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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Aug 10. 2015

#58 확고하게 살고 싶은 라이프 스타일

하버드대의 연구에 따르면 운동은 행복으로 가는 핵심적인 열쇠다

요즘 점심 시간의 한 조각을 똑 떼어내 헬스장에 다닌다. 


헬스장이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리지만, 주민센터 3층에 거북이 등처럼 얹혀 있는 조그만 체력단련실이다. 주민등록등본 발급 차 들렀다가 주민센터 문 앞에 붙은 '복지시설 이용 안내'를 보고 "오오 이런 것도 있군" 하고 적극 이용하게 되었다. 


나는 이런 자잘한 복지 혜택을 좋아한다. '내 집 앞의 헬스장.' 얼마나 좋은가. 말 그대로 풀뿌리 복지다. 물론 공짜는 아니고, 3개월로 끊어서 9만 원이지만 말이다. 운동복이나 수건은 제공되지 않지만 심플하나마 샤워장이 딸려 있으니 그만하면 충분하다. 


점심 시간이 되면 속옷과 운동복을 넣은 가방을 들고 주민센터로 향한다. 옷을 갈아입고, 발목과 무릎을 요리조리 토닥인다. 3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달라진 점 중 하나는 준비 운동과 정리 운동을 하지 않으면 후유증이 생긴다는 사실이다. 


30대 초반만 해도 "준비운동? 그게  뭔데?"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체조도 거의 하지 않고 수영장에 풍덩 뛰어들었으니까. 운동장에 축구공을 던지면, 곧바로 저글링처럼 달려들어 공을 차고 뛰어다녔다. 이제는 그런 식으로 하면 무릎 인대가 "아이고 나 죽소!" 하고 패악을 부린다. 애피타이저와 디저트로 위장의 처음과 끝을 달래듯, 운동 전 후에 스트레칭을 착실히 해주어야 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확실히 서글픈 일이다. 

러닝 머신 위에 올라가 달리기 시작한다. 7km/h로 서서히 몸을 풀다가 9km/h 정도로 속도를 올린다. 제법 다리가 말랑말랑해졌다 싶으면 인터벌 트레이닝도 찔끔찔끔 시도한다. 14km/h와 7km/h를 200미터 씩 번갈아 달리는 방법이다. '쿵쾅쿵쾅' 킹콩처럼 달리다가 '헉헉헉헉' 가뿐 숨을 몰아쉬면 주위에 있는 아주머니들이 슬쩍슬쩍 쳐다본다. '저거 저러다 탈 나지 쯧쯔' 하는 염려의 눈초리다. 


풀뿌리 복지시설의 아쉬운 점을 꼽자면 탱크톱을 입은 늘씬한 아가씨들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점심 시간의 헬스장에는 "고구마 쪄 온 것 좀 잡솨봐." 하며 왁자하게 간식을 나눠 드시는 아주머니들 뿐이다. 물론, 서른 중반에 아랫배가 출렁거리는 내가 탱크톱  운운하는 것은 좀 주제넘은 일이기는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하루에 달리는 거리가 대략 3km 남짓이다. 더 달리고 싶어도 시간이 없다. 정리 운동과 샤워까지 해야 하니까 웨이트 기구를 사용할 짬도 나지 않는다. '오늘도 고생했어요' 하는 나긋나긋한 손길로 무릎 인대와 발목 관절을 주무르면 어느새 12시 30분. 부랴부랴 씻고 구내식당을 향할 시간이다. 점심 약속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이런 식이다. 


한 시간 밖에 되지 않는 점심 시간을 잘라 나름 부지런을 떠는 것은 내가 살고 싶은 확고한 라이프 스타일이 있기 때문이다. 옛 말에 따라하면 닮아간다고 했다. 소로우의 말처럼 '길게 보아 삶은 목표한 것만 맞춘다'고, 형편껏 한 걸음씩 내딛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훌쩍 꿈꾸던 세상에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여행하며 글을 쓰는 내 친구가 며칠 전에 그런 이야기를 했다. 


"첫 책에 '이렇게 살고 싶다' 고 마음대로 상상한 부분이 있는데,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지금 바로 그대로 살고 있어." 

살면서 보아온 이들 중에 '오오, 이런 하루를 보낸다면 참 좋겠군' 하는 생각을 들게 한 사람이 두 명 있다. 
한 명은 무라카미 하루키고, 다른 한 명은 서울대 황농문 교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상은 그가 에세이와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언급한 덕택에 제법 알려진 편이다. 새벽에 일찍 눈을 뜬다. 맑은 정신으로 4~5시간쯤 소설을 쓴다. 오전 10시 경에 러닝 슈즈의 끈을 묶고 10km를 달린다. 오후에는 밀린 편지를 쓰거나 소설책을 읽고 맥주를 마신다. 따뜻한 두부를 사와 생선을 구워 '세숫대야만큼 커다란' 접시에 담긴 샐러드와 함께 먹는다. 저녁 무렵에는 수영을 즐기거나 또다시 맥주를 마시고, 가능한 일찍 잠든다. 장편 소설을 집필하는 기간 내내 이런 일상의 반복이다. 


<몰입>으로 유명한 황농문 교수는 그의 책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은 하루의 리듬'에 대해 수 차례 강조했다. 졸리면 수시로 자고 절대로 무리하지 않는다. 잘 조율된 기타 줄처럼 적당한 강도로 계속 연구 과제를 생각하되, 날마다 적어도 30분 정도는 땀 흘려 운동을 한다. 운동은 구기종목처럼 되도록 재미있는 것을 택한다. 이런 일상을 지속하면 창의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음은 물론 높은 행복감과 자신감으로 충만할 수 있다. 


두 사람의 일상에서 공통적인 부분은 바로 '운동'이다. 매일의 일과에서 절대로 '운동'을 빠뜨리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고 하루키와 황농문 교수가 대단한 몸짱이거나 파워 넘치는 스포츠 맨이냐, 하면 꼭 그런 것은 아니다(하루키는 철인 3종 경기를 뛰니 대단한 스포츠 맨에 속하려나?). 그저 행복한 일상을 위해, 심신의 지속적인 단련을 위해, '이번 생에서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어느 지점에 닿기 위해', 매일 땀을 흘리고 근육을 움직이는 것이다.

운동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인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운동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폭신한 고구마 무스를 포크로 쏘옥 찍어 먹으면 행복한 것처럼, 아주 당연한 표정으로 "운동을 하면  행복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버드 의대 교수 조지 베일런트는 운동을
행복으로 가는 일곱 가지 열쇠 중의 하나로 꼽았다. 


나머지 열쇠들이 '안정적인 결혼'이나 '금연', '높은 교육 수준'인 것에 비하면 '운동'은 손에 넣기에 훨씬 수월한 열쇠임에 틀림없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국 전역을 돌며 선거 운동을 할 때, 제일 먼저 고려한 스케줄이 무엇인지 아는가. 숙소 가까운 곳에 있는 헬스장을 체크하는 것이다. 오바마는 매일 1시간 반 정도의 운동을 거르지 않는다. 


내가 확고하게 살고 싶은 라이프 스타일이 '운동하며 사는 삶' 만은 아니지만, '운동하며 사는 삶'이 거기에 포함되는 것은 분명하다. 매일 아침 안개 자욱한 호수가를 뛰고, 매일 저녁 마룻바닥을 쾅쾅 구르면서 죽도를 휘두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행복한 사람이란,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눈을 감으며 그 사이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정의가 있다. 


그 정의를 빌려 나의 방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아침에 호수가를 달리고, 저녁에 검도를 하며 그 사이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 그것이 나에게 있어 '가장 멋진 하루'일 것 같다. 


확고하게 살고 싶은 라이프 스타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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