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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Aug 11. 2015

#65  보잘것없는 풀도 아스팔트를 비집고 싹을 틔운다

고대 이집트 인들이 피라미드를 만들듯

강익중 씨가 94년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에 입학을 허가받았을 때 일이다. 


밝은 미래가 기대되는 유망한 미술가였지만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형편은 그의 발목을 잡았다. 많은 시간을 아르바이트에 투자해야 겨우 학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주경야독.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고달픈 생활이 이어졌다. 일을 마치고 오면 그대로 꼬꾸라져 아주 잠깐 눈을 붙이는 게 고작. 이젤 앞에 앉아 캔버스에 붓질을 할 수 있는 시간 자체가 없었다. 


학생이 책상에 앉지 못하면 어떻게 공부를 할 수 있겠는가. 화가가 화실을 찾지 못하면 어떻게 그림을 그릴 수 있겠는가.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에 입학을 허가받은 재능도 각박한 환경에 불모지에 떨어진 씨앗처럼 싹을 틔울 가능성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돌파구를 만들었다. 


이젤 앞에 앉는 것이 불가능했던 그는 차라리 캔버스를 잘랐다. 


가로 세로 3인치 크기, 손바닥만 한 캔버스 조각이었다. 그는 이 작은 캔버스를 주머니에 넣고 학교와 일터, 그리고 그 둘을 오가는 전철 안에서 틈이 날 때마다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작은 캔버스들을 모자이크처럼 모아 작품을 만들었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설치 미술가 강익중.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택했던 '3인치 회화'는 지금도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스물아홉이 되던 해, 문득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소설가가 되려는 것도 아니었고, 소설을 어떻게 쓰는 것인지도 몰랐지만, 야구장의 외야석에 앉아 쭉쭉 뻗어 나가는 2루타를 보며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치 소설 속 한 장면처럼 결심했다.  그때 하루키는 재즈바 '피터캣'의 주인이었다. 대학교에서 만난 아내와 이른 나이에 결혼. 생계를 위해 돈을 빌려 바를 꾸리고 있었다. 


자영업자의 일상이라는 것이 고달프기 짝이 없듯, 하루키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재즈 바' 라지만 결국 술집 아닌가. 손님들의 푸념에, 취기 섞인 잔소리에 일일이 응대하다 보면 온 몸은 녹초가 되었다. 새벽 한두 시에 가게 문을 닫으면, 장부 정리를 비롯한 잔업이 남아있었다. 그것마저 다 마친 후에, 하루키는 맥주 한 잔에 기대 매일 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하루키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어떻게 써야 하는 지도, 무얼 써야 하는 지도, 무엇을 쓰게 될지도 몰랐다. 다만 쓰고 싶은 것을 '오늘은 여기까지'하는 심정으로 날마다 조금씩 썼을 뿐이다." 


그렇게 탈고한 소설이 그의 첫 작품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다. 단편보다는 길고 중편이라고 부르기에는 어중간한 그의 첫 소설은 길이나 구성이나 줄거리가 박테리아의 생물학적 분류처럼 애매했다. 끊어지는 것도 아니고 이어지는 것도 아닌 이야기가 마치 술자리의 기억 같은 파편으로 꾸역꾸역 진행된다. 


그 작품은 '군조 신인상'을 수상하며 하루키에게 소설가의 길을 열어주었는데, 심사위원들이 높이 평가한 '새로운 시도, 참신한 구성'은, 사실 '한밤 중의 부엌 식탁'에서 소설을 써야 했던 방법적 한계의 결과물이었다. 

우리는 늘 보다 나은 환경을 바란다. 재정적인 지원이 화수분처럼 충분하기를,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고래의 등처럼 널찍하기를, 주변 사람들의 응원이 가마솥처럼 뜨겁기를, 우리는 항상 바란다. 


하지만, 모자라기에 인생이다. 


인생은 거울 속의 우리 모습처럼 항상 어딘가 불충분하다. 시간은 항상 부족하다. 환경은 항상 넉넉하지 않다. 건강을 팔아 돈을 모은 다음, 돈을 헐어 건강을 찾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시소의 양 끝이 모두 올라갈 수 없듯, 원하는 모든 것은 절대로 다 갖추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한다. 해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살고 싶은 삶이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한다. 시간을 쪼개고, 내용을 잘라서, 한 문장을 쓰던, 한 땀을 뜨던, 한 소절을 부르던, 우리는 해야 한다.

나는 어린 시절 백과사전에서 고대 이집트 인들이 피라미드를 만들던 그림을 보았다. 


별다른 도구도 없는 그들이 집채 만한 돌덩이를 자른 방법은 다음과 같다. 바위의 작은 틈을 찾는다. 틈에 나무로 된 작은 쐐기를 박아 넣는다. 그 틈새에 물을 부으면, 젖은 나무가 점차 불어 부피가 커진다. 덕분에 시간이 지나면 바위의 틈은 조금 더 벌어진다. 이번에는 보다 큰 쐐기를 박는다. 위의 과정을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틈은 점점 벌어지는데, 이렇게 하면 어느 순간 단단하기 이를 데 없는 돌덩이도 수박처럼 가를 수 있다. 


시간이 흘러도 정말 중요한 것은 그다지 바뀌지 않는다. 틈을 찾고, 쐐기를 박는 것. 우리가 해야 할 일도 고대의 이집트 인과 작업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내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굽혀보라. 

보잘 것 없는 풀들도 아스팔트의 틈을 비집고 싹을 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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