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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Jul 31. 2015

#7 무엇이 문제일까 자기소개서

읽는 사람 입장에서 듣고 싶은 말을 써야 한다

팀원 한 명이 회사를 그만둔 지 사흘이 지났다. 


바쁠때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던데, 이건 원래 있었던 사람 손이 사라졌으니 분주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오늘부터는 짬을 내어 그 친구의 업무 매뉴얼를 열어보아야 할 판. 부디 '별 거 없네' 소리가 나오기를 바라고 있다. 


원래는 퇴사 1주일 전 후임 직원을 받았어야 했다. 인수인계에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럴 생각으로 경쟁사 방문자수 대비 무려 2배라는 국내 최대 인터넷 구직 사이트에 채용 공고도 올렸다. 덤프트럭째 쏟아지는 인재의 무더기 가운데서 능력이 출중하고 의욕이 가득한 새 멤버를 뽑을 생각을 하니 조금쯤 설렜다. 그게 무려 그 친구 퇴사 2주 전이다. 꼬박 보름이 넘도록 사람을 뽑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구직 사이트에 채용 담당자는 나로 올라가 있다. 나에게 '채용할 권한'이 있다는 뜻은 물론 아니고, 그저 이력서를 '취합, 전달할 권한'이 있다는 의미 정도다. 물론 "정말 아닌 사람은 아예 볼 필요도 없어." 라는 지시에 따라 어떤 이력서들은 프린터조차 하지 않으니 취합 권한이 채용 권한의 일부는 포함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지금까지 도착한 이력서는 대략 140장. 취업 경쟁률 100:1이 어쩌구 하는 뉴스 제목을 보고 놀란 것이 몇 년 전인데, 고작 한 명 뽑는 이 자리에도 정말 경쟁률이 140:1을 넘어선 것이다. 살기 힘든 세상. 



어찌되었건 채용 담당자인 나는 지난 2주 동안 좋은 팀원을 충원하기 위해 제법 신경을 썼다. "이런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하며 상무님께 따로 드린 이력서가 서른장 안팎. 보시고 마음에 드는 사람을 정하면 제가 개별 연락을 돌리겠습니다, 하는 취지였다. 스펙이야 어쨌건 다들 자기 소개서만큼은 개미같은 글씨로 빼곡히 적혀있었다. 


그런데 피드백은 단 한 명에 대해서도 오지 않았다. 연락을 돌리라는 지시가 한 건도 없었던 것이다. "이 사람은 이런 프로젝트를 했습니다.", "이 사람은 통계학이랑 경영학을 같이 했습니다" 하는 식으로 강조할만한 포인트를 치즈 크러스트처럼 둘러싸서 보고드렸지만 상무님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셨다. 2주가 지났고, 140건의 이력서를 받았으며, 회사의 매출액이 고만고만한 만큼 도착한 이력서들도 고만고만한데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 하시니 슬그머니 걱정이 들었다. 


문제가 무엇일까. 


주말을 앞둔 지난 금요일, 그러니까 사직서를 낸 팀원이 책상을 정리하고 떠나던 날이었다. 이력서를 보시던 중 상무님이 말했다. 


"그런데 왜 자기 소개서에 이 회사를 들어가서 어떻게 어떻게 해보겠다고 쓴 사람이 한 명도 없어?"



생각해보니 그랬다. 140건의 자기 소개서 중에서 우리 회사의 이름이 들어간 글은 단 두 건 뿐이었다. 하나는 아주 오래전에 여기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한 적이 있던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입사 포부에 '000에서 저를 뽑아주신다면 역량을 발휘하여 최선을 다해 전문가의 길로 어쩌구' 하는 전형적인 문장을 끼워넣은 사람이었다. 그래도 최소한의 성의 표시를 보였으니 눈여겨 읽으려 했다. 바로 다음 문장에 000 대신 XXX 회사를 적어넣는 실수만 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때로는 Ctrl + C와 Ctrl + V가 인생을 좌우하는 경우도 있는게다.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회사에 지원을 하려면 적어도 


1. 자기는 이런 사람인데 2. 그 회사는 이런 곳으로 생각되는 바 3. 그 회사에 들어가게 된다면 이런 식으로 나를 발휘해 보겠다, 하는 세 가지 설명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건 설득의 기본이다. 중고 물건을 거래하건, 3류 통속극 주연 남자가 조연 여자를 꼬시건 이 세 가지를 빼놓고는 진행할 수 없다. 


중고 물건 거래 : 1. 제 예산은 이 정도인데요 2. 선생님 물건은 이런 흠이 있으니 3. 저 가격으로 절충하면 어떻겠습니까
통속극 주연 남자 : 1. 저는 이런 남자인데 2. 당신은 그런 여자이니 3. 우리가 함께하면 요래오래 행복하지 않겠소


비록 내가 써본 자기 소개서, 혹은 내가 손 보아준 추천서가 몇 편 안되긴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저 세 가지를 망각한 적은 없었다. 모든 글은 독자의 입장을 생각하며 써야하는데, 더군다나 그 독자가 나의 인생을 어느 정도는 쥐고 흔들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로 최선을 다해, 거의 그 사람에게 빙의라도 된 관점으로 작성해야 하는 게 아닐까. 즉, 읽는 사람 입장에서 듣고 싶은 말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글의 진실성과 각오의 실천 가능성도 중요하긴 하다. 하지만 그 전에, 독자 입장에서 자기 소개서를 쓸 수 있는 것 자체가 능력이라 생각한다. 팀워크는 배려에서 나오고, 배려의 기초체력은 역지사지인 까닭이다. 



요즘 자기 소개서들은 이상하네, 라고 생각하던 중에 최근까지 입사 원서를 넣어본 경험이 있는 막내 직원이 설명을 했다. 요즘은 구직 사이트에 자신의 기본 이력서를 등록하여 둔단다. 자기 소개서도 마찬가지다. 지원 분야를 고려하여 몇 가지 버전으로 작성할 수 있다. 그리고 구직 공고가 뜨면 클릭 몇 번으로 지원하는 거다. 이른바 '빠른 지원'이란다. 


그런 식으로 하루에 100건도 지원할 수 있는 것이 지금의 구직 시스템. 대개 일단 서류를 넣고 면접 연락이 오면 그 다음에 어떤 회사인지 알아본다고. 고유한 자기 소개서를 요구하는 몇몇 스타급 대기업이야 질문의 취지까지 심도있게 고민하여 자기 소개서를 새로 작성하지만, 갑남을녀 장삼이사 무수한 기업들에 대해서야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느냐는 이야기다. 


들어보니 맞는 이야기이긴 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이후 취업 문이 이렇게 좁아진 적이 없다는데 구직자들 입장에서는 각각의 지원서에 최소한의 수고를 들여 최대한의 기회를 탐색하는 것이 합리적인 전략임은 틀림없다. 그런 니즈를 편리하게 뒷받침하는 까닭에 경쟁사 방문자수 대비 무려 2배라는 국내 최대 인터넷 구직 사이트의 매출액이 저 높이 훨훨 날고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구인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100대 1이고 200대 1이고 간에, ' 2. 당신은 그런 여자이니 3. 우리가 함께하면 요래요래 행복하지 않겠소'를 쏘옥 빼놓고 줄기차게 '1. 저는 이런 남잡니다' 만 핏대 높여 소리치는 자기 소개서들에 애정이 가지 않는 것은 인지 상정이 아닌지.


그렇다고 합리적인 전략을 따라 '빠른 지원'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구직자들을 비난할 생각은 샤프심 끄트머리 만큼도 없다. 한쪽에서는 날마다 무수히 지원하고, 반대편에서는 날마다 무수히 제껴버리며, 그 사이에서 나를 알아보는 회사가 없다고, 혹은 쓸만한 인재가 없다고 한탄하는 현실이 진심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결국 채용 공고에 몇 가지 사항을 추가로 적었다.

- 독서 이력 또는 책에 대한 열정
- 000에 들어와 발휘하고 싶은 자신의 포부
위 사항을 포함한 자기 소개서를 제출할 것.


이제 요래요래 행복하자고 조곤조곤 설명하는 글들이 다가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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