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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Aug 07. 2015

#46 작은 불편함을 피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

피하고 싶은 것을 피하지 않을 때 우리는 성장하는지도 모른다

전에도 한 번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며칠 동안 손에서 놓았던 일'을 다시 잡는 것은 여간 괴롭지 않다. 


하루 이틀이면 그럭저럭 괜찮을 지 모르겠지만, 나흘 혹은 닷새가 넘어가면 일에 손을 대는 '착수' 자체가 대단히 힘들다. 자꾸만 피하고 싶어 지는 것이다.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며 묻어두다 보면 열흘쯤 지나가는 것은 순식간이 되어 버린다. 


모든 일에 있어서 그렇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로는 예외가 없었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내가 좋아하는 일과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 사이에 차이가 없는지도 모른다.  일주일쯤 묵혀둔 <수학의 정석>은 페이지 사이 어딘가에 호랑이라도 숨어있는 듯  무시무시했고,  보름쯤 쉰 검도 도장은 100일 휴가를 마치고 복귀하던 군대처럼 내키지 않았다. 하다못해 한참을 접속하지 않은 스타크래프트 배틀넷에 로그인할 때도(친구들이 오랜만에 하자고 해서) 씀바귀 나물을 날로 씹은 양 떨떠름했다. 


어느 유명한 골퍼가 이런 말을 했다. 연습에 있어서, 하루를 쉬면 자기가 알고 이틀을 쉬면 코치가 알고 사흘을 쉬면 갤러리가 안다고. 그러니 열흘쯤 쉰 뒤에는 손 매무새가 거칠고 조악해짐을 온 천하가 알  수밖에 없는 것이다. 


Out of sight out of mind. 결국 요약하자면 이런 말이 아닐까. 


손에서 멀어진 모든 것은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마음에서 멀어진 모든 것은 재개하기 괴롭다.
재개하지 않고 방치해둔 모든 것은 비를 흠뻑 맞은 쇠처럼 순식간에 녹슨다. 

평생 살면서 아예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면 상관이 없으되, 결국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이렇게 해서는 아니 된다. 하물며 일이건 공부건, 내가 평생을 끌고 나가기로 진지하게 결심한 무언가에 있어서랴. 


그러므로 하루도 쉬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요, 최선의 방책이 무너진 경우라면 코치와 갤러리가 알아 채기 전에 연습을 재개함이 차선의 방책이요, 차선의 방책도 실패한 경우에는 좋은 때와 아름다운 장소를 기다리지 말고 어느 순간이라도 과감하게 '착수'하는 것이 최후의 방책이다. 게으른 천성과 둔한 재능을 짊어지고 그래도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해내고자 하면 적어도 셋 중 하나에는 몸을 담가야 한다. 그것이 최소한이다. 


하여, 다시 꾸역꾸역 펜을 잡는다. 열흘 만이다. 


다시 손가락을 놀리자니 단어는 쌓이지 않고 문장은 이어지지 않는다. 소설가 김영하가 말하길 작가의 뇌는 손가락 끝에 있다던데, 열흘을 쉰 사이 뇌의 마디마디에 녹이 켜켜이 슬었나 보다. 그렇다고 그간 글자를 멀리 하였느냐, 하면 결코 그런 것은 아니다. 일상의 분주함에 눌리고, 게으름의 유혹에 끄달렸다 해도 글과 말은 늘 끼고 사는 것이 생활이 된지 오래다. 이런 저런 책을 읽어치웠고, 예전에 써둔 글 두어 편을 손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는 책 읽기와 다른 문제인 것이다. 콜라 대신 사이다로 대신할 수 있는 햄버거 세트가 아니다. 글을 쓰지 않으면 글을 쓰기 싫어지고, 글이 쓰기 싫어지면 글이 쓰여지지 않는다. 


겨우겨우 거칠고 조악한 손매무새로 녹을 털어내며 지금 이 글을 쓰는 중이다. 대사가 끝나기 무섭게 꽁무니를 빼고 사라지는 학예회의 초등학생처럼 이제 하고 싶은 이야기만 끝내고 들어가야겠다.

추석 연휴 중에 경기 양주에 있는 회암사(檜巖寺)를 찾았다. 외가댁에 갔다가 인근에서 오리 약선을 기쁘게 즐긴 후에 가볍게 들른 절이다. 1174년 금나라의 사신이 왔을 때 회암사에 머물렀으며, 고려 때 팔도 사찰의 총 본산으로서 스님이 3천 명에 이르렀다니 그 규모가 자못 장대하다. 조선 태조가 왕위를 물려준 후 말년에 수행한 곳이라 한다. 


그때의 건물은 화재로 모두 소실되어 사라졌다. 지금은 회암사지(檜岩寺址)로서 과거의 영광을 상상으로만 가늠할 뿐이다. 다행히 회암사지에는 대규모 발굴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드넓은 들판에 놓여있는 주춧돌과 계단이 고려시대 최고 사찰을 증언하고 있었다. 현재의 회암사는 발굴 현장보다 좀 더 위에 위치했다. 1922년에 새로 지은 절이라 한다. 대웅보전과 관음전, 조사전이 잘 갖춰진 짜임새 있는 절이었다. 


축원할 일도 있고, 부처님께 추석 인사도 올릴 겸 해서 천천히 경내를 돌았다. 추석 연휴에도 불구하고 절을 찾은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조사 전에 세 명의 처사, 보살님이 나란히 앉아 좌선을 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고개를 자연스레 숙이고 허리를 둥글게 한 모습이 간화선이 아니라 선가의 호흡수행처럼 보였다.

꽤 더운 날이었다. 가을 햇살이 제법 따가웠다. 내내 물을 많이 마신 탓인지, 신호가 왔다. "아우님, 저기 들렀다 가십시다." 나는 손으로 해우소(解憂所)라고 쓰인 현판을 가리켰다. 근심을(憂) 없애는(解) 곳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이름이다. 저 옛날 누군가, 화장실을 해우소라고 이름 붙인 사람은 대단한 카피라이터임에 틀림없다. 


해우소에 들어가 보니 다행히 수세식이었다. 청소도 잘 되어 있고 깔끔했다. 산중의 절은 대체로 물이 귀하고, 오가는 사람이 많은 까닭에 깨끗하기 쉽지 않다. 높은 산의 유명 사찰 중에는 '물을 쓰지 않는 화장실' 등의 안내판이 걸린 곳도 더러 보았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울 정도인 곳은 드물다. 


작은 일을 치르고 나오던 중 문득 보니, 화장실 문에 '스님용'이 따로 붙은 칸이 있었다. 나머지는 '일반인 용'이고, 딱 한 칸만 '스님용'. 기분이 씁쓸했다. 군대에 있었던 간부식당이 생각났다. 포크 달린 수저로 식판에 담긴 밥을 퍼먹을 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국에 맛깔난 반찬 그릇이 솜씨 좋게 놓여있는 간부식당의 식탁이 꽤나 부러웠었다.

불법승(佛法僧) 셋을 일러 삼보(三寶)라 한다지만, 계급이 있는 군대도 아니고 화장실까지 이럴 건 뭐 있나.

이러니까 스님들이 싫은 소리를 듣는 거 아닌가, 툴툴거렸다. 


나는 일반인 칸의 문짝을 쓰윽 열어봤다. 

흔히 쓰는 보통 양변기였다. 

얼씨구. 그럼 스님용만 비데?

심통난 마음으로 스님용 칸의 문짝을 밀었다. 

아차. 


거기 있던 것은 쪼그려 앉는 재래식 변기였다.


나는 뜻밖의 장면에 깜짝 놀랐다.

청량한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아주 조금 전, 툴툴 걸렸던 마음이 대빗자루로 마당을 쓴 듯 깨끗이 사라졌다. 

양변기와 재래식 변기. 작은 차이에 불과하지만, 불편함은 결코 작지 않다. 두 번의 닷새짜리 중국 여행 중에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다름 아닌 화장실이었다. 중국은 호텔이나 공항에도 쪼그려 앉는 재래식 변기였기 때문이다. 어쩌다 단 한 칸 양변기가 있으면, 다른 사람이 차지하기 전에 먼저 들어가려고 눈치 싸움을 했었다. 


게다가 스님들이 입는 승복은 우리네 옷과는 다르다. 한복처럼 여러 겹의 옷을, 끈으로 여기저기 동여매는 치렁치렁한 옷이다. 당연히 조금 더 편한 곳에 들어가고 싶지 않을 리가 없다. 매일 아침, 몇 겹의 옷을 흘러내리지 않게 부여잡고 일을 치르려면 사투 아닌 사투가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불편한 자리를 골라 '스님용'이라고 못 박아 둠은, 작은 불편함을 경책 삼아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함일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한없이 편해지려고 한다. 뛰면 걷고 싶고, 걸으면 서고 싶고,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데, 자다 보면 누운 자리가 딱딱하다고 불평하는 것이 사람이다. 


그래서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인심유위(人心惟危) 도심유미(道心惟微)라." 사람의 마음은 오직 위태롭고, 도를 지키는 마음은 오직 미미하다 했다. 엔트로피가 끊임없이 증가하는 것이 자연의 '스스로 그러한 바'이니, 자연의 한 부분인 사람이라고 예외일 리 없다. 그 흐름에 어느 순간 'STOP'이라고 제동을 걸지 않으면 계속 내리막길을 걷다가 결국에는 비루한 존재가 되고 만다. 사람은 원래 그렇다. 


해우소의 작은 불편함이 그 STOP 사인이었다. 심리학의 안내에 따르면 인내심을 기르는 방법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지키기가 쉽지 않은 작은 약속을 하나 정해 두고, 그것을 어김없이 지키면 그 순간 인내심은 길러지는 것이라 했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오르자는 결심은 비록 사소한 것에 불과할지라도, 그 사소한 결심을 매번 지키는 것은 쉽지 않다. 엘리베이터를 지나쳐 계단을 향할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를 이기는 것이다. 그리고 다리의 근력과 함께, 참는 마음도 길러진다. 세상의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순간이다. 


해우소를 나오며 '작은 불편함을 피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피하고 싶은 것을 피하지 않을 때, 우리는 조금씩 성장하는 지도 모른다. 


그런 마음을 잊지 않으려 이렇게 녹슨 펜을 다잡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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