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꼭지의 물을 벌컥벌컥 먹고 벽을 냅다 갈겨대면서
마루야마 겐지가 <문학계>의 신인상으로 결정되었다는 전보를 받았을 때,
그는 빨래를 하던 중이었다.
"어느 날, 자취방으로 돌아가 빨래를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신인상에 당선되었다는 전보가 왔다. 침착하려고 나머지 빨래를 손에 잡았지만 헛일이었다.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한껏 마셨다. 그리고는 방으로 들어가 벽을 발로 찼던 것 같다. 이어 평소에 불쾌하게 여겼던 회사의 동료들이며 상사를 한 명도 빠짐없이 패주리라고 마음먹고, 그들을 옥상으로 불러내어 곤욕을 치르게 하는 상상을 수없이 거듭했다." -<소설가의 각오> 중에서
마루야마 겐지는 전산 고등학교를 졸업한 무역회사의 말단 사원이었다. 하루 종일 통신실의 작은 책상에 처박혀, 부서끼리 오가는 전보를 텔렉스로 날려 보내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일본 경제가 호황을 누리던 1960년대 중반, 마루야마 겐지는 '고졸 9급 사원'이란 무시와 '겨우 굶어 죽지 않을 만큼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며 하루에 세 장씩 꼬박꼬박 원고지를 채웠다.
<문학계>의 신인상으로 뽑힌 것은, 그렇게 완성시킨 <여름의 흐름>이었다. 마루야마 겐지는 '수도꼭지의 물을 벌컥벌컥 먹고, 벽을 발로 냅다 갈겨' 댔다. 그것도 모자라 '상사와 동료들을 모조리 패주리라'고 결심했다. 23살. 젊은 혈기로 가득한 마루야마 겐지의 감격은 그랬다.
감격을 이야기할 때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스티븐 킹이다.
스티븐 킹은 엄청나게 가난했다. 시간당 1달러 60센트를 받으며 세탁소에서 환자들이 쓰던 침대보를 빨았다. 그의 아내 역시 던킨에서 하루 종일 바바리안 크림 도넛 따위를 포장했고, 집에는 전화기조차 없었다. 그런 생활 틈틈이 소설을 썼던 '소설가 지망생' 스티븐 킹이 첫 히트작 <캐리>의 판권이 팔렸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1973년의 '어머니날' 이었다.
"나는 양말만 신은 채로 아파트 안을 오락가락하기 시작했다. 경사가 났는데 이 소식을 들어 줄 사람이 없어 가슴이 터져버릴 지경이었다. 마침내 신발을 신고 나가 시내를 돌아다녔다. 뱅거의 메인 스트리트에서 문을 연 가게라고는 오직 라버디어 약국뿐이었다. 갑자기 아내에게 어머니날 선물을 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값비싸고 굉장한 것이어야 했다. 그러나 인생의 진리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라버디어 약국에서는 정말 값비싸고 굉장한 물건은 아무것도 팔지 않는다는 사실. 그래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 헤어드라이기를 샀다.
집에 돌아와 나는 아내에게 헤어드라이기를 건넸다. 아내는 난생 처음 보는 물건이라는 듯이 들여다보며 '이건 왜 주는 거예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녀의 양쪽 어깨를 감싸 쥐었다. 그리고 보급판 판권이 팔렸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녀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듯했다. 다시 말해주었다. 아내는 내 어깨 너머로 작고 초라한 우리 집 안을 둘러보더니 곧 울기 시작했다." - <유혹하는 글쓰기> 중에서
이 페이지를 읽을 때마다 내 눈에는 매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스티븐 킹과 그의 아내가 살았을 작고 어지러운 집. 그리고 시대를 대표하게 될 대 작가가 한 손에 헤어드라이기를 들고 울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어김없이, 그렇게 된다. 그가 느꼈을 감격이, 그 순간의 벅참이 고스란히 전해져서다.
서울의 한 신문사에서 신춘문예를 담당하던 기자가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신춘문예는 1월 1일 자 신문에 실리지만, 당선 결정은 보통 12월 20일 경이다. 담당기자는 직접 전화를 걸어 당선자에게 당선 소식을 전한다. 등단을 이제나 저제나 꿈꾸는 '문청'들에게는 그야말로 '감격의 순간'이다.
기자는 이야기하길, 당선 소식을 건넬 때마다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반응은 제각각이라 했다. "정말이에요?"라는 묻는 사람도 있고, 갑자기 비명을 지르는 사람도 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계속 반복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펑펑 우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소리를 지르건 흐느끼건 모두가 '감격의 순간'에 다름 아니다. 넘치는 감격을 주체하지 못해 마루야마 겐지는 벽을 발로 쾅쾅 갈겨댔고, 스티븐 킹은 아내와 함께 줄줄 울었다. 감격은 순간을 일상에서 오려내어 영원이란 옷을 입힌다. 그들이 몇 십 년이 지난 후에도 생생한 기억을 원고지 위에 고스란히 되살릴 수 있는 것은, 그 순간이 그들에게 있어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면 충실한 삶을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대학자 야스오카 마사히로는 이렇게 말했다.
"감격이 없는 곳에 인생은 없다."
감(感)이 격(激)해져야 감격(感激)이다. 물방울이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세차게 솟구치는 것을 일러 격(激)이라 한다. 느낌(感)이 움직이는(動) 정도에 불과하면 감동(感動)이다. 거세게 솟구쳐(激) 억누를 수 없을 정도에 이르러야 감격(感激)이 된다. 우리의 인생을 영원히 빛나는 무엇인가로 만드는 비결은 감격에 있다. 살아가는 참맛이다.
감격은 무엇으로써 얻을 수 있을까. 인생의 참 즐거움이 감격에 있다고 하나, 인생은 주판알을 깐깐하게 퉁긴다. 감격은 공짜가 아니다. 헐값에 넘기는 일조차 결코 없다.
반드시 지폐 한 장, 동전 한 닢, 제 값을 치르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인생은 슬그머니 감격을 꺼내 우리 손에 쥐어준다.
거세게 솟구치고자 하면 큰 힘이 필요하다. 큰 힘이 있으려면 작은 힘들이 모여야 한다. 간헐천에서 퐁퐁 솟는 샘물이라야 그 힘이 얼마나 되겠는가. 주춧돌을 들어 구멍을 틀어막은 채, 모이고 쌓일 때까지 인내해야 한다. 충분히 누르고 견디면 한계점에 이르러 비로소 '펑' 하고 솟구치는 것이다.
놀고 싶은 마음, 편하고 싶은 욕심, 게으르고 싶은 유혹이 없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자잘한 충동에 화답하여 틈 사이로 단 물을 슬슬 흘려보내는 사람은 평생을 기다려도 솟구칠 수 없다. 인생은 공짜가 아니다. 그런 이에게는 감격이 없고, 감격이 없는 곳에는 살아가는 참맛이 없다.
문득 자문하여 본다.
나의 인생에는 감격이 있는가.
3년 전쯤 이런 꿈을 꾸었다.
버스를 타고 가다 돌로 만든 다리 앞에서 내렸다. 나는 다리 아래에 흐르는 물이 보고 싶어 밑으로 내려갔다. 처음에는 그 아래에 흐르는 물이 그저 강물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강가에 서자 발 밑에는 거울처럼 잔잔한 바다가 에메랄드색으로 눈부시게 빛났고, 눈 앞에는 푸른색의 하늘이 끝없이 펼쳐졌다. 저 멀리 수평선 끝, 에메랄드빛 바다와 푸른색의 하늘이 만나 자로 댄 것처럼 가느다란 경계선이 놓여있었다. 광대한 에메랄드 바다 앞에서 너무나 감격스러운 나머지 나는 뒤로 자빠져 팔을 대자로 벌린 채 엉엉 울어버렸다.
꿈을 꾼 것은 군대를 제대한 무렵이었다. '마음껏 살아보리라' 하고 의욕에 불타던 시기였다. 가진 것은 없더라도 가슴만은 뜨거웠던 하루하루였다. 그 후로 '삐걱삐걱'과 '좌충우돌'이라는 말을 반창고처럼 붙여도 될만한 시간을 보냈다. 에메랄드 바다 앞에서 펑펑 울만한 일은 생기지 않았다. 발로 벽을 냅다 갈기거나, 비명을 지를 일도 없었다.
나의 인생에는 감격이 있는가.
아직 기다리는 중이다. 주춧돌이 더 무거워야 하거나, 아니면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일 게다. 저 아래 어딘가에서 퐁퐁 솟아나는 샘물이 옹기종기 모여 솟구칠 때를 손꼽고 있으리라 희망해 본다.
다만 방향이 맞다면, 계속 걸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