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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Aug 10. 2015

#61 우리는, 우리의 생각보다 유능하다

무조건 질문부터 던져라.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라고.

공자의 제자 염구가 하루는 스승 앞에서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선생님의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제 능력이 부족합니다(非不說子之道 力不足也)."

그러자 공자가 답했다. 
"힘이 부족한 사람은 가다가 그만두기 마련이다. 그런데 너는 벌써부터 한계를 긋는 것이냐(力不足者 中道而廢 今汝畫也)." 


<논어> 제 6 옹야편에 나온 공자와 염구의 문답이다. 


스승과 제자는 사람의 능력과 한계에 대해 논하고 있다. 우리 능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와 'Boys be ambitious' 중에서 우리는 어느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인가. 2500년 전부터 이어져 온 물음이다.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 엘렌 렝거는 1983년 재미있는 실험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에게 까다로운 상황을 하나씩 알려주고, 그들이 난처한 입장에 처한 당사자라고 상상하게 했다. 참가자들이 상상해야 했던 까다로운 상황을 몇 가지 들자면 다음과 같다. 


(1) 두 명이 서로 적대감을 갖고 있는 위원회에 제 3의 멤버로 참여함
(2) 파티에서 매력적이지만 차가워보이는 이성에게 말을 걸어보려 함
(3) 수업 첫 시간에 45명 학생 전원의 이름을 외우라는 주문을 받음
 
그리고 실험진이 참가자들에게 주문한 것은 두 가지다. 


첫째, 난처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용할 전략을 생각해 볼 것(과정). 

둘째, 그 전략의 성공 가능성을 0점에서 100점까지 매겨볼 것(성과). 


심리학 실험의 핵심은 연구 설계다. 똑같은 질문이라도 어떻게 설계하느냐 그 미묘한 차이에 따라 인간의 심리라는 비밀의 화원이 틈새를 살짝 열어주기도 하다. 엘렌 렝거의 섬세한 손은 바로 이 부분을 매만졌다.

엘렌은 전체 참가자를 둘로 나누었다. 


그리고  그중 절반에게는 '전략'을 설명하도록 요구한 후에 '성공 가능성'을 물었고(과정 지향적 집단), 나머지 절반에게는 '성공  가능성'부터 매기게 한 후에 '전략'을 설명하도록 했다(성과 지향적 집단). 물론 실험진은 참가자들이 지혜를 동원하여 만들어 낸 '상황 타개 전략' 따위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궁금해했던 것은 '두 집단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자신들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생각하느냐'였다. 


결과는 간단했다. 


'상황을 타개할 전략'을 설명하도록  요구받은 '과정 지향적 집단'이 다짜고짜 "당신의 성공 가능성은 몇  점입니까?"라는 질문부터 대답해야 했던 '성과 지향적 집단'보다 자신의 '성공 가능성'을 더 높게 생각했다. 과정 지향적 집단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전략을 상상하고 설명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높였던 반면, '과연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성과 지향적 집단의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했다. 


이 실험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막상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고민해보면, 스스로의 문제 해결력이 예상했던 것 만큼 형편없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우리의 생각보다 유능하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강화도에 있는 수련원으로 리더십 강화 캠프를 갔다. 전교에서 몇 명만 뽑혀서 가는 캠프였다. 경기도 곳곳의 학생들이 한데 모였다. 처음 만나는 친구들과 일주일 동안 뒹굴어야 했다. 


나보다 먼저 그 캠프를 다녀온 우리 반 친구가 있었는데, 그가 귀한 조언을 해주었다. "첫 날에 방 배정을 마치면 임원을 뽑아. 조장도 뽑고, 조장 아래 무슨 무슨 부장도 뽑지. 거기에 안 뽑힌 나머지도 다 하나씩 임무를 맡아. 어차피 하나씩 다 해야 하니까, 조장으로 자원할 사람 있냐고 물을 때 먼저 손을 들어." 


그런 캠프들은 수료식 때 항상 표창장을 준다. 그리고 표창장은 늘 조장 몫이기도 하다. 피할 수 없는 역할이라면 조장을 하는 편이 낫다. 

"그리고 조장이 제일 쉬워." 

친구는 당부했다. 


일주일의 캠프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실제로 방 배정을 마치자마자 임원을 뽑았고, 임원이 안된 사람들은 화장실이나 마당을 청소했으며, 수료식에서는 조장들이 표창장을 받았다. 친구의 귀띔은 틀리지 않았다. 딱 한 가지, '조장이 제일 쉽다는 말' 만 빼고 말이다. 

나는 그 친구가 말해준 대로 "조장에 자원할 사람?"이란 질문을 받았을 때 손을 번쩍 들었다. 뜨끈한 아궁이 위에 엉덩이를 붙인 고양이처럼 게으르고 수줍음 많은 내 성격 치고는 파격적인 일이었다. 


할 수 없지. 기다리는 사람에게 돌아오는 건 먹다 남은 생선  꼬리뿐이라는데. 


캠프 기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마치 길게 이어지는 큐빅 목걸이의 한 가운데 진짜 다이아몬드가 껴있는 듯 신기하게 느껴진다. 뭐랄까, 한 편의 연극을 한 느낌이라 해야 하나. 우리 조는 토론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었고, 청소를 비롯한 실내 정돈에서 항상 A등급을 맞았으며, 흙바닥에서 뛰고 뒹구는 모든 종목에서 거의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나는 벼랑 끝에 매달린 심정으로 부지런을 떨었고, 고맙게도 모든 조원들이 마음을 모아주었다. 


그리고 캠프의 하이라이트, 장기 자랑. 대개의 캠프들이 그렇겠지만, 최우수 조 선정에 가장 높은 배점을 차지하는 시간이었다. 우리 조는 종합 1위를 향해 달리고 있었지만 장기 자랑은 조각배를 뒤집는 거대한 파도처럼, 지난 시간을 완전히 무위로 돌릴 수 있는 변수였다. 


게다가 추첨으로 뽑은 우리 조의 테마는 빌어먹을 "가곡"이었다. 


조교의 말이 기억난다. "가곡 뽑아서 1등 한 조는 지금까지 없었다." '가요'도 있고, '댄스'도 있고, '연극'도 있는데 왜 하필 가곡이란 말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조는 그 조교의 코를 트럭 바퀴로 밟은 껌딱지처럼 납작하게 눌렀다. 하모니카로 전주를 하고, 다 함께 가곡을 합창하다 "지겨워 이따위 노래!" 하는 신호에 맞추어 광란의 댄스 무대로 돌변하는, 일종의 청소년 드라마 같은 연극을 꾸몄던 것이다. 


우리는 수련원 최초로 '가곡' 우승 조가 되었고, 종합 우승 역시 우리 조가 차지했으며, 나는 그 캠프에서 제일 큰 표창장을 받았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멋진 추억이지만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며, 그 비슷한 역할을 맡고 싶은 마음 역시 없다. 하지만 거기서 얻은 귀중한 경험은, 그때 내가 나 스스로에게 기대했던 것 이상을 해냈다는 점이다. 나의 능력은 내가 그은 한계 안에 웅크리지 않았으며, 한계라고 여긴 지점의 근처 어딘가에 머물지도 않았다. 좋건 싫건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유능했다. 고작 열일곱 살의 고등학교 캠프에서 확인한 증거일지라도 말이다. 


짐 캐리는 영화 <예스 맨>에서 모든 제안에 대해 YES라고 답하기로 결심한 인물로 나온다. 코미디 영화의 공식대로 좌충우돌 엉망진창 곤란한 사건들이 이어지지만 그런 소동을 겪으면서 짐 캐리의 인생은 점점 살만한 것으로 변해간다. 


삶의 비밀은 바로 거기에 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대신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면,
'할까 말까' 망설이기 전에 '할 수 있는  방법'부터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우리의 생각보다 유능하다는 사실'을 단 한 번만이라도 떠올려본다면,
우리는 공자 앞의 염구처럼 시작하기도 전에 주눅 들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할 수 없다고 여기는 많은 일들 중에서, 단지 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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