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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Aug 07. 2015

#49 할머니 두부

할머니는 손때 묻은 곰인형처럼 늘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신림동 고시촌에 마트가 새로 들어섰다. 


고시 학원이 있던 자리다. 낡은 건물을 부수고 주상복합건물을 새로 세웠다. 그 지하에 문을 연 식자재마트가 어마어마하다고 보름 전부터 어머니가 난리 셨다. 거기는 또 어떻게 아셨냐 물으니, 헬스장 아주머니들이 다들 거기로 옮겼단다. 살림하는 아주머니들 사이에는 나름의 커뮤니케이션이 존재한다. 대단히 빠르고 정확하다. '이 동네 머리 잘하는 미장원'이나 '냄새 안 나는 좋은 고기 주는 정육점' 같은 정보는 아주머니들의 평가만큼 확실한 것이 없다. 


"새로 생긴 마트가 얼마나 싼데, 혼자서는 무거워서 들고 올래야 올 수가  없어."라는 어머니의 호소도 몇 차례 있고 해서, 주말에 마트를 향했다. 일주일 동안 장을 안 보도록 필요한 물건은 다 적으시라고 펜과 포스트잇을 내밀었다. 


무, 감자, 오렌지, 오이, 양파... 


식자재들이 무거운 녀석부터 내림차순으로 적혔다. 어머니가 정말로 '사고 싶지만 무거워서 못 산' 리스트임에 분명했다. 나는 옷장을 뒤져 반바지를 꺼냈다. 이 날씨에 짐을 지려면 상당히 더울게다. "버스 타고 갔다가 환승해서 다시 타고 오면 돼." 작년에 신던 샌들을 뒤집어 탁탁 터는 내 등에 어머니가 이야기했다. 

식자재마트는 그야말로 별천지(라고 쓰고 도떼기 시장이라 읽는다)였다. 주상복합빌딩 지하 1층을 통째로 차지한 넓은 면적에 개미처럼 바글거리는 사람들을 보고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장바구니를 든 신림동 아주머니들은 모두 모인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보통 마트의 입구에는 카트들이 종이컵처럼 포개져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계산대 옆에는 플라스틱 바구니가 쌓여있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카트와 바구니가 없어 일하고 있는 점원에게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지금 다들 쓰고 계신 거예요." 


새로 생긴 마트는 싸긴 쌌다. 껍질이 얇고 투명한 감자는 100g에 100원, 1리터짜리 우유는 두 개 묶어서 1980원. 원숭이 한 마리가 일주일은 먹을법한 바나나 한 덩이는 겨우 4000원이었고, 12년 동안 검도로 단련된 내 종아리만 한 무 한 개는 고작 980원에 불과했다. 


더 많이 구경할수록 더 많이 사고 싶고, 더 많이 살수록 더 많이 돈을 아끼는 굉장한 곳이었다. 미처 카트를 구하지 못한 나는 양팔 가득 식자재를 들고 마트 구석구석을 마실 나온 강아지처럼 훑고 다녔다.

그때 나는 그런 것을 처음 보았다. 세상에 그런 가격의 물건이 실제로 존재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지금까지 숱하게 장을 보아 오면서 비싸서 사지 못했던 식재료는 수없이 많지만, 거저나 다름없이 싼데도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아 사지 못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나의 지갑은 나의 위장을 채우기에 늘 턱없이 얇고 가벼웠다. 


"세상에, 세상에, 이게 웬일이래야." 


곁을 지나가던 할머니가 같은 곳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표현 그대로 '입을 떡 벌린' 할머니는, 그러나 도저히 들 엄두가 나지 않아 아쉬운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거기 있던 것은 '두부'였다. 


잘 포장된 두부 한 판. 


냉장실에 들은 두부 한 판이 무려 "1,500원" 이었다.

내가 신림동으로 이사를 온 것은  스물세 살 때였다. 학교 기숙사 신세를 두 해 쯤 졌고, 창문이 없는 방이라 2만 원을 깎아준다던 고시원에서 반 년을 웅크리고 잤다. 신림동에 집이라 부를 수 있는 집을 얻어 동생과 함께 살게 되면서 제일 좋았던 것은 근처에 있는 재래시장이었다. 


'2동 시장'이라 불리던 그곳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많았다. 내용물이 영 허술한 싸구려 고로케도 있었고, 저녁 무렵이면 "2000원에 3개"로 바뀌던  1000원짜리 떡도 있었다. 기름 냄새를 요란하게 풍기는 닭 튀김 집이 있는가 하면, 육개장이며 팥죽을 사발면 용기에 담아 파는 반찬 집도 있었다. 늙은 시쮸 강아지를 애기처럼 포대기에 들쳐 업고 일하던 야채 가게 아주머니와, 셰퍼드처럼 굵은 목소리로 "떨이요 떨이"를 외치던 수염쟁이 과일가게 아저씨는 언제 가더라도 눈에 띄었다. 


그중에서 단연 내가 가장 좋아하던 것은 두부였다. 뱀처럼 구불구불 이어지는 2동 시장의  허리쯤, 리어카 위에서 두부를 파는 할머니가 있었다. 늘 목도리를 두른 채 앞치마를 꽁꽁 싸매고 있던 할머니는 곰인형처럼 손 때 묻은 낡은 의자를 하루 종일 지켰다. 누가 "두부 주세요." 하면 무릎을 짚고 자벌레처럼 느릿느릿 일어나, 투명 비닐에 한 번, 까만 비닐에 한 번, 이렇게 두 번 싼 두부를 손에 들려주었다. 


나는 늘 그 할머니에게서 두부를 샀다. 할머니 두부가 제일 따뜻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그때  그때 갓 만든 두부를 내다 팔았다. 리어카 위에 두부가 떨어질 때쯤 되면, 후미진 골목에서 아들이 김이 무럭무럭 나는 두부를 판 째로 들고 왔다. 어른 손바닥 한 뼘 만큼 두껍고, 라면 박스만큼 넓은 두부는 모서리가 각지지 않고 뭉툭했다. 새 두부가 나오면 할머니는 칼을 들어 세로로 세 번, 가로로 네 번 줄을 그었다. 줄은 곧지 않았고, 크기도 균일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게 한 모의 두부였다. 애써 크니 작니 따지는 사람도 없었다. 묵직한 두부 한 모를 건네주고 할머니는 1000원을 받았다. 가끔씩은 주머니가 가벼워  500원짜리 동전 하나만  내밀기도했지만, 그래도 할머니는 싫어하지 않았다. 한 모든, 반 모든 달라는 대로 주고, 되는 대로 팔았다. 그래도 갓 쪄낸 할머니 두부처럼 따뜻한 것이 없었다.

사실 고백하건대, 나에게는 지저분한 버릇이 하나 있었다. 내가 재래시장에서 두부를 가장 좋아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뜨끈뜨끈한 두부를 살 때마다 나는 한 귀퉁이를 떼어먹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반드시 하얀 두부의 각진 모서리여야 했다. 그래서 재래시장을 나서자마자 늘 큰 길을 피해 사람이 드문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가슴에 안은 뭉실뭉실한 두부에서 고소한 콩 삶은 내음이 비닐 사이로 새어나왔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손으로 귀퉁이를 뚝 하니 떼었다. 때로는 "앗뜨뜨" 하고 손가락 끝이 놀랄 만큼 두부는 뜨거웠다. 하얗고 말랑말랑한 두부를 큼지막하니 떼어 입에 넣으면 찝찔한 간수가 고소한 두부 맛에 어우러졌다. 시장에서 파는 고로케며, 닭 튀김이며, 인절미며 다른 그 어떤 먹을거리도 이렇게 먹는 두부 조각보다 맛있는 것은 없었다. 


덕분에 두부는 늘 한쪽 구석이 으스러진 채로 주방에 도착했다. "또 두부 떼어먹었지?  지저분하게."라고 동생은 으르렁댔지만, 나는 늘 "손 닿은 부분도 내가 먹으면 되지." 하는 대답으로 대충 얼버무렸다. 손으로 떼어먹는 두부는 아무리 불평을 듣더라도 포기할 수 없을 정도로 맛이 있었다. 


두부란 갓 쪄내어 판에 담기는 순간 물에서 건져진 고기와 같아서, 집으로 가져가는 매 발걸음마다 차갑게 생명이 꺼져갔다.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로 썰을 때 쯤이면 이미 온기의 대부분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영혼이 없는 두부의 껍데기만 남아있기 마련이었다. 뒷골목에서 손으로 뜯어먹는 보기 흉한 버릇일지라도 싫은 소리를 감수할만한 나름의 이유가 나에게는 있었다.

그것도 벌써 10년 가까이 지난 일이다.  


군대를 가고, 일자리를 구하고, 밥벌이를 하면서, 오히려 재래 시장에 갈 일이 사라졌다. 퇴근한 후에는 너무 늦고, 휴일이면 밀린 잠을 채우기 바쁜 탓이다. 이제는 더 이상 두부 반 모를 잘라 살 필요는 없지만, 따끈한 두부를 사러 갈 시간 역시 함께 없어졌다. 주말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마트를 찾는 것이 고작이다. 


나는 한 판에 1,500원짜리 두부를 보며, 할머니 두부를 생각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할머니 두부는 아직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려나. "한 모  주세요."라고 이야기하면, 여전히 무릎을 짚고 자벌레처럼 느릿느릿 일어나 갓 쪄낸 두부를 담아주시려나. 


1,500원짜리 두부는 깨끗하고, 크고, 훨씬 쌌다. 

하지만 그 두부는 귀퉁이를 떼어 먹을 수 없는 두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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