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다. 


작가란 '무릎 위에 타자기를 올려놓는 것 만으로 일할 준비가 다 되는 존재' 라고.


그렇게 몇 년이 지나는 동안 '예술'을 했다는 이야기는 차마 할 수 없더라도, 꾸역꾸역 어떻게든 글을 써온 것은 사실이다. 되던 안 되던, 알던 모르던, 형식과 내용을 가리지 않고 무언가를 쓰긴 썼다. 정확한 나침반이나 최신판 지도는 없었지만 '흘러흘러 가다보면 뭐라도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펜을 놓지 않았다.

그러는 도중에 나름 깨달은 사실이 있다면 '글쓰는 사람에게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바로 인내'라는 점이다(첫 번째는 시간이다. 무조건 시간). 글쓰는 일은 상당한 괴로움이 따르는 작업이다. 헤밍웨이도 글을 쓸 때마다 매번 괴롭다는 말을 했고, 박경리 선생도 평생 <토지>를 써 왔지만, 아직도 괴롭다고 고백했으며, 글쓰는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붓을 꺾으려 한 김연수는 박경리 선생의 그 이야기에 위안과 용기를 얻었고, 애니 딜러드는 하다못해 요리 레시피를 쓰더라도 문장이란 문장은 모조리 괴롭기 마련이라 토로했다. 실크 천 위에 미끄러지는 유리구슬처럼 수월하게 줄줄줄 써지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이다.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벼락을 치고, 쓰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가득하며, 배터리가 꽉 찬 노트북과 크레마가 살아있는 더블 샷 아메리카노가 준비된 조명 좋은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하더라도, 진짜 시작은 그 때 부터다. 그리고, 


시작한 이후 모든 것은 결국 인내의 문제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나아가 창조적인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것은 운명과도 같다. 펜을 잡고자 하는 사람은, 더구나 그 펜촉의 끝으로 동전과 지폐를 그리고자 하는 사람은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플루타르코스의 말처럼 '운명이란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절망만이 남은 것일까.


다행히 그렇지는 않다.


모든 인내는 개개인에게 속한 것이라 다른 누군가가 한 줌의 짐도 나누어 질 수 없는 것이라 할 지라도, 다행히 무릎이 꺾이지 않도록 힘을 더할 수 있는 보호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처럼 책임질 수 없는 구호를 외칠 생각은 없다. 즐기려 애써봐도 즐길 수 없는 상황이 세상에는 있기 마련이다.


다만 그런 경우에 어쨌거나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를 우리는 김연수의 예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다. 다른 사람들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도 포기하지 않고 꾸역꾸역 걸음을 내딛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 그리하여 일체개고一切皆苦, 이 길은 원래 모두가 고통이라는 사실을 결국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는 예술가들이 두려워하는 대상을 빼곡하게 담아놓은 책이다. 저자들은 "자신의 작품이 실패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반복되는 정상적이며 건강한 일반현상"이며 "창작의 목표는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고 "예술 창작의 요소(조건, 지식, 자료, 후원자 등)는 원래가 불확실"하다고 강조한다. 


자기 자신, 타인, 인정과 지지 등 어느 것 하나 예술가에게 두려움을 주지 않는 대상이 없다.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는 차라리 '예술가여 이런데도 예술을 하겠는가'로 제목을 바꾸어야 할 지경이며, 이런 현실을 직시한다면 차라리 예술 따위를 때려치우는 것이 올바른 이성을 지닌 사람의 상식적인 판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글을 쓰고 붓을 잡는다. 우리는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그런 존재들인 것이다. 예술적 인간, 호모 아르텍스Homo artex로 태어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중단할 수 없다면, 계속 가야 한다면, 어차피 가는 길이라면 조금은 덜 고통스럽게 가자. 가시덩굴로 빽빽한 이 길에서 무언가를 해내고 싶다면, 비록 팔과 다리는 상처로 가득할지언정 마음 만은 요람에 누운 듯 편안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


그러기 위해 이 말을 호신부護身符처럼 품 속 깊이 간직하기를 권한다.


그 외 나머지는 인내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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