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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Jul 31. 2015

#8 엄마의 토스트

그것은 단지 엄마에게 충분히 쉬운 방법이 아니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엄마는 늘 똑같은 토스트를 만들어 왔다. 


적어도 30년 동안 그래왔으니 아마 그전에도 다르지 않았을게다. 이 토스트에 뭔가 특별함이 있다거나, 세상에 둘도 없는 맛이이라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울 생각은 없다. 토스트는 그냥 토스트다. 무엇이 들어가는지 알면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그냥 뻔한 토스트일 뿐이다. 


식빵은 대개 싸구려였다. 마트에 벽돌처럼 쌓여있는 토스트 전용빵이나 아니면 베이커리에서 제일 아랫 계급을 차지하는 우유 식빵. 거기에 마가린을 문질러 달궈진 후라이팬 위에 올렸다. 그 다음은 계란이다. 한 번에 세 개쯤 툭툭 깨어 노른자와 흰자가 너나없이 어울려 구워지는 동안 쨈을 꺼내 식빵에 발랐다. 그 계란이 바싹 익은 다음에야 예의 쨈 위에 올리고 빵을 덮었다. 


그것이 변함없는 엄마의 레시피였다. 나는 토스트란 원래 그런 것인줄 알고 자랐다. 


엄마의 살림은 저 토스트와 같았다. 


반찬의 종류도, 청소하는 방법도, 늘 그릇들이 어지러이 쌓여있는 씽크대도 나의 기억 속에선 늘 비슷했다. 오래 했으면 조금씩 늘어갈 법도 한데, 그래서 없던 커텐이 달리거나 못보던 음식이 차려질 법도 한데 엄마의 살림은 항상 제자리였다. 그점이 불만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다, 라고 말할 자격도 없다. 엄마가 해준 밥을 먹으며 지금까지 살아온 나는 오늘 아침에도 이불을 개는둥 마는둥 뛰어나갔으니까. 



어쨌거나 세상에 다른 식의 토스트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지방으로 장기 출장을 갔을 때였다. 


작년 여름이었던가. 워크샵을 갔던 제주의 숙소에서 직원 한 명이 아침 식사로 토스트를 만들었다. 다진 야채를 넣고 부친 계란으로 굵은 소시지를 감싼 후 구운 식빵으로 둘둘 말은 토스트였다. 체다 슬라이스 치즈는 적당히 녹았고 케첩은 군데군데 알맞게 숨어 있었다. 더군다나 이 토스트를 만든 사람은 남자 직원. 나도 물론 이삭 토스트니 파니니 전문점이니 하는 바깥 빵들을 먹어본 일은 있었다. 다만 그네들은 집 살림에서 가능한 토스트가 아니라고 여겨왔던 내 생각이 틀렸던 것 뿐이었다. 


그 즈음이었다. 남의 살림 중에서 우리 집 살림과 다른 부분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대개는 좀 더 나은 것들이었다. 그릇 정리도, 냉장고 청소도, 하다못해 설거지 후에 행주를 널어두는 방식까지도. 본 것이 늘어난 나는 엄마에게 이것저것 말을 했다. 바꿔보시면 안 되느냐고, 이렇게 하면 확실히 더 좋다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늘어 놓았다. 직접 행동으로 옮긴 일도 있었다. 시범을 보인다고 행주를 빨았고, 냉장고를 정리했으며, 펄프 청소기를 사왔다. 몇 번인가 그렇게 했다. 


하지만 엄마의 살림은 엄마의 토스트 같았다. 다른 요리 방법이 있다 해도 잘 듣지 않는 엄마. 내가 토마토 에그 스크램블이니 크림 파스타니 "엄마, 이런 건 사실 간단해" 하고 만들 때마다 늘 "글쎄 나는 그게 복잡해" 라며 거의 따라하신 적이 없었다. 결국 펄프 청소기는 며칠 만에 베란다 창고로 밀려났다. 



오늘 아침이었다. 싸구려 식빵이 식탁 위에 앉아 있었다. "이게 웬 식빵이에요?" 물으니 어젯밤에 엄마가 사온 녀석이란다. 웬지 빵이 당기지 않는 아침이었다. 나는 찬밥에 밑반찬을 꾸역꾸역 씹어 삼키며 말했다. "지난 번에 보니까 토스트를 그렇게도 하더라구. 계란을 풀고, 그냥 빵을 거기에 푹 적셔서 후라이팬에 구워요. 그럼 끝이야. 프렌치 토스트라나 뭐라나."


지나가는 말이었다. 


별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후라이팬을 꺼내들었다. "뭐하시려 그러는데?" 엄마는 대답할 사이도 없이 냉장고에서 계란을 꺼내 깨뜨렸다. 식빵이 머리채를 붙잡혀 싱크대로 끌려갔다. "지금 너가 얘기한 거 해보려구." 내 생전에 엄마가 그렇게 빨리 움직이는 것은 처음 봤다. 


"나 그냥 이거 밥 먹고 출근하면 되는데?" 
어리둥절한 내가 물었다.


엄마가 대답했다. 


"아, 그렇게 좋은 방법이 있는데 지금까지 복잡하게 했어! 진작 말해주지 않고."

내가 밥그릇을 비우기 전까지 엄마는 새롭게 구워낸 토스트를 세 장이나 접시에 담아 왔다. 컵에 가득한 우유까지 함께 말이다. 


아직 뜨거운 토스트를 손가락으로 집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잔소리한 것들은 단지 엄마에게 충분히 쉽고 좋은 방법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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