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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Aug 10. 2015

#59 폭면(暴眠)모드의 비극

주말 내내 냠냠냠 잠만 자는 나 스스로를 자책하며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는 주량이 대단했다. 


원래 술을 즐기는 데다, 마시면 예외 없이 폭음으로 이어지는, 소위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술을 끊었다고 한다. 적어도 집필 기간에는 일절 입에 대지 않는다. 담배와 함께 가장 끊기 힘든 것이 술이다. 그런 술을 끊게 된 연유에 대해 조정래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술을 굉장히 좋아하는 스타일인지라 술잔을 잡으면 항상 끝까지 간다. 그래서 하루 술 마신 독을 빼려면 이틀이 걸렸다. 결국 술을 한 번 마시면 사흘은 작업을 못하는 것이다. 내가 하루에 통상 쓰는 원고지가 30장 정도 된다. 사흘이면 원고지 100장을 쓸 시간이다. 그러니 내가 술을 열 번만 마시면, 책 한 권을 못쓰는 셈이다. 이 생각을 하니 도저히 술을 마실 수 없었다. 그래서 단칼에 술을 끊었다." 


고시촌 수험가에서 하는 말 중에, 월드컵이 열리는 해에는 여성 합격자의 비중이 급격히 높아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월드컵 기간에는 예선부터 본선, 결승까지 수 십 개의 경기가 열린다. 경기 하나는 고작 90분에 불과하지만, 시작 전에 TV를 끌어 안고, 끝난 후에 맥주와 튀긴 닭고기를 뜯으며, 다음날 스터디 동료들을 만나 "어제 경기 봤냐? 그 슛이 골대만 맞지 않았어도!" 하고 수다를 나누다 보니 축구에 취해 한 달이 훌쩍 지나간다. 한 달이면 수험 막바지에는 1 회독 넘게 볼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니 월드컵은 자칫 남자 수험생들에게 치명적인 함정이 되기도 한다.  

조정래에게 술이 있고, 고시남들에게 축구가 있다면, 내게는 잠이 있다. 


"잠 자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잠이라고 다 같은 잠이 아니다. 똑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바지 단추를 못 잠글 정도로 그득그득 밀어넣는 것을 '폭식'이라 한다. 똑같은 술을 마셔도 인사불성 꾸알라가 되어서 길바닥에 휘청거리는 것을 '폭음'이라 한다. 먹으면 자꾸 먹히고, 마시면 더 마시게 되는 것이 비단 밥과 술만이 아니다. 잠도 꼭 그렇다. 술이 술을 부르듯, 잠이 잠을 부른다. 잠에 취하여 미친 듯이 잠을 자게 된다. 


이른바, 폭면(暴眠)이다. 


나의 폭면 양상은 다음과 같다. 주말이 되면 잠이 쏟아진다. 집에만 머물면 그대로 방바닥이 나를 부른다. 밖에 일이 있어 나갔다가 들어오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집이란 원래 잠을 자는 곳'이라는 생각이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 지어진 탓일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이후로는 하루의 대부분은 밖에서 보내고 집에서는 거의 잠만 잤으니까. 그런 생활이 벌써 15년이 훌쩍 넘었다. 틈만 나면 원래 모습대로 돌아가는 형상 기억 합금처럼 나의 등이 자꾸만 방바닥과 합체하려 한다.

하루의 흐름은 대개 이렇다. 


새장 속의 문조가 밥을 달라고 짹짹거리고, 푸들 녀석이 놀자고 뺨을 핥아댈 때까지 늦잠을 자다가 겨우 눈을 뜬다. 해는 이미 중천이다. 소시지처럼 퉁퉁 부운 눈으로 억지로 밥을 먹고, 청소기를 질질 끌면서 집안을 치운다. 달그락 달그락 설거지를 마친 후에 창문을 열어 환기까지 끝내면, 이제는 깨끗한 방바닥이 매력적으로 나를 유혹한다. 먹고 움직였으니 몸은 어느새 밀가루 포대처럼 묵직해진다. 피할 수 없는 낮잠의 시간이다. 


집안의 블라인드를 촤라락 내리고, 악마 같은 햇빛을 피해 머리 둘 곳을 찾는다.  옛사람들이 한 여름 원두막 그늘에 누워 "어이구야 좋다" 하던 여유로움을 본격적으로 누릴 시간이다. 남들은 주말에 TV도 보고, 드라이브도 가고, 산에도 오른다는데, 안빈낙도를 찾기 위해 그 멀리까지 갈 필요가 뭐가 있나. 전등이며, 컴퓨터며 모조리 끄고 베개 하나만 베고 누우면 천국이 따로 없다. 중국에서 사온 천연 라텍스 베개의 영향도 조금은 있을 것이다. 


실컷 자다 보면 부엌의 덜그럭 소리에 저절로 잠이 깬다. 어머니의 저녁 준비 소리다. 잠자는 와중에도 촉은 살아 있다. "어서 일어나 밥 먹엇!" 하는 불호령이 떨어지기 전에 눈치 빠른 뱀처럼 스르륵 눈을 뜬다. 웃는 표정으로 맛나게 먹는 모습을 보여야 요리하는 사람도 재미가 있다. 세수를 하고 맑은 표정으로 수저를 든다. 냠냠냠. "오늘 국이 아주 간이 잘 맞네" 어쩌고 저쩌고. 


저녁밥을 잘 먹은 후에 설거지를 하면 휴일의 하루는 영락없이 '먹고 치우고 먹고 치우고'의 반복이다. 어차피 치울 것을 왜 먹는지. 전국 모든 가정의 주부들이 휴일마다 이 고생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한숨이 나온다. 일요일은 짜파게티 먹는 날로 정하던지, 아니면 감자나 한 광주리 쪄놓고 허기질 때마다 소금에 푹푹 찍어 먹게 하던지 무언가 일손을 덜 방도를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아무튼, 자청한 설거지마저 끝내면 어느덧 해가 저문 저녁. 온전한 휴일의 하루는 대개 이렇게 간다. "내일부터 또  출근이여"라는 핑계로 일찌감치 잠자리를 펴면 하루 종일 한 일이라곤 그저 먹고 잔 것 밖에 없다. 외양간의 소나 진배없는 스케줄이다. 

부끄러운 일상을 고백하다 보니 괜히 말이 길어졌다. 바로 어제의 일이라서 생생하기 때문인가 보다. 물론 주말의 폭면은 '누적된 피로의 회복'이라는 명분이 있긴 하다. 주말이 아니면 언제 맛있는 잠을 냠냠냠 잘 것인가. 


하지만 문제는 냠냠냠 폭면을 하고 난 다음이다. 월요일 아침이면 두 가지 증상이 있다. 폭음과 거의 비슷한 증상이다. 첫째, 글이 영 안 써진다. 둘째, SF영화에 흔히 나오는 수면 캡슐에서 수십 년 간 잠들었다 깬 우주인처럼 머리가 머엉 하다. 


노벨문학상을 탄 터키의 소설가 오르한 파묵은 '바늘로 우물을 파는 심정'으로 글을 쓴다고 했다. 폭면에서 깬 월요일의 내 괴로움이 꼭 그와 같다. 좀 더 자세히 표현하면 '중국산 이쑤시개로 자꾸만 허물어져 내리는 우물을 파는 심정'이다. 단어는 떠오르지 않지, 주술관계는 엉망이지, 주제는 흐리멍덩하지. 월요일의 글은 지렁이가 행군하는 속도로 쓰여진다. 그나마 3보 전진에 2보 후퇴를 반복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괴로운 월요일을 보내면서 꾸역꾸역 어떻게든 문장을 완성시키면, 다음 날은 조금쯤 편해진다.  두세 번 먹으면 익숙해진 한약의 쓴맛 같다고나 할까. 고통이 조금쯤 줄어든다는 뜻이다. 거기서 하루가 더 지나 수요일에 닿으면 글의 속도가 현저히 빨라진다. 그리고 하루를 더 끄적여 목요일이 되면 비로소 글 쓰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네이버 웹툰의 서나래 작가가 말하길, 작품 활동을 하다 보면, "와하하하 나는  천재다!"라는 마음과 "틀렸어. 나는  쓰레기야."라는 좌절감 사이를 수도 없이 왕복한다 했는데, 일주일 동안의 내 마음도 마찬가지. 월요일에서 출발해 목, 금요일에 이르는 동안 지옥에서 출발해 천국을 등반하는 기분이다. 


물론, 주말이 되면 다시 폭면 모드로 들어가고 말이다.

이런 까닭에 예로부터 무슨 일이든 간에 꾸준함을 강조했다. 


중국 북송의 유학자 주자는 말하길 공부는 닭이 알을 품는 것과 같다고 했다. 닭의 체온이라야 별 것이 있겠냐만은, 오로지 쉬지 않고 품고 있는 까닭에 끝내 알이 부화한다. 전설적인 골퍼 벤 호건은 매일 하는 연습의 중요성을 다음의 명언으로 요약했다.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캐디가 알며,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갤러리가 안다." 수학에 광학, 물리학에 신학까지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천재적인 결과물을 남긴 뉴턴의 일대기에 대한 평전 제목이 무엇인지 아는가. 


<Never at rest - '결코 쉬지  않는'>이다. 


경험에 기대 가늠해보건대, 노력의 세계는 '연습하지 않는 날'과 '연습하는 날'로 이루어진 0과 1의 이진법의 세계가 아니다. 일주일에 사흘을 쉬고 나흘을 글을 썼다면, 사흘의 0에 나흘의 1이 더해져, 일주일의 총합이 4가 되는 것이 아니다. 노력의 계산을 그렇게 하고 있다면, 분명 셈법을 모르는 사람이다. 


노력이란 그렇다. -1로 후퇴하는 날도 있고, 0으로 제자리인 날도 있으며, 노력을 하더라도 0.5에서 1까지 그 효과는 천양지차다. 술을 하루 마시면 술을 깨는 데 이틀이 걸리고, 월드컵에 한 달을 빠지면, 정신을 차리는데 한 달이 든다. 주말 내내 잠을 자면, 글 솜씨를 다시 찾는데 일주일이 걸린다. 


매일 꾸준히 1을 쌓는다 해도 나아갈 길이 구만리인데, -1과 1을 번갈아 얹고 있으니 어느 세월에 높은 탑을 쌓을 것인가. 이리저리 갈지자로 방황하면서 어느 하늘 아래 목표에 닿을 것인가. 

 

스스로가 한심하기 이를 데 없어 꾸역꾸역 이쑤시개로 우물을 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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